처마를 타고 자연광이 흐르는, 나무집 인교(仁皎)

본지 294호(2023년 8월호) 설계 제안 코너에 건축설계 단계에서 게재되었던 주택이 실현되었다. 막다른 골목, 소년원 담장, 이웃 건물들이 바짝 붙어있는 땅의 가치를 찾아내 공원과 마당을 활짝 맞이하는 따스한 가족 별장이 되었다.

평면이 아니라 모습으로 그려지는
마당과 공원으로 열린 경사지붕집
천장 높은 거실 공간을 마당에 접하게 둬서 개방감을 느끼게 했다. 거실에서는 마당의 조경수와 담장 너머 공원 조경수의 푸름이 펼쳐진다. (사진 : 박도현)
지반이 높은 동측에 건물을 집약적으로 배치해서 서측 마당을 최대한 확보했다. 공사 진출입이 까다로운 상황과 추후 용도변경 시 문을 만들기 용이할 것을 고려해서 금속조립 담장으로 계획했다. 담장은 소년원 담장의 규칙적인 수직 철골 구조물을 의식해서 수직선을 강조했고 공원의 녹색 풍경에 녹아들도록 채도 낮은 녹색으로 칠했다. 담장의 구조기둥과 금속판 사이에 외부에서 보기 힘든 작은 틈이 있는데, 태풍 시 구조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마당의 수목에 바람을 들이는 통풍구 역할을 한다. (사진 : 박도현)
거실-주방-식당-다락 공간이 트이도록 계획해서 작은 면적이지만 크게 느껴지도록 했다.

의뢰인 노부부에게는 대구가 고향이자 오랜 터전이었다. 지금은 타지역에 거주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구를 왕래할 일이 있었고 오래도록 버려뒀던 이 땅에 가끔 와서 머무를 곳을 마련하고자 했다. 자녀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이었기에 이 집이 가족 구성원 누구나 대구에 와서 편히 지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가족 별장’이 되길 원했다.

대지는 오래전에 구매한 땅으로, 과거에는 서측 도로에 접했으나 선형 공원이 생기면서 거의 맹지가 될 뻔한 땅이다. 남측으로 부담스러운 소년원 담장이 접해있고 북측, 동측으로는 이웃 건물이 바짝 붙어있다. 오직 서측 공원으로만 숨통이 트여있는 땅으로 매매조차 힘든 입지의 조건이었다. 대지 출입구보다 서측 공원이 1.5m 낮고 대지 내 완만한 경사가 있다. 막다른 골목으로 차량접근은 가능하지만, 주차 진입이 안 돼서 주차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축해야 했다. 20년 넘게 방치된 기존 폐가는 신축을 위해 철거하였다.

다락과 연결된 누르면 펼쳐지는 접이식 계단은 집에 대한 남다른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주차장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50㎡ 미만)로 계획하면서 바닥면적 산정에서 제외되는 발코니 확장과 다락 면적을 활용해서 필요 면적을 확보했다. 바짝 붙은 북측, 동측 이웃으로부터 고개를 돌려서 서측 공원의 녹지와 개방감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부담스러운 남측 소년원 담장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확실한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든든한 벽으로 해석했다.


HOUSE PLAN

대지위치 : 대구광역시
대지면적 : 202m²(61.10평)
규모 : 지상 1층 + 다락
최고높이 : 6.4m
건축면적 : 65.76m²(19.89평)
연면적 : 49.91m²(15.09평)
건폐율 : 32.55%
용적률 : 24.71%
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일반철골구조
단열재 : 그라스울 64K
외부마감재 : 벽 – 스프러스 집성목, 드라이비트 / 지붕 – 컬러강판
담장재 : EGI 강판 위 우레탄도장
창호재 : 알텍코리아
에너지원 : 도시가스
조경 : 태극조경(시공)
구조설계 : 휘안구조기술사사무소
시공 : ㈜이턴
설계·감리 : 박도현건축사사무소

지붕은 누수 걱정이 적은 경사지붕으로 선택했고 실내 천장에서도 지붕 구조를 확인할 수 있어 주택에 입체감을 더한다.

계획 초기에는 구조 또한 중목구조로 계획해서 진정한 나무집을 꿈꿨었다. 하지만 빠듯한 예산을 고려해서 철골구조 비교 견적을 진행했고, 비용이 적지 않게 절감되는 철골구조로 변경하기로 결정되었다. 건물의 유일한 대표 얼굴인 마당 쪽 입면과 실내 공간만이라도 진정 나무로 만든 집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디테일을 고민했다. 비록 기능적 요소보다는 장식적 요소가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구조적 변형의 우려로부터 자유로운 목구조의 표현이 가능했다.

입체 경사천장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침실. 침실과 화장실에 남향 자연광을 들이기 위해서 지붕을 가위질해서 입체적인 경사지붕을 만들었다. 덕분에 조명을 거의 켤 필요가 없고 태양과 구름의 움직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집이 되었다.
아파트에 익숙한 손주들에게 경사진 천장, 접이식 다락 계단, 그물망 바닥, 고기 구워 먹는 야외데크, 맘껏 물총 싸움하고 놀 수 있는 마당에서의 경험은 커서도 가끔 생각나는 잊지 못할 공간적 기억이 될 것이다. (사진 : 박도현)
자연광으로 밝혀지는 옥빛 화장실.
주택과 소년원 담장 사이 1m 공간에 대나무 정원을 만들어서 담장의 위화감을 줄이는 동시에 집에서만 누릴 수 있는 철저한 프라이빗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목재로 마감된 실내공간과 문을 열면 펼쳐지는 초록빛으로 기억되는 집, 자연광이 경사천장을 타고 흘러드는 집, 평면이 아닌 내 집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그릴 수 있는 집, 아파트가 주기 힘든 가치들로 가득한 집이 되길 원했다.

또한 신축 건물은 주택이지만 추후 근린생활시설로의 변경을 고려했는데, 이 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인 서측 공원을 품을 것을 꿈꿨다. 언젠가 주택이 근생시설이 되어 담장 일부를 열어서 공원 분위기를 끌어들이고 공원을 지나가던 사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물로부터 목재를 보호하기 위한 처마와 후레싱을 계획했고 서향 일사를 차단하기 위한 루버를 설치해서 선(線)적인 표현을 곁들였다. (사진 : 박도현)

박도현 소장 : 박도현건축사사무소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한국건축사이자 공학석사이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피그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하며 BIM 전문경험, 다양한 규모 프로젝트의 설계부터 감리까지 경험하고 2020년 개소했다. 지구의 한 부분을 만든다는 기분으로 건축작업에 임하고 있다.
070-8803-2942 | www.dhpa.co.kr

글_박도현 | 사진_홍기웅 | 기획_오수현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4년 11월호 / Vol.309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