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서울 도심 달린 ‘세계 첫 자율주행차’
고려대 산업공학과 교수였던 한민홍 현 첨단차 대표 연구팀은 1992년 자율주행 제어 기술을 개발한 뒤, 1993년 서울 도심에서 실제 도로 시범 주행을 선보였다.
남산1호터널을 지나 한남대교와 올림픽대로를 거쳐 여의도 63빌딩까지 약 17㎞를 자율 주행으로 완주한 이 실험은, 승용차 기반 자율주행차의 ‘세계 최초 도심 주행’ 사례 중 하나로 소개된다. 당시 차량은 지프차에 카메라와 컴퓨터를 탑재해 차선과 앞차와의 거리를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향과 가·감속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구조였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레벨2 수준 기술
한민홍 대표가 구현한 시스템은 현재 상용차에 널리 쓰이는 어댑티브 크루즈와 스티어링 어시스트에 해당하는, 이른바 레벨2 자율주행 수준으로 평가된다. 카메라가 차선·전방 차량·장애물 정보를 수집하면, 컴퓨터가 이를 연산해 핸들·브레이크·액셀(당시에는 클러치까지 포함)을 동시에 제어하는 방식이었다.
보행자가 차선으로 뛰어들면 차량이 자동으로 정지하고, 정차 중이던 앞차가 출발하면 스스로 따라가는 ‘스탑 앤 고(Stop & Go)’ 기능도 구현돼 있었으며, 시속 100㎞까지 자동 운행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군사 기술에서 승용차로 옮겨온 ‘무인화’ 발상
자율주행 연구는 원래 미국에서 무인 탱크·무인 차량으로 군수물자를 적진에 투입하고 인명 피해를 줄이려는 군사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한민홍 대표 역시 1988년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무인 잠수정 개발 프로젝트를 맡으며 관련 기술을 접했고, 이를 민수 자동차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전환했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는 자율주행차 시연까지 선보이며, “머지않아 일반 도로에서도 무인 주행 시대가 올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돈도 안 되는데 왜 하냐”던 1990년대 한국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와 기업의 반응은 냉담했다. 자동차 산업은 유럽·일본 브랜드를 모방해 따라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선제적으로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연다는 발상은 “돈 될지 모르는 일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으로 여겨졌다.
연구비는 끊겼고, 함께 일하던 연구진 상당수는 당시 유망해 보이던 로봇 분야나 다른 산업으로 옮겨갔다. 기업들에서는 “괜찮은 기술이면 나중에 사오면 되지, 왜 지금 개발하느냐”,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는 반응이 나왔고, 결국 유망하던 국산 자율주행 연구는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2004년 중단됐다.

“테슬라·구글보다 앞섰을 기술”이 남긴 교훈
한민홍 대표는 “1990년대만 해도 자율주행 기술 자체는 세계 1등 수준이었다”며, 그때부터 꾸준히 투자했더라면 현재 한국 기업이 테슬라·구글보다 뒤처졌을 이유가 없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날 자율주행의 본질도 ‘조향과 속도 제어 두 가지를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가 맡는 것’으로, 기본 개념은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현재는 센서와 카메라, 컴퓨팅 파워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성능과 안정성이 높아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남은 K‑자율주행의 가능성
현재 한민홍 대표는 78세 고령임에도 물류·택배와 같은 분야에서 자율주행이 먼저 상용화될 것이라 보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물류 차량은 경로가 일정하고, 도심 승용차보다 위험 상황 변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기술 실증과 상용화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언젠가 반도체처럼 “국산 자율주행 핵심 기술이 반드시 필요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라 보고, 국내 기술 기반을 이어가기 위해 민간 차원의 연구를 지속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30년 전 한국에서 이미 ‘테슬라식 자율주행’의 기초를 만들고도 상용화에 실패한 경험은,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원천기술에 어떻게 투자하고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