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SDI의 유동비율이 두 자릿수대로 떨어지며 올해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보다 갚아야 할 부채가 더 많아졌다. 설비 투자에 지난해만 6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으며 미래 사업에 올인하고 있는 전략의 여파로 풀이된다.
결국 조 단위의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 들며 유동성 확충에 나선 가운데 삼성SDI의 대규모 투자가 재무 건전성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지, 아니면 새 먹거리의 발판을 마련하는 묘수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삼성SDI의 유동비율은 95.2%로 전년 말 대비 12.6%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이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코스피 시총 상위 100곳의 비금융 상장사들 중 밑에서 21번째에 해당하는 수치다.
유동비율은 기업의 단기 부채 상환 여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재무 건전성을 평가하는 핵심 항목이다. 기업이 1년 안에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유동자산을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로 나눠 백분율로 표시한 값이다.
이 수치가 낮은 기업일수록 갑작스러운 금융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200% 이상을 유지할 때 이상적이라고 판단하고, 100% 이하이면 부실 우려가 있다고 본다. 다만 업종별 특성에 따른 차이 등은 고려해야 한다.
삼성SDI의 유동성 지표가 나빠진 건 자산의 문제는 아니다. 삼성SDI가 확보한 유동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10조3343억원으로 1년 새 12.5% 더 확대되며 10조원을 넘어섰다. 이중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 1조8851억원으로 같은 기간 23.7% 증가했다.
다만 올해 안에 갚아야 할 부채가 더 빠르게 늘면서 발목이 잡혔다. 삼성SDI의 유동부채는 10조8557억원으로 27.4%나 증가했다. 특히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차입금만 6조5141억원으로 127.1% 급증했다.
삼성SDI의 유동성 저하 배경에는 막대한 투자가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시설과 설비 확충에 돈을 쏟다 보니 상대적으로 유동성 측면에서의 여유는 축소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삼성SDI의 연간 설비투자(CAPEX) 규모는 지난해에만 6조2713억원에 달했다. 2022년과 2023년에도 각각 2조8089억원과 4조482억원을 CAPEX에 투입했는데, 최근 들어 그 몸집을 더 키우는 모습이다. CAPEX는 미래의 이윤 창출과 가치의 취득을 위해 지출된 투자 과정에서의 비용을 가리킨다.
실적에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도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삼성SDI의 지난해 매출은 16조5922억원으로 전년 대비 22.6% 줄었다. 영업이익 역시 3633억원으로, 당기순이익도 5755억원으로 같은 기간 각각 76.5%와 72.1%씩 감소했다.
그럼에도 삼성SDI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 분위기다. 오히려 유상증자를 통해 외부 자금을 더 끌어와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삼성SDI는 1조7282억원의 유상증자를 예고한 상태다. 당초 2조원으로 발표했던 방안보다는 액수가 적어졌지만 여전히 큰 규모다.
삼성SDI는 이를 통해 글로벌 배터리 사업 확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자금을 미국 제너럴모터스 합작법인 투자와 유럽 헝가리 공장 생산능력 확대, 국내 전고체 배터리 라인 시설투자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결국 관건은 이런 투자가 확실한 결실을 안겨줄 수 있느냐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와중 업황 악화가 예상보다 심화할 경우 재무 상태만 나빠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주선 삼성SDI 사장은 이번 유상증자에 대해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기반으로 중장기 성장을 가속화 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기술 경쟁력 강화와 매출·수주 확대, 비용 혁신을 통해 캐즘을 극복하고 다가올 슈퍼 사이클을 착실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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