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투수 박정훈이 지난 선발 등판에서 얻은 교훈은 단순했다.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것과 타자를 제압하는 것은 다르다. 그 차이를 5월 13일 고척 마운드에서 101구로 증명했다.

박정훈은 이날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5⅓이닝 3피안타 4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3-2로 승리했고, 한화전 4연패와 고척 홈 10연패라는 두 개의 기록이 동시에 끊겼다. 수치만 보면 완벽과는 거리가 있다. 4개의 볼넷은 제구가 흔들렸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 4개의 볼넷이 단 한 점도 실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투구의 본질에 더 가깝다.
전통적인 평가 기준으로 5⅓이닝 4볼넷짜리 선발 투구는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않는다. 특히 대체 선발이라는 전제가 붙으면 더 그렇다. 박정훈은 이날 정규 로테이션이 아닌 긴급 대안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 조건에서 한화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기대치 대비 성과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 투구의 밀도는 수치 이상이다.

핵심은 투구 접근법의 전환이었다. 박정훈 본인이 경기 후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직전 등판의 실패 원인은 스트라이크를 과도하게 의식하며 맞춰 잡으려 했던 데 있었다. 이날은 달랐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전환했고, 그 결과 공의 움직임 자체가 살아났다. 포수 박성빈과 사전에 맞춘 전략도 구체적이었다. 커브와 슬라이더를 병용하는 배합을 초반에 적극 활용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투심 무브먼트를 중심에 놓았다. 한화 타선이 8안타를 때리고도 2득점에 그친 배경에는 이 배합의 일관성이 있다.
6회 등판 여부를 둘러싼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5회를 마치고 100구 언저리에서 박정훈은 추가 이닝을 자원했다. 코치진과의 짧은 대화 이후 마운드에 다시 올랐지만, 1사 후 페라자에게 볼넷, 강백호에게 우중간 2루타를 맞으며 1사 2·3루 위기를 자초했다. 이 장면에서 박정훈이 내려갔고, 뒤를 이은 김성진이 삼진과 땅볼로 이닝을 끊었다. 여기서 안치홍의 역할이 빛났다. 내야 끝에서 타구를 잡아 강한 어깨로 처리한 수비가 없었다면 이닝 종료는 없었다.

이처럼 이날 키움의 승리는 개인 기록의 합산이 아닌 연쇄 반응에 가깝다. 임병욱의 1회 좌중간 2루타가 분위기를 먼저 가져왔고, 서건창의 4회 적시타가 리드를 굳혔다. 박주홍의 8회 슬라이딩 캐치는 1점 차 위기에서 리드를 지켰다. 마무리 카나쿠보 유토는 4아웃 세이브로 마침표를 찍었다. 구단 전체가 함께 만든 승리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경기였다.
키움의 현재 성적은 14승 1무 24패다. 승률 0.368, 리그 하위권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 경기가 가진 구조적 의미는 성적표 너머에 있다. 대체 선발이라는 포지션에서 등판한 2년 차 좌완이 5이닝 이상을 무실점으로 소화했다는 사실은, 키움 마운드가 최악의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근거를 제공한다. 박정훈의 역할이 앞으로 선발인지 불펜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본인도 "어디든 내보내 주시면 잘 던질 수 있다"고 했다.

이 한 경기가 키움의 시즌을 바꾸지는 않는다. 14승 24패라는 현실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하나는 확인됐다. 박정훈은 1군 선발 마운드에서 통할 수 있다. 그 답은 101구가 이미 던져놓았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