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찬성' 의사도, 국감서 "尹정부 의료정책 파산"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증원 '낙수효과'로 기피科 충원 안 돼"
지방의료원·국립대병원 '도산' 위기 호소…"정부, 긴급수혈부터 해달라"
환자들 "의대정원 숫자 때문에 現사태 발생…재논의로 대란 종식" 촉구
의사수 추계 연구자들 "수십 년 공전한 논의 진전될 수도" "의료계 논의 장 나와야"
8일 이틀째 이어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꼬박 7개월을 넘긴 의·정 갈등과 이로 인한 의료공백을 체감 중인 당사자들의 다양한 증언과 지적이 나왔다. 특히 임상 의사로서 의과대학 정원 증원 필요성을 오랫동안 주장해 왔음에도,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을 두고 "이미 파산 지경"이라고 보는 목소리도 나왔다.
"의대 증원, 국민 건강보다 정략적 목적으로 이용"
이날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의 요청에 따라 참고인 자격으로 국회에 출석한 정형준 원진녹색병원 부원장(재활치료센터장 과장)은 "저는 의사 증원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하지만 윤 정부의 증원 방안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듯 의사를 (진짜) 늘리려 했던 게 아니고, 반발하는 의사들을 진압하는 등 정략적 목적으로 (활용되고) 보완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두고 "사실 완전히 파산했다고 생각한다"고 직격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정책위원장이기도 한 정 부원장은 그 근거로 정부가 공언한 '지역·필수의료 살리기' 대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소규모 병원이나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에서 겪는 심각한 구인난을 타개하기 위한 '핀셋 정책'은 정부의 개혁안에 누락돼 있다는 것이다.
정 부원장은 "시장 중심의 의료공급 때문에 지방의료가 붕괴되고 있다"며 "그럼 필수진료과나 기피 진료과의 지원자를 늘릴 수 있는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 혹은 특정 진료과를 선택해 선발을 하는 등의 방식을 취해야 했지만 윤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한 의대 증원규모(2천 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배정'이었으나, 이 또한 아래로부터의 수요 확인보다는 '톱다운' 방식의 하달에 가까웠다고 비판했다. 정 부원장은 "(총)증원 숫자를 결정해놓고 배정은 교육부에 위임해 배정위원회 회의록과 명단도 폐기한 기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 2월 말 전공의 공백을 막고자 개시한 비상진료에 건강보험 재정 투입을 결정해온 절차 역시 "매우 비민주적"이라고 봤다. 정부는 지난달 말에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월 2천억여 원 규모의 건보재정 지원방안 연장을 의결한 바 있다. 지금껏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지출하기로 한 건보 재정만 누적 약 2조 원으로 추산된다.
정 부원장은 "건정심 등은 원래 근로자 대표단체의 추천을 받거나, 그들을 포함시키게 돼있는데 지금 양대 노총이 다 (구성에서) 배제돼 있다"며 "실제로는 건보 재정의 거의 70~80%를 납부하고 있는, 가입자 대표자들을 배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생으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산부인과·소아과 등은 '수가 인상'만으로 인프라 유지가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정 부원장은 "그 행위 자체에 2~3배 가산을 해줘도 민간에서 이를 공급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정부가 지역·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를 책임지고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의사제 등이 생략된 의사 증원은 '낙수 효과' 바라기에 지나지 않으며 더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거라고도 강조했다.
'지역의료 중추' 만들겠다?…"당장 긴급수혈부터"
코로나19 유행 당시 확진자 치료를 전담한 공공병원들의 어려움이 더 가중되고 있다는 호소도 나왔다. 비수도권 필수의료를 담당해온 이들 병원을 정상화하기엔 정부의 손실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하단 것이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전국의료원연합회장)은 지난해 의료적자가 5700억여 원을 기록한 지방 의료원에 대한 정부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의 지적에 공감하며 "코로나19 때 병상 가동(률)이 떨어지며 아주 급격히 경영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또 "의료원별로 적게는 몇 억에서 많게는 수십 억 원의 적자를 매달 내고 있다. 이 정도면, 공공병원의 예산정책에 대한 근본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국립대병원을 대표하는 참고인으로 나온 남우동 강원대병원 병원장도 "단순 수치로만 봐도 올해 적자는 작년의 3배로 예상하고 있다"며 "의료진 신규채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내년 초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털어놨다.
남 원장이 전한 바에 따르면, 강원대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지난해 70% 가량에서 현재 40% 정도까지 하락했다. 그는 "국립대병원 모두의 공통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인원 재배정·사업계획 유예 등의 자구책으론 이미 한계치라며 "교수들의 누적된 피로, 질병으로 인한 대규모 사직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들의 처우 개선이 급선무라 (추가적)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립대병원 붕괴를 막기 위한 '긴급 수혈'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를 지역 필수의료의 중추로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첫 단추도 꿰기 어려울 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환자단체 "정원 재논의해 의료대란 종식시켜야"
환자단체는 일상화된 진료 차질로 생명까지 위협받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한 마디로) 참담한 심정"이라며 "우리 환자들의 생명이 의·정 갈등으로 희생되어도 되는 하찮은 존재인가란 것을 지난 8개월 동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서울의 '빅5' 병원에 가야만 검사받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들은 치료를 못 받고 있고, 임상시험에 참여해야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말기암 환자들도 참여하지 못했다. 누가 (이 피해를) 책임지나"라며 "이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의대정원 숫자 때문이다. 의대 증원을 다시 논의해 의료대란을 종식시키자"고 제언했다.
한편, 이날 국감에는 정부가 의대증원 추진의 '과학적 근거'로 내세운 보고서 저자들이 출석해 현 사태 관련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2035년이면 국내 의사가 1만 명 정도 부족할 것으로 추계한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저는 일관되게 '5년 동안 2천 명씩 (늘리기)'보다는 조금 더 연착륙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려왔다"며 "교육 여건 등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갖고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의 위기가 수십 년 간 공전한 의료개혁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신 연구위원은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전달체계, 보상 관련 분과도 있더라. 임상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의 의견(반영)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20~30년 누적된 문제를 한꺼번에 지금 논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정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력과 병상, 자원 관리 및 국민의 의료이용 양태 등에 대해 합의를 이뤄낸다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내비쳤다.
마찬가지로 의사 수 추계연구를 진행했던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 '점진적 증원'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정부가 인용한 자신의 보고서 등에 필요 증원규모가 2천 명으로 명시돼 있었는지 여부는 불필요한 논쟁거리라고 봤다.
권 연구위원은 "보고서는 연구자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제안을 드린 것이지, 정부가 그 연구보고서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서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그런 식으로 보고서를 바로 정책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행정부(의 존재)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또 "정부가 다양한 의료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의료인력이 얼마나 추가적으로 더 필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의료인들에게 설득하면서 논의의 장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 외엔 더 뚜렷한 (해결)방법이 없을 거라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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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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