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찍는 산골학교"… 폐교 위기 극복한 '중동 레디 액션!'
전교생 39명 중 30명이 유학생
학부모들 전입해 경제까지 살려
추가 유학생 9명 모집에 20명 몰려
졸업해도 계속되는 유학생과 인연
"교육이 지역소멸 파고 넘는 대안"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상영합니다.

지리산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전남 구례군 중동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9명인 작은 학교다. 대도시 기준에서야 한 학년도 안 되는 규모지만 이 학교가 얼마 전까지 신입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몰렸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게다가 전체 학생 중 30명은 수도권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다.
요새는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기 위해 학부모들이 줄을 서고 있다. 불과 몇 년 새 입학 경쟁이 치열한 '전국 1위 유학 맛집'이 됐는데, 기적의 시작은 농촌 유학 프로그램이었다.
신입생 '0'명 시골 학교…농촌 유학으로 승부수

전남은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이 5명 미만이면 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복식 학급'이 된다. 이는 곧 학교 소멸의 적신호다. 4년 전 중동초가 처했던 현실이다. 인구 1,000명 남짓한 산동면 관산리에서는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돼 더 이상 신입생을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막다른 길목에서 중동초는 '지역에 학생이 없다면 데려오자'고 발상의 전환을 했다. 그렇게 2021년 통폐합 직전 위기에서 '농촌 유학'이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김호준 교장(53)은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 소멸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학교가 사라지면 아이를 둔 가정은 교육 여건이 좋은 도시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고 경제활동도 위축돼 빈집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고 농촌 유학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농촌 유학은 수도권 초중고 학생들이 농어촌에서 1년 동안 생활하면서 지역의 학교를 다니고 시골살이를 체험하는 것이다. 지역 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농촌 유학을 꺼내든 게 비단 중동초만은 아니지만 '특별함'이 폐교의 운명을 갈랐다. 다른 학교가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프로그램이 "어차피 보낼 거면 제대로 보내자"는 서울 학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학부모가 직접 만드는 '특별한 교실'

'중동 레디 액션 유학'이라는 영화 제작 프로젝트의 힘이 컸다. 5, 6학년들은 '왕따'나 '학교생활' 같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시나리오로 쓰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다. 이 프로그램은 현직 콘텐츠 PD였던 한 학부모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의 재능 기부가 불씨가 돼 지금은 영화사 모토(MOTTO)와 양해각서(MOU)를 체결,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전문가들이 촬영과 조명 스태프로 참여하는 '진짜' 영화제작소로 거듭났다.
아이들은 대본 리딩을 통해 토론하고, 서로의 역할을 연기하며 마음의 벽을 허문다. 단순한 영상 제작 체험을 넘어 아이들 스스로가 주체가 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다. 또 이렇게 완성된 영화는 인근 자연드림의 작은 영화관을 빌려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감상한다. 김 교장은 "삭막한 도시의 경쟁 구도 속에서 주눅 들었던 아이들이 카메라 렌즈 앞에서 당당히 자신을 표현하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도 일상이다. 전교생이 1인 1악기를 다루는 '전교생 오케스트라'는 매주 수요일 3시간씩 합주 연습을 한다. 30명의 서울 유학생과 9명의 구례 아이가 서툰 화음을 맞추며 함께의 가치를 배운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학년별 도전 활동' 역시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곳만의 자부심이다.
중동초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학부모'다. 학교가 만든 프로그램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 학부모들의 인적자원을 학교의 커리큘럼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말이면 유학생 학부모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마을 학교'가 열린다. 외주 업체에 맡기지 않고 부모들이 직접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돌본다.
최근에는 영어 교육에 대한 갈증도 학부모들이 직접 해결했다. 김 교장은 "휴직 중인 영어교사 학부모님이 자발적으로 '영어 책 읽기 동아리'를 만드셨다"며 "이게 반응이 좋아 내년에는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한 정식 프로그램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부모의 재능이 곧 학교의 자산이 되는 선순환이 중동초에서는 현실이 됐다.
"떠나지 않겠다" 지역 소멸 극복 요람으로

중동초는 이제 매년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학교가 됐다. 올해 30명의 유학생 중 두 가구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중동초에 계속 다니길 희망하고 있다. 올해 졸업생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유학생 9명을 모집했는데, 20명이 몰려 절반 이상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유학 가족'이 정착하면서 마을에도 활기가 돌고 있다. 중동초가 위치한 관산리는 1990년대 이후 쇠락한 관광단지로 농촌 유학 전까지는 상가와 숙박 시설 대부분 잠정 휴업하거나 폐업 상태였다. 이런 마을에서 처음부터 농촌 유학을 가족 체류형으로 설계한 게 주효했다. 학부모 모두 구례군으로 전입신고를 마친 주민이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죽어가던 마을 경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령도시 같았던 상가 거리에 다시 불이 들어왔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식당과 카페가 북적인다. 빈집을 수리해 유학 가족에게 임대하면서 새로운 소득이 생긴 주민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김 교장은 "학교가 계속 유지되면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중동초는 단순한 유학 프로그램에 머물지 않고 한 번 인연을 맺은 가족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매년 '뒤뜰 캠프'를 열어 이미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간 졸업생 가족들을 다시 초청한다.
김 교장은 "유학을 마치고 떠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이 학교가 꼭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유학을 한 아이들에게 구례는 이제 또 하나의 고향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폐교 막고 인구 늘리고' 두 마리 토끼 잡았다

중동초의 기적은 전남도교육청이 2021년부터 야심 차게 추진한 '전남농산어촌유학' 프로그램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전남 이외 지역 학생들이 최소 6개월 이상 전남의 작은 학교로 전학 와 청정한 자연 속에서 맞춤형 특색 교육을 경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농촌 유학은 단순한 학생 교류 차원을 넘어 '생활인구'를 늘려 지역 소멸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전남은 현재 전교생 수 60명 이하인 작은 학교가 전체 학교의 44.5%를 차지하는데, 농촌 유학은 '작은 학교 살리기'와 '지역 경제활동 인구'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묘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1년 20개 학교에서 82명으로 시작했던 유학생 수는 폭발적 인기를 등에 업고 올해 2학기 기준 66개교·358명으로 4년 만에 4배 이상 급증했다. 매 기수별 평균 60% 정도의 학생들은 참여기간 연장도 희망하고 있다. 전남의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최근 강원도와 전북특별자치도 등 다른 지자체들도 앞다퉈 유사한 유학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전남도교육청은 서울시교육청과의 업무 협약을 바탕으로 '가족체류형' 유학 가구당 월 30만 원의 경비를 지원하며 도시 가족의 이주를 돕고 있다. 또한 지자체와 협력해 농산어촌유학 생활인구의 순환적 유입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내고 정주형 유학을 연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농산어촌 유학의 성과를 분석하고 내실화를 다지는 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며 "폐교 위기 학교를 활용한 농산어촌 유학은 교육이 어떻게 지역 소멸의 파고를 넘는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구례=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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