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하나 없는 지역…든든한 도서관 있어 참 좋다

경남 18개 시군에는 공공도서관 79곳, 작은 도서관 489곳이 있다. 도서관 여행으로 11월까지 한 달에 한 번 8회 연재를 두고 하는 수없이 몇몇 도서관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되도록 인구 감소 지역 혹은 문화 소외지역의 도서관을 둘러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경남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의령군의 경남도교육청 산하 의령도서관이다.

의령도서관 입구. 지은지 제법된 붉은벽돌의 관공서 분위기다. /권영란 시민기자 

도서관 문을 열기까지 20년이 걸렸다 = 의령읍. 작은 동네인지라 대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전통시장이 있고 군청과, 오래된 맛집들이 줄을 잇는다. 의령도서관은 의령읍 동쪽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한눈에 봐도 건물 외관이 요즘 도서관이 아니다. 2022년 종합자료실 등 실내 리모델링을 했다더니 외관은 손대지 않아 붉은 벽돌 관공서 건물이다. 마당의 정자와 큰 나무가 다소 딱딱함을 덜어낸다.

의령도서관의 전신은 백산 안희제(安熙濟·1885~1943)를 기리는 백산도서관이다. 백산은 의령군 출신 독립운동가다. 일제강점기 부산에 백산상회를 열고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했다. 의령지역에 기미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고, 곳곳에서 인재 양성과 언론 활동을 했으며 1930년 만주로 망명해서는 발해농장과 발해학교를 설립·운영했다. 1943년 끝내 해방을 못 보고 사망했다. 헤이룽장성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후 석방된 지 몇 시간 뒤였다고 한다.

1953년 지역민들은 백산회관 건립위원회를 조직하고 당시 30만 환을 모금해 착공했지만 1959년 자금 부족으로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몇 년이 지난 1966년 교육청 예산으로 완공을 했지만 장서 수집, 시설비 모금 운동을 벌여 1974년 마침내 백산도서관으로 개관할 수 있었다. 도서관 하나가 들어서는 데 20여 년이 걸렸다. 그해 바로 의령군립도서관으로 변경됐다가 1991년 지금의 명칭인 경남도교육청 의령도서관으로 변경됐다.

의령도서관 어린이자료실은 서가와 좌석이 알록달록하다. /권영란 시민기자
의령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서 꼭 한번은 앉아보고 싶은 자리다. /권영란 시민기자

이용자를 배려한 서가와 좌석 배치 = 의령도서관은 외관과는 다르게 실내는 '요즘 도서관'이다. 건물 안에 카페테리아는 없지만 옥상휴게공간은 물론 곳곳에 여유와 휴식을 누릴 공간과 자리가 있다. 층별 공간을 살펴보면 1층 어린이자료실, 꼼지마루가 있고 2층에는 종합자료실과 책담마루가 있다. 3층에는 강좌실, 자유학습실, 옥상휴게공간이 있다.

1층 어린이자료실은 알록달록한 서가와 좌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이들 눈높이대로 맞춘 서가는 야트막하다. 소파도 있고 마루도 있어 누워서 책을 읽어도 되고 뒹굴 수 있고 어딘가에 콕 박혀 책을 읽을 만한 곳도 있다.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책을 읽을 때 부모들이 한쪽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어른들을 위한 편한 자리도 마련돼 있다. 꼼지마루 창가 자리는 1인 또는 2인이 앉을 수 있는 집 모양의 푹신한 소파로 되어 있다. 이곳에 앉아 장난을 치거나 다리를 쭉 뻗어 흔들며 책을 읽는 아이들을 상상했다.

2층 종합자료실은 개방된 입구와 책 표지가 놓인 서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서들의 자리가 입구 뒤쪽으로 몰려있어 자료실로 들어서는 이용자와 사서 간에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없을 듯하다. 이용자의 등 뒤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가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종합자료실의 서가는 처음과 끝부분이 인상적이다. 총류로 시작되는 첫 서가대는 가운데 출입구 두고 양쪽이 디귿자 형태로 된 네 칸으로 이뤄져 있다. 이건 서가 끝부분 850 독일 문학 분야로 가면 똑같은 방식으로 서가가 놓여있다. 가운데 서가들은 일곱 단의 직선 서가들이다. 이 디귿자 형태의 서가는 칸마다 잠시 앉을 수 있는 스툴이 하나씩 놓여있다. 독서대나 책상이 필요치 않다면 구석에 콕 박혀 몇 시간이고 책을 뒤적거리기에 좋겠다. 도서관 중앙에는 세로로 긴 책상이 놓여있어 누구든 마주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거나 책 읽기 좋은 자리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창가의 등받이가 깊숙한 자리도 좋고 파티션으로 둘러친 1인석도 좋을 듯하다.

무엇보다 의령도서관 자료실 입구는 자동문이 아니다. 문이 아예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용자가 드나들 때마다 드르륵거리는 자동문 소리가 들리지 않아 좋았다. 전반적으로 세로로 깊숙이 들어가는 종합자료실의 서가와 좌석 배치에서 이용자를 배려하는 게 느껴졌다. 책을 읽든 공부하든 일하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덕분에 도서관을 둘러보고 서너 시간 머물며 책을 읽고 일을 하는 즐거움이 아주 컸다. 곳곳에 잘 배치된 자리가 올 때마다 자리를 옮겨 다니고 싶을 정도다.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올해의 책은 <줬으면 그만이지> = 의령도서관은 올해 '한 도서관 한 책 읽기'를 하고 있다. 한 도서관 한 책 읽기는 한 해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5~7개월 동안 지역주민이 그 한 권을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독려하고 있다. 2024년 의령도서관 '한 책'은 지난해 11월에 출간된 김주완 작가의 <줬으면 그만이지>(도서출판 피플파워)였다. 지난 한 해와 올해 초를 달궜던 MBC경남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역할로 출연한 김 작가 그동안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고 만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자료실 입구 서가는 온통 '한 책 코너'로 구성돼 있는데 책 읽기를 권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빛났다. 함께 나누고 싶은 구절을 포스트잇에 적어 '한 책 읽기 코너'에 공유, 한 책 소문내기로 개인 SNS에 한 책 읽기 홍보, 한 책 감상평 적기, 한 책과 다른 세 권의 책을 더 대출하기 등을 권하며 도서관에서 기념품을 주거나 커피 드립백을 줬다. 이렇게 몇 달 동안 선정된 한 책 <줬으면 그만이지> 읽기를 독려한 뒤 마지막으로 9월 28일 '김주완 작가와의 만남'까지 마련돼 있었다. 한 권을 함께 읽고 함께 경험하는 것을 넘어 '찐으로 한 권 읽기'가 되겠다. 작가로서는 자신이 쓴 책이 '한 도서관 한 책'으로 선정돼 한 해 동안 해당 지역에서 내내 읽고 얘기되고, 그 지역 독자들과 만난다는 일이 무척 고마운 경험일 것 같다.

의령도서관 종합자료실 입구. 출입문 없이 완전 개방이다. /권영란 시민기자
의령도서관 자료실 가운데 길게 놓여진 책상은 전원이 설치돼 누구나 노트북을 펴고 공부하거나 일할 수 있다. /권영란 시민기자
의령도서관 출입구 서가에는 올해 선정된 한권의 책을 읽도록 독려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다. /권영란 시민기자

오랜 시간 지역공동체의 문화 거점공간으로 = 현재 의령군에는 서점이 없다. 의령읍과 이웃한 가례면까지 합하면 2만 5000명의 의령 인구 중 반이 몰려있고 초중고가 6곳이지만 읍내에는 제대로 된 서점이 없다. 최근 북카페가 들어섰지만 서점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군청 근처에서 만난 주민은 "인근 산청군만 해도 작은 서점들이 서너 곳 되는데 의령군에는 없다. 작은영화관도 작년에 겨우 생겼고…. 문화적 소외감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아이들 공부에 필요한 책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거나 인근 도시인 진주나 창원에 가서 산다"면서 "그래도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 가서 찾아본다. 없으면 희망 도서 신청을 한다. 좀 늦더라도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하나뿐인 도서관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 3층 자유학습실은 독서실이 없는 의령읍에서 학생들이 잘 찾는 안전한 공부방이다. 의령도서관은 2019년 지역인문학센터로 지정돼 해마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인문학강좌를 열고 있으며 학교 도서관 지원센터 역할도 하고 있다. 학교 도서관이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자료 정리, 서가 배열, 장서 점검, 도서관 활용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신간도서 목록을 제공하고 있다. 독서동아리로는 어린이 '빛난 독서동아리'와 성인 '책향기 독서동아리'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어린이 독서동아리 운영은 쉽지 않다고 한다. 성인 독서동아리는 비교적 운영이 잘되고 있다. 이 외에도 도서관에서는 '직장인을 위한 별밤도서관' 야간 프로그램으로 힐링 타로카드, 핸드드립 홈바리스타 등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의령군이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라지만 오랜 시간 지역공동체와 함께해온 공공도서관이 지역민의 문화거점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의령도서관 명칭 앞에 붙은 책 모양의 마크는 '세상으로 향하는 창'이다. 주민들이 책을 통해, 의령도서관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의미로 짐작해 본다.

/권영란 시민기자(<남강오백리 물길여행>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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