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과장·제품 설명 부족·음주 조장까지…‘AI 모델’ 쏟아지는데 법·규제 ‘무주공산’

최근 국내외 브랜드들이 인공지능(AI) 모델을 앞다퉈 광고에 도입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부터 마시는 주류, 입는 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에서 AI 모델이 제품을 광고하고 있지만 정확한 정보보단 지나치게 과장된 이미지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AI 광고모델’이 실제 제품력에 대한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명확한 표기와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브랜드들 사이에서 AI 모델 활용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가격 경쟁력이 강점인 다이소 저가 화장품 브랜드는 물론, 눈동자 색상을 바꿔주는 컬러렌즈 브랜드, 아동복 브랜드 ‘빈폴키즈’, 지역 주류 브랜드 ‘금복주’ 등 업종을 불문하고 AI 모델을 적극 도입 중이다. AI 모델은 기존 인간 모델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제작 가능하며, 빠른 콘텐츠 생산과 리스크 회피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크몽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단 몇십만원대로 원하는 외모와 콘셉트의 AI 모델을 제작할 수 있으며, 별도의 촬영이나 보정이 필요 없어 효율성도 높다. 특히 스캔들, 범죄 등으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타격 우려가 없다는 점은 브랜드 입장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로 평가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전혀 다른 시선을 보이고 있다. 특히 AI 모델이 화장품 광고에 등장하면서 불신과 반발이 확산됐다. 실제 피부에 바르는 제품을 광고하면서도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AI 모델을 쓴다는 사실에 소비자들은 “효과를 신뢰할 수 없다”, “현실과 너무 다른 모습이라 오히려 반감이 든다”고 지적했다. 실제 제품 사용감을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보여줘야 할 광고에서 AI 모델을 활용하는 것은 기만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류 업계에서도 AI 모델 활용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지난해 금복주는 과당 제로 소주 제품 ‘제로 투(ZERO 2)’의 모델로 AI 인물 ‘로미(ROMI)’를 기용했다. 그러나 로미의 외형이 지나치게 젊고 나이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미성년자 음주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민건강증진법상 주류광고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음주를 권장하거나 미화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행 법령은 AI 모델을 포함한 가상 캐릭터에는 명확한 규정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주류 광고의 이미지가 미성년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음에도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AI 모델을 활용한 아동복 광고도 마찬가지다. 삼성물산이 전개하는 ‘빈폴키즈’는 2024년부터 AI 모델 ‘우리’와 ‘소울’을 활용해 온라인 광고에 사용하고 있다. 두 모델은 각각 8세 남자아이와 7세 여자아이를 표방하지만, 현실 아동보다 지나치게 이상화된 체형을 기반으로 제작돼 실제 구매자들이 제품 핏이나 사이즈를 가늠하기 어려워 ‘쇼핑의 현실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반응도 나온다.
특히 성장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의류에서 비현실적인 체형을 제시할 경우, 왜곡된 신체 이미지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 소비자들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AI 모델을 둘러싼 반감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최근 보그(VOGUE)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게스 광고에는 금발의 백인 여성이 스트라이프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언뜻 보면 일반 모델처럼 보였지만, 사진 하단에 작게 ‘AI 생성 모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광고가 공개되자 SNS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여성과 외모를 비교당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이어졌고, 일부 소비자들은 브랜드 불매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패션계에서 AI 모델 활용은 이미 가속화되고 있다. 스페인 브랜드 망고(Mango)는 10대 소비자 대상 광고에 AI 모델을 도입했고, 리바이스(Levi’s) 역시 ‘다양한 체형과 피부색’을 반영하기 위해 AI 모델을 실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는 모델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으며, 광고 현실성 또한 떨어진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광고 현장에서 AI 모델이 소비자의 오인과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이를 규제하거나 명확하게 고지해야 한다는 기준조차 없는 실정이다. 실제 광고물에서 AI 모델 활용 여부는 표기되지 않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되며, 소비자들은 가상모델이란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과장 광고 또는 표시광고법 위반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시광고법은 거짓·기만적인 광고를 금지하고 있으며 제품의 성능이나 효능을 오도하는 행위 또한 포함된다.
반면 유럽연합(EU)은 관련 법제를 이미 도입한 상태다. 2023년 제정된 ‘인공지능법’ 제50조는 AI로 생성된 콘텐츠임을 소비자에게 명확히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강력한 제재가 뒤따른다. 미국 또한 같은 해 행정명령을 통해 AI 콘텐츠 식별 장치를 강화하고 투명성 확보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AI 모델이 가진 장점과 활용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AI 인물을 모델로 쓸 경우 실제 모델보다 제품력에 대한 왜곡이 커질 수 있다”며 “소비자가 오인하지 않도록 광고에 AI 모델 활용 여부를 반드시 고지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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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인혜 르데스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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