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신수동 로컬 카페 도덕과 규범 인터뷰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로컬 로스터리 카페 도덕과 규범과을 찾았다. 로스터리 카페에 어울리지 않는 엄격한 이름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 안고.

ⓒ 피치바이피치

보통 몇 시에 출근하나요?
영업은 11시에 시작하고요. 저는 새벽 6시쯤 나와서 로스팅을 해요. 저녁에 로스팅을 해야 될 때도 있기는 한데, 아침 일찍 나와서 하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왕 일찍 나올 거면 해가 뜨기 전 어두울 때 나오자는 마음이죠. 6시 전후로 출근해서 로스팅기를 켜 놓고 셔터가 내려진 어두운 공간에 앉아서 잠깐이나마 생각을 정리해요. 오늘도 일찍 나와서 커피 마시면서 생각 좀 해야겠다 했는데 늦었습니다. (웃음)

커피를 전문으로 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2017년에 개인 로스터리를 시작했어요. 로스터기를 처음 구입한 건 2016년이에요. 로스팅으로 커피를 시작했죠. 도덕과 규범은 2022년부터 마포구 신수동에 매장이 있었어요. 신수동 매장은 4평 정도로, 면적이 지금의 절반이었고요.

커피 로스팅은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됐나요?
<내 아내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류승룡 배우가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영화죠. 류승룡 배우의 극중 직업이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 하나가 커피 로스터였어요. 영화 속에서 로스팅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은 로스터기를 중고로 구매했죠. 그렇게 집에서 로스팅을 시작했어요. 해보니까 ‘이걸 팔아도 되겠다’ ‘나 로스팅 잘하네’ 하는 생각이 들어 2017년 합정동에 처음 가게를 열었죠. 그리고 2년 동안 엄청 고생을 했어요. ‘내 커피 맛있다’라는 평가는 얕은 지식에서 나온 거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게를 오픈한 셈이었으니까요.

그때는 도덕과 규범이 아니었던 거죠?  
네,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당연히 장사는 잘 안 됐죠. 그때는 부가세 같은 것도 몰랐어요. (웃음)

ⓒ 피치바이피치

원래는 어떤 일을 했는지?
그 전에는 공연 기획 회사에 다녔고, 그 이전에는 노래 만들고 작곡하는 일을 했어요. 한때 본업이 뮤지션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장에 CD랑 LP가 많군요?
첫 가게를 정리하고, 두 번째 가게는 연희동에 열었어요. 거기도 정리하고 나서는 집에 로스터기를 두고 홈카페처럼 활용했죠. 음악 장비도 가져다 놓고 사람들 모이면 커피 내려주고.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이 점점 꽉 차는 거예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싶어서 신수동에 카페를 열게 된 거죠. 쉽게 말해 집에 있던 카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거예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럼 세 번째 가게인 거네요. 도덕과 규범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비결은 뭘까요?
처음엔 카페 이름 때문에 관심을 좀 받은 것 같아요. 사실 심플하게 짓고 싶었어요. 제 이름이 규범이니까 앞에 뭔가를 하나 더 붙이자 해서 지은 이름이에요.
예전에 가게를 몇 번 옮겨보니 나갈 때 인테리어한 걸 다 폐기해야 되더라고요. 돈 주고 한 건데 정리할 때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철거해야 되는 거죠. 쓰레기도 1.5톤짜리 트럭 하나 만큼 나와요. 도덕과 규범을 열면서 조립식으로 가게를 만들었어요. 애초부터 재사용을 생각한 건 아니고 비용 절감 측면에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 쪽에 리사이클 조명을 만드는 람펠 디자인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가게를 준비하면서 거기 사장님이랑 ‘새 거 안 사고, 있는 거 쓰고, 저렴한 거 쓰고, 누가 썼던 거 쓰기’를 실제로 적용해본 거죠. 저는 이런 걸 노력해서 하는 사람이지만, 그 분은 그게 진짜 삶이고 일상이에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번에 이전하면서요?
네, 하룻동안 철거하고 나온 쓰레기는 2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 1개가 전부였어요. “이게 다야?”라고 할 정도였죠. 물론 중간중간 미리 버린 것도 있긴 하지만, 마지막에 정리하고 나올 때는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엄청 뿌듯했어요. 저 혼자 만든 결과는 아니어도, 스스로 무척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늘 ‘여기에 버리고 갈 게 뭐가 있냐?’ 했는데 진짜 그랬던 거죠.

그런 과정에서 공간 운영에 대한 철학이 바뀌었나요? 테이크아웃 컵 뚜껑은 종이로 되어 있고 빨대도 생분해 소재인 것 같아요.  
네, 사실 종이라고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죠. 친환경 소재라고 해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좀 줄이려고 노력해요. 플라스틱 잔은 쓰지 말자, 이 정도. 그렇다고 손님한테 일회용 잔을 드려야 되는데 안 드리거나 하진 않고요. 저는 저게 친환경 컵이라고들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일반 쓰레기 봉투에 들어가서 다 땅에 묻히는데 친환경이라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해요,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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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전면이 트인 구조가 특이해요.  
이 공간이 밖에서 보면 저택에 딸린 주차장 같은 분위기예요. 실제로 차를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앞유리를 없앴어요. 커피 버스를 운영하고 영업이 끝나면 이 공간에 차를 넣어 두면 어떨까, 생두 창고처럼 활용해도 좋겠다, 했는데 결국엔 하지 않았죠. 중고차까지 보러 갔었어요. (웃음)

카페 손님은 동네 주민이 많나요, 외지인이 많나요?
주민이 30퍼센트, 일부러 찾아오는 분이 70퍼센트 정도. 신수동에 있을 때는 주민이 10퍼센트밖에 안됐어요. 유동 인구가 거의 없는 동네였거든요. 여기도 홍대이긴 하지만, 뒷골목이어서 오가다 들어오는 사람보다는 ‘한 번 가볼까’ 해서 찾아오는 사람이 더 많죠.
사실 저는 호스피털리티를 별로 고려하지 않았어요. 일하는 사람이 편하고 행복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매장을 이전하면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분들이 ‘이전 가게에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았을지 몰라도, 스스로 그걸 깨지 못하면 더 성장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얘기해줬어요. 이번에 매장 공사를 하면서 제 가치관이 조금 바뀐 거예요. 차고처럼 운영할 생각을 접은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해왔거든요. 커피도, 가게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객의 입장을 조금만 더 신경 쓰면 훨씬 멋있는 가게가 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바에 의자를 놓고, 바람막이용 비닐도 달았죠. 엄청 편한 공간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느낄까 고민해요. 아직 만들어가는 과정이죠.

카페는 일주일 내내 문을 열죠?
예전에는 주 5일, 7시간 근무였어요.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한 달씩 쉬었고요. 덥고 추운데 냉난방비 쓰고 환경까지 오염시키면서까지 굳이 해야 되나 하는 마음이었죠. 엄청 까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보다 월세가 비싸진 것도 있고, 생각도 조금 바뀌었어요. ‘짧게 영업하니 오고 싶은 사람은 연 시간에 온다’ 였으면 지금은 ‘고객이 오고 싶을 땐 언제나’로. (웃음) 제가 그런 사람이에요. 생각도 계속 바뀌고, 그러면 또 바로 실행하고. 지금은 주 7일 영업하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요.

‘우리는 자생하지 않고 상생한다.’ 도덕과 규범 SNS 계정에 적힌 이 문장이 인상적이에요.
<월간 커피>라는 잡지와 인터뷰할 때 제 여자친구가 생각해낸 말인데요. 원래는 ‘자생할 수 없고 상생한다’였어요. 손님이 찾아 오지 않는 가게는 유지될 수 없어요. 사람들이 공간을 채워주어야 다음 단계로 지속될 수 있는 거죠. ‘자생할 수 없다’를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주체성을 담아 ‘자생하지 않는다’로 바꾸었어요. 실제로 사람들과 상생하려고 노력해요. 매장에 찾는 손님 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인싸’보다는 ‘아싸’한테 집중하고요. 신수동을 떠나면서도 그곳에서 맺은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컸는데, 다행히 그 때 만난 손님 대부분이 여전히 찾아와요.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도 마찬가지예요. 마감하면서 누군가 ‘오늘 의미 있고 좋은 하루였어’라고 말해주면 저도 행복해지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커피를 나누며 서로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게 저희의 방향성입니다. 그게 다예요.

커피 관련해서 좋아하는 여행지가 있나요?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몽골. 커피를 들고 다녔는데, 게르에서 머물면서 사람들이랑 매일 아침 커피를 나눠 마셨어요. 가보고 싶은 데는 당연히 산지죠. 에티오피아, 케냐, 남미… 다음 목표는 커피 산지 여행이에요. 아마 곧 갈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피치바이피치

요즘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정말 많은데요. 어떻게 해야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커피숍이니까 커피를 잘 전달하는 건 기본이고요. 제 생각에는 초기 투자비를 좀 아꼈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인테리어에 비용을 많이 쓰잖아요. 하지만 장사가 잘 되는 거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테이블 하나 놓고 머신기만 놓고 영업해도 진심으로 손님들을 대하고 커피를 정성스럽게 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커피에 집중하는 게 생존율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해 본 적은 없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웃음)

한 가지를 지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결국 휴식인데요. 카페를 하더라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쉬는 날은 꼭 확보해야 해요. 그래야 길고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매출을 가늠할 수 없으니 매일 문을 열테고, 그러다 보면 영원히 못 쉬는 거예요. 내 수익이 바로 달라지기 때문에. 혹시 몸이 아파 쉬게 되더라도 가게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생각하고 그에 맞는 규모로 시작해야 하죠. 이전 가게를 할 때 한 달 영업일을 20일 정도로 잡고 예상 매출을 계산한 뒤에 그에 맞는 상권을 찾았어요. 당연히 월세가 저렴한 골목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가장 맛있는 커피란?
제 기준은 명확해요. 커피를 마실 때 입에 일단 걸리는 게 없어야 돼요. 까끌까끌한 질감이나 쓴맛, 찌르는 산미가 아니라, 밸런스가 잘 맞아서 부드럽게 목으로 꿀떡 넘어가는. 그런 커피를 좋아해요. 저도 그런 커피를 제공하려고 노력하지만, 1년에 몇 번 없어요. 서너 번 될까요? 제 커피일 때도 있고, 남의 커피일 때도 있는데, 보통 남의 커피예요.
출처가 명확하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커피를 기본적으로 신뢰하고요. 커피도 음식이잖아요.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거니까 어느 나라, 어떤 농장에서 누가 재배했고 누가 로스팅 했는지, 지역부터 가공 방법, 프로세싱까지 명확해야 하죠. 커피만 스페셜티가 아니고 그런 정보를 소비자한테 잘 전달해서 좋은 문화를 이끌어가는 게 스페셜티거든요. 투명하게 공개된 커피 중에서 부담 없이 매일 마실 수있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엄청 비싼 커피는 그리 지향하지 않아요.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주 3일? 제가 아직 변화하는 과정이라 오락가락해요. (웃음) 요즘은 이 공간에서 팀원 각자가 손님들과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어요. 저는 에스프레소만 내리고 주문은 직원들이 받게 하기도 하고요.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서로 안부 정도는 물을 수 있는. 그래서 제가 있건 없건 손님들이 카페를 찾고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곳에서 직원들이랑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일구면서 손님들과도 잘 지내는 거.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게 다예요.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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