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타우의 법칙’…중국 첨단 반도체 확보 위한 ‘게임체인저’ 될까

김유진 기자 2026. 5. 27. 17: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없이도 칩 제조 역량을 개선하는 길을 찾았다.”

중국 IT기업 화웨이의 허팅보 화웨이 반도체사업부 사장(하이실리콘 대표)의 선언이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허 사장은 지난 25일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회로시스템심포지엄(ISCAS 2026) 기조연설에서 2031년부터 1.4나노 공정 첨단 칩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반도체 산업의 문법으로 신봉되어 온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대체하는 새 원칙으로 ‘타우의 법칙’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과연 화웨이의 발표대로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가로막힌 EUV 장비 없이도 첨단 칩을 양산해낼 수 있을까.

로이터연합뉴스
‘신호 전달 시간 축소’ 핵심인 타우의 법칙

그동안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집적회로의 트랜지스터 숫자가 2년 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근간으로 삼아왔다. 트랜지스터를 점점 작게 만들고 밀도를 높이고 회로 선폭을 줄임으로써 성능을 끌어올리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화웨이판 타우의 법칙의 핵심은 초미세화를 통해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높이는 대신, 신호 전달 시간을 줄이는 데 집중한다. 그리스 문자 타우(τ)는 물리학에서 ‘시간상수’를 의미한다. 회로를 마치 종이를 접듯이 수직으로 쌓는 ‘로직 폴딩’ 기술을 활용해 이동 거리를 줄이면 신호 전달 시간도 줄어들어 성능도 개선될 수 있다는 게 화웨이의 주장이다.

사실 이미 작아질 대로 작아진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늘리는 것, 즉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3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 제조를 위한 필수 장비인 EUV 없이는 트랜지스터 축소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타우의 법칙은 미국의 수출통제로 EUV를 들여올 수 없는 중국이 돌파구로 찾은 해법인 셈이다.

네덜란드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업계 지각변동 일으키나

화웨이는 최근 6년간 총 381종의 칩을 이런 방식으로 설계, 양산했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 가을 로직폴딩 설계 기술을 차세대 모바일 칩 기린(Kirin)에 처음 도입하고, 같은 시기 출시되는 신제품 스마트폰 ‘메이트’ 시리즈에도 탑재한다는 계획이다.

화웨이가 목표대로 2031년부터 1.4나노 칩 양산에 들어갈 경우 반도체 업계 판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TSMC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 2028년부터 1.4나노 양산에 들어가기로 한 TSMC나,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고도화해 2029년부터 1.4나노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전자와의 격차가 2~3년 내로 좁혀지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화웨이가 실제 양산이나 상용화에 성공할 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를 접어서 쌓아올리는 방식이 발열에 취약하고 양산을 위한 안정적 수율을 달성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폴 트리올로 DGA 컨설팅 그룹 부회장은 CNBC에 “화웨이가 진정한 1.4나노 칩 제조에 필요한 공정, 수율, 전력, 열 관리, 소자 성능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화웨이가 엔지니어링 전략을 일종의 ‘법칙’으로 둔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중 기술패권 전쟁에 주는 시사점

화웨이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인 2019년부터 미국의 첨단기술 제재의 주된 표적이 되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맥락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화웨이가 실제 도달한 기술력 수준이나 상용화 가능성에 대해선 의심의 눈초리도 있지만, 어찌됐든 미국 제재를 우회해 최종 목표인 ‘반도체 자립’으로 나아가는 길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중국 반도체 산업을 해부한 저서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을 펴낸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화웨이의 기술 발표 배경에 대해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를 풀지 않았는데 중국이 1.4나노 공정 기술을 확보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효과를 내려 한 것”이라며 “한국이 화웨이가 발표한 로직폴딩 기술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그 기술의 이면에 있는 패키징 기술에 대해서는 신경써야 하는 상황임은 맞다. 중국은 우회로 기술을 꾸준히 테스트하고 양산에 무리해서라도 적용하려 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