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서 순직 상록수부대 장병 5명, 19년 만에 훈장 받는다

민소영 입력 2022. 8. 6. 11:00 수정 2022. 9. 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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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동티모르 오에쿠시주 에카트 강 인근에 세워진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추모공원에서 준공식이 열리고 있다. (오에쿠시=민소영 기자)


지난 4일 낮 동티모르 오에쿠시(Oecusse)주 에카트 강 인근. 주변에 민가 한 채 없는 외딴 지역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수 시간을 걸어온 주민 100여 명이 뜨거운 햇살 아래 가득 모였다.

2003년 3월 6일 이곳에서 국제연합(UN)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된 한국군 상록수부대 장병 5명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사고가 난 지 약 20년 뒤, 강변 언덕에는 한국과 동티모르의 우정을 아로새기고 고인들을 기리는 추모공원이 들어섰다.

■ "동티모르에 희망 심어준 상록수부대, 고마워요."

동티모르는 452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 후 1975년 독립했지만, 열흘 만에 인도네시아가 다시 강제 점령했다. 이후 1999년 8월, UN 감독하에 주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결정했으나 친 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유혈사태를 벌였다. 그해 10월, 김대중 정부는 UN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동티모르 동쪽 끝 라우템주(州) 로스팔로스에 상록수부대를 파병했다. 우리 군의 전투부대 해외파병은 1965년 해병 청룡부대 월남 파병 후, 34년 만에 처음이었다.

2003년 동티모르 오에쿠시 주에 파병된 상록수부대 7진 대원들이 현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 지원 활동 ‘블루엔젤 작전’을 펼치고 있다. 상록수부대 7진 제공


상록수부대는 이듬해인 2000년 2월부터 UN 평화유지군으로 전환하고, 서티모르 내 인도네시아 영토에 둘러싸여 고립된 동티모르 영토 오에쿠시주(州)로 주둔지를 옮겨, 지역 재건 지원과 치안 회복, 교육·계몽·의료와 같은 각종 인도적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우리나라는 2003년 10월 철수할 때까지 4년간 군인 3천여 명을 동티모르에 파병했고, 적극적인 대민 지원으로 동티모르 주민으로부터 '말라이 무띤(다국적군의 왕)'으로 불릴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파병 기간에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도 있었다. 2003년 3월, 민병조 중령·박진규 중령·백종훈 병장·김정중 병장·최희 병장 등 5명은 임무 수행 중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운전병이었던 김 병장의 시신은 지금껏 찾지 못했다.

■ 상록수부대 파병 20주년…순직 장병 기리는 추모공원 건립

사고 한 달여 뒤인 2003년 4월, 우리 군은 다섯 장병의 얼굴이 새겨진 추모탑을 만들어 오에쿠시주 시내에 있는 시민공원에 세웠다. 그러나 사고 현장인 에카트강 일대에는 순직자들의 사고 지점 등을 알 수 있는 아무런 표식이나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난 4일 동티모르 오에쿠시주(州) 시내에 있는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추모탑 앞에서 고 김정중 병장의 모친 장홍여 여사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오에쿠시=민소영 기자)


동티모르 주재 한국대사관은 국가보훈처의 예산을 받아 오에쿠시 시내 시민공원에 세워진 기존 추모탑을 재정비한 데 이어, 사고 현장인 에카트 강가에 추모비와 추모 공원을 새롭게 마련했다. 사고가 난 지점은 오에쿠시주 시내에서 비포장 도로로 두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다.

에카트강 추모비 건립은 전임 이친범 주동티모르 대사의 추진으로 이뤄졌다. 이 전 대사는 2020년 11월 추모비 제막식에서 "추모비 제막을 통해 순직한 장병들을 국가가 잊지 않음을 보여줬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정부 정책을 실현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2020년 11월 5일 동티모르 오에쿠시주(州) 에카트 강(江)가에서 상록수부대 장병 5명을 기리는 추모비 제막식이 열린 모습. 주동티모르 한국대사관 제공


이후 김정호 신임 동티모르 대사가 부임하면서, 사고 현장 추모탑 주변을 공원화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모래사장과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던 추모탑 주변은 1년여 뒤, 추모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순직 장병들의 이름과 얼굴, 상록수부대 활동 역사 등을 대리석 판에 새겨, 공원 담벼락에 넣었다. 오에쿠시 주지사는 "추모공원 인근에 아직 찾지 못한 김정중 병장의 이름을 딴 도로를 만들어, 이곳을 지나는 누구나 한국군을 기리고,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추모공원은 지난달 완성돼, 지난 4일 낮 동티모르 주재 한국대사관과 오에쿠시 주지사 등 정부 관계자, 순직 장병 유가족과 당시 상록수 부대장·부대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됐다. 준공식에는 현지 주민 등 100여 명도 참석해, 추모공원을 가득 채웠다. 사전에 알려진 행사도 아니었지만, 알음알음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지난 4일 동티모르 오에쿠시주(州) 에카트 강 인근에 세워진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추모공원 준공식에서 현지 주민들이 헌화 묵념하고 있다. (오에쿠시=민소영 기자)


김영덕 제522평화유지단 상록수부대 7진 단장(예비역 대령)은 "동티모르, 특히 오에쿠시는 상록수부대와 함께 어려움과 즐거움을 같이했던 진정한 친구였다. 마을 어르신들이 나와서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해주실 때,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며 "고인들이 남기신 뜻이 이곳에 깊이 새겨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한 고 박진규 중령의 부인 정혜인 씨는 "거의 20년이 지나 처음으로 오에쿠시를 방문했다. 마을 주민들이 지금껏 상록수부대를 기억해주고 고인을 추모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같이 먼 곳으로 떠난 5명의 영웅이 오에쿠시 주민들 덕분에 편안히 잠든 것 같아서, 유족들도 평안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아르세이노 바노 오에쿠시 특별행정주지사는 "(추모비가 조성된 곳은) 여러분의 집과 같은 곳이자, 동티모르와 오에쿠시,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고 상징하는 장소"라며 "19년간 사랑하는 가족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도 잘 알고 있다. 저희 오에쿠시는 상록수부대와의 추억을 항상 품으며, 순직 장병 5명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동티모르 오에쿠시 주에 파병된 상록수부대 7진 대원들이 현지 주민들과 함께 태권도 교실을 열고 있는 모습. 상록수부대 7진 제공


국방부의 당시 사고 조사 기록 등에 따르면 2003년 3월 6일 오후 4시쯤, 순직 상록수부대원 5명은 동티모르 오쿠시 본부에서 60∼80㎞ 떨어진 동·서티모르 국경지대인 빠사베(Passabe)에 배치된 파견대로부터 발전기가 고장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이를 교체해주러 현장으로 향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 탓에 발전기가 고장 날 경우 냉장고와 전화기가 작동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전기 배터리 충전조차 할 수 없어 평화유지군 본연의 업무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들은 폭우 등 기상 악화로 인해 헬기로 운반이 어렵자, 예비 발전기를 차에 싣고 육로를 선택해 이동했다.

지프 2대에 나눠 탄 5명은 에카트 강을 건너고 있었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이 강은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너른 건천이지만, 많은 비가 내릴 땐 순식간에 강물이 차올라 빠르게 흐르는 곳이다.

이들이 에카트강을 건너던 중, 선행 차량 1대가 강 3분의 2지점에서 원인 모를 고장으로 멈춰 섰다. 5명이 차량을 견인하기 위해 체인 연결 작업을 하는 사이, 상류에 집중된 호우로 강물이 불어나 박진규(당시 35세·육사 46기) 중령, 김정중(당시 22세·운전병) 병장, 최희(당시 22세·통역병) 병장 3명이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렸다.

2003년 3월 6일 상록수부대 장병 5명이 임무 수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에카트 강(江) 현장. (오에쿠시=민소영 기자)


당시 목격자들에 따르면, 떠내려간 전우들을 찾는 지원대장 민병조(당시 38세·육사 43기) 중령과 백종훈(당시 23세·운전병) 병장을 향해 현지 주민들이 “물 밖으로 나오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이들은 "신고해달라"는 손짓을 남기고, 상류에서 떠내려온 통나무를 붙잡아 급류에 휩쓸린 전우들을 구하러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결국, 5명 모두 희생돼 이 가운데 4명의 시신이 강 하류 일대에서 차례로 수습됐다. 김정중 병장은 사고 발생 이후 수 개월간 수색 작전을 펼쳤으나 1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실종 상태다.

사고 당시 지역 주민 수천 명이 강가로 나와, 밤낮으로 실종자 수색에 자발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2003년 3월 말 작성된 UN 평화유지군(PKF·Peace Keeping Force) 사령관 문서에는 당시 상록수부대와 오에쿠시 주민들의 두터운 신뢰 관계를 보여주는 기록이 남아있다.

"2003년 3월 6일, 상록수부대 평화유지군 5명의 목숨을 빼앗아 간 비극적인 에카트강 사고 이후, 상록수부대 단 본부에는 현지인 조문객들이 밀려들었다. 수백 명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실종된 김정중 병장을 찾는 수색작업에는 매일 수백 명의 주민이 자발적으로 도우러 나섰다. 오에쿠시 사람들은 카톨릭 성당마다 추모 미사와 촛불 기도 모임을 열었다. 이러한 주민들의 행동들은 그동안 상록수부대에 대한 오쿠시 주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SPECIAL REPORT - CONTRIBUTIONS OF ROKBATT VII (Oct 2002 to Apr 2003) TO PKF UNMISET, United Nations Mission of Support in East Timor Headquarters Peacekeeping Forces 일부 번역)

상록수부대 7진 대원으로 동티모르에 파병된 최영길 예비역 원사는 "보수나 대가를 받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온 주민들이 다 같이 수색 작업에 참여해, 수십㎞를 떠내려간 실종자들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면서 "사고 직후 수천 명이 주민들이 현장에서 촛불을 띄우고 꽃을 뿌리며 기도하고,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함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김정호 동티모르 대사는 "동티모르는 상록수 장병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서 세워진 나라로 우리나라를 항상 지지하는 든든한 우방"이라며 "오늘날 한-동티모르 양국 관계는 상록수 부대의 파병에서부터 시작됐다. 선린외교의 모범 사례"라고 강조했다.

동티모르 정부는 올해 양국 수교 20주년을 맞아 19년 전 동티모르에서 순직한 장병 5명에게 서훈할 예정이다. 훈장은 오는 8일, 호세 라모스 오르타 동티모르 대통령이 유가족들에게 대신 수여한다.

지난 4일 동티모르 오에쿠시주(州) 에카트 강 인근에 세워진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추모공원 준공식에서 김정호 주동티모르 대사가 묵념 후 거수경례 하고 있다. (오에쿠시=민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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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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