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사랑하는 가족에게 씌워주고 싶은 왕관, 토요타 캠리

토요타 캠리를 시승했다. 최고 사양인 XLE 프리미엄이다. 차체 패널은 지붕 빼고 다 바꿨다. 새로 바꾼 부품만 2,000여 개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파워트레인은 하이브리드 한 가지뿐. 직렬 4기통 2.5L 엔진과 전기 모터, 무단변속기로 앞바퀴를 굴린다. 실제 연비로 따진 경제성은 경차보다 좋다. 캠리는 가족용 세단의 이상적 조건을 빠짐없이 갖췄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토요타

23년 연속 미국의 베스트셀링 세단

토요타 셀리카 캠리 (1980년)
토요타 캠리 (1982년)

역사가 길다고 꼭 좋은 차는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하다. 치열한 경쟁 뚫고 명맥을 이어왔다는 사실이다. 토요타 캠리는 1979년 셀리카의 파생 차종으로 데뷔했다. 1982년 독립 이후 지금껏 명맥을 이어왔다. 이 정도 세월이면 경쟁대상은 외부 차종이 아닌, 이전의 자신. 43년 동안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온 캠리의 핵심 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토요타 캠리는 전 세계 및 세대 휩쓴 SUV 열풍에 아랑곳 않은 채 3박스 세단의 위상을 꿋꿋이 지켜온 주역. 지금의 9세대는 2023년 글로벌 시장에 데뷔했다. 국내엔 지난 11월 출시했다. 캠리의 유래는 ‘왕관’을 뜻하는 일본어 단어 ‘칸무리(かんむり)’. 크라운과 코로나, 코롤라 등 주요 차종에 왕관과 관련한 단어를 고집하는 토요타의 전통에 따른 결과다.

토요타 캠리의 실질적·상징적 고향은 미국이다. 심지어 1세대부터 미국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1988년 5월, 토요타의 첫 미국 현지 생산기지인 켄터키 주 조지타운(Georgetown) 공장에서였다. 오늘날 직원 1만 명, 연간 생산능력 55만 대로, 토요타의 해외공장 가운데 최대 규모다. 2021년 조지타운 공장에서는 자그마치 1,000만 대째 캠리가 굴러 나왔다.

그만큼 많이 팔았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캠리는 미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중형 세단이다. 과거 한때나 최근 실적만이 아니다. 무려 23년 동안 단 한 번도 정상을 놓친 적 없다. 지난해 토요타는 미국에서 렌터카용 대량판매를 포함해 캠리를 29만649대 팔았다. 같은 기간 테슬라 모델3보다 약 10만746대, 혼다 어코드보다 12만7,926대 더 많은 수치다.

한편, 토요타는 미국 이외에 일본과 중국에서도 캠리를 만들고 있다. 캠리 전체 수요의 절반은 미국, 나머지는 그 밖의 세상에서 소화한다. 정작 일본에서는 2023년 말 캠리 판매를 중단했다. 세단 선호도가 떨어지고, 차체가 너무 큰 까닭이다. 실제로 2022년 일본 판매는 6,000여 대에 그쳤다. 같은 기간 글로벌 판매 약 60만 대의 1%에 불과했다.

역사상 가장 날렵하고 잘 생긴 캠리

토요타 캠리 XLE 프리미엄을 시승했다. 2025년형의 최고 사양이다. ‘보는 순간 강렬히 끌리고, 타는 순간 온전히 빠져든다.’ 캠리의 국내 TV 광고 카피다. 이번 캠리는 9세대 째. 차체 패널은 지붕 빼고 싹 바꿨다. 새로 쓴 부품만 2,000여 개. 그러나 플랫폼에 뿌리 둔 정체성은 8세대의 연장선상에 있다. 핵심은 ‘저중심 실루엣’과 ‘와이드 스탠스’다.

“앞으로 토요타는 보는 순간 운전하고 싶은 감정 자극할 스타일로 거듭날 거예요.” 2015년 북미오토쇼에서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회장이 밝힌 다짐이다. 그 영향은 2018년 8세대 캠리로 오롯이 스며들었다. 기존의 획일적 보수주의를 무너뜨렸다. “맙소사, 이제 어떡하지?” 당시 캠리 수석 디자이너 이안 카르타비아노(Ian Cartabiano)의 반응이었다.

그는 8세대 캠리 디자인을 ‘아이디어의 회오리바람’이라고 표현한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흥미진진한 표현을 강조한 까닭이다. 가령 보닛엔 갈라진 물결무늬를 연이어 새겼다. A필러는 위보다 아래쪽이 더 얇다. 그룹 총수의 뜻대로, 역대 가장 스포티한 캠리로 거듭났다. 반면, 9세대는 강박과 과욕을 절제했다. 한층 차분하고 대담하다. 비율과 디테일도 멋지다.

얼굴은 ‘해머헤드(hammerhead)’ 테마로 빚었다. 전작인 크라운과 프리우스보다 완성도가 높다. 토요타의 최신 디자인 콘셉트, ‘건강미(Energetic beauty)’에도 충실하다. 그 결과 캠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젊고 활기차다. 이처럼 근사한 외모는 오너의 자존감 높일 요소. 캠리로서는 이례적이다. 미국의 토요타 디자인 센터, ‘캘티(CALTY)’가 이를 갈았다.

실내는 완전히 새롭다. 외모처럼 지난 세대의 과잉흥분을 다독여 평정을 되찾았다. 작위적 현란함보다 세련된 절제미를 추구했다. 가령 꽈배기처럼 좌우로 교차하며 나눴던 대시보드 구성을 반듯한 구획으로 정돈했다. 투톤 컬러와 새로운 도어 트림 마감재, 디지털 룸미러,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의 12.3인치 디지털 디스플레이 덕분에 이전보다 고급스럽다.

TNGA 특유의 경량·고강성·저중심

신형 캠리 차체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920×1,840×1,445㎜. 길이만 이전보다 40㎜ 길다. 휠베이스도 판박이. 8세대와 밑바탕이 같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제로 이번 캠리는 이전처럼 앞바퀴 굴림 중형·준대형 차종 공용 플랫폼 ‘GA-K’를 밑바탕 삼았다. 토요타가 2012년 도입한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의 결실 중 하나다.

TNGA는 특정 플랫폼을 뜻하는 용어가 아니다. 토요타의 신차 개발 방식 혹은 철학을 뜻한다. 핵심은 ‘개발과 공유’. ① 새 플랫폼과 구동계(파워트레인)를 동시에 개발해 자동차의 기본 성능을 끌어올리고, ② 폭넓게 공유해 개발 비용을 기존보다 20% 낮추며 ③ 아낀 비용은 기술 개발 및 상품성 강화에 투자해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개념이다.

파워트레인 구성은 이전과 같다. 직렬 4기통 2.5L 가솔린 186마력 ‘다이내믹 포스’ 엔진과 행성 기어 조합한 e-CVT 짝 짓고, 전기 모터 두 개를 물렸다. 흡기 저항 줄인 밀러 사이클을 써서 최대토크는 22.5㎏·m로 낮은 편. 대신 전기 모터로 초기 구동력을 살찌웠다. 엔진과 전기 모터의 힘을 키워 시스템 총 출력은 이제 227마력. 8세대보다 16마력 높다.

한편, GA-K의 특징은 저중심 패키지다. 구동계와 시트, 하이브리드 배터리 등 무거운 부품을 낮게 달아 무게중심을 끌어내렸다. 차체 흔들림을 줄여 고속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한, 핫 스탬핑 공법을 쓰고 1,180㎫(메가파스칼) 고장력 강판 비율을 늘려 무게는 덜고 강성은 높였다. 경쾌한 몸놀림을 위해서다. 참고로 9세대의 공차중량은 1,625㎏이다.

신형의 서스펜션 구성은 이전과 같다. 앞은 맥퍼슨 스트럿, 뒤는 멀티링크다. 7세대의 뒤 서스펜션은 더블 위시본이었다. 그런데 GA-K 플랫폼을 도입하며 멀티링크로 바꿨다. 더 균형 잡힌 핸들링과 편안한 승차감을 위해서다. 9세대 캠리는 서스펜션 세팅을 다시 업그레이드해 완성도를 높였다. 꾸준히 개선하고 숙성시킨 장수 차종의 매력은 이런데 있다.

역대 캠리 최고의 경쟁력 뽐내는 신형

‘매순간 고급스럽다.’ 사흘 동안 도심과 교외의 굽잇길과 고속도로 달린 경험은 이렇게 간추릴 수 있다. 운전대 좌우로 살짝 비틀 때마다 차체는 리듬감 있게 따라 붙었다. 움직임의 연결이 쫀쫀하고, 마디마디는 매끈했다. 스프링은 적극적으로 충격을 삼켰다. 댐퍼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이완했다. 심지어 ‘못난이’ 속도방지턱 넘는 순간조차 듬직하고 우아했다.

스티어링은 유격 없이 바짝 조이되 너무 민감하진 않아 편안하다. 트레이드오프도 있다. 중심 감각이 다소 모호하고, 코너링 때 조작감이 조금 가볍다. 그러나 평균적인 운전자라면 만족할 세팅이다. 무엇보다 구성이 거의 같은 8세대와 ‘손맛’ 차이가 뚜렷해 인상적이었다. 운전 감각이 좀 더 선명하고 매끄러워졌다. 그 한 끗발 차이가 고급감을 성큼 끌어 올렸다.

가속은 폭발적이진 않다. 하지만 교통 흐름 주도적으로 이끄는 데 부족함 없을 수준. 해외 매체 테스트 결과, 시승차 같은 앞바퀴 굴림 기준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7.2초. 볼보 S90 B5, BMW 523d, 제네시스 GV70 2.5T 등과 같다. 또한, 엔진과 전기 모터, 회생과 물리 제동 전환 시 이질감을 줄이고, 온디맨드 가압 브레이크로 부드러움을 더했다.

이번 캠리는 ‘쇼퍼 드리븐 카’로, 신분 상승 가능성도 돋보였다. 실제로 시승 기간 중 태운 가족과 지인 모두 뒷좌석 승차감을 칭찬했다. 공조 디지털 스위치 품은 뒷좌석 팔걸이와 등받이 기울기 기능도 매력 포인트.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D세그먼트 세단에서도 기대하기 힘든 사치였다. 다리와 머리 공간이 여유롭고, 낮은 벨트라인 덕분에 시야가 뻥 뚫렸다.

9세대 신형 캠리는 가히 ‘완성형’이라고 부를만하다. 모든 면에서 역대 최고다. 그 결과 렉서스 ES 300h와 간격을 아슬아슬하게 줄였다. 신분 차이 띄운 최후의 저지선은 방음. 하이브리드 배터리 충전 시 엔진 소음이 제법 스민다. 하지만 그마저도 뒷좌석에선 희미하다. 연비는 공인(복합)이 17.1㎞/L인데, 큰 노력 없이 앞자리 숫자를 2로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