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파행…고리2호 수명연장 부산 첫 주민공청회 무산

신심범 기자 2022. 11. 2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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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고리2호기 수명 연장을 위해 25일 개최한 부산 첫 주민공청회가 파행을 맞았다. 부산·울산 환경단체 등은 원전의 안전성을 평가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고 공청회 자체도 일방·졸속으로 진행됐다며 한수원을 규탄했다.

25일 열린 고리2호기 계속연장 주민공청회에서 환경단체가 공청회 개최해 반대하고 있다. 신심범 기자


이날 오후 2시 한수원은 부산 부산진구 부산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고리2호기 계속운전 관련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주민공청회’를 개최하려 했다. 이날 주민공청회는 부산 5개 지역(동래·연제·부산진·동·북구)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주민공청회 대상 지역은 고리2호기 반경 30㎞ 이내 구·군으로, 부산에선 모두 10곳이다. 애초 한수원은 2회에 걸쳐 부산 주민공청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지자체들의 요청으로 횟수를 3회로 늘렸다.

주민공청회는 시작 전부터 파행 조짐을 보였다. 부산·울산 지역 환경단체는 공청회 한 시간 전 기자회견을 열고 고리2호기 수명연장 시도를 비판했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이현숙 상임대표는 “고준위 핵폐기물이 저장되려는 무시무시한 지역의 수백만 시민은 오늘도 무사하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며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을 생명이 없는 사람이거나 무생물, 귀신으로 보고 있다. 지역 주민을 철저하게 짓밟고 무시하는 행위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는 이날 낮 12시15분부터 공청회 단상을 점거해 “공청회를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들은 한수원이 임의로 부산 공청회 대상 지역을 묶어 개최 횟수를 줄였고, 주민 추천 전문가가 의견을 펼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는 등 공청회를 편의적으로 운영하려 한다고 규탄했다. 또 원자력안전법상 보장된 시민대표와의 패널 토론 또한 단순 질의응답으로 대체되는 등 공청회를 형식적 자리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자체도 문제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수원은 이번 공청회에 앞서 2차례에 걸쳐 평가서를 공람케 했다. 그런데 첫 번째 공람서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기준으로 작성됐지만 재공람된 평가서는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심사 기준서를 따랐다. 변경된 평가서에는 원전 중대사고 7개 시나리오 선정 경위를 보충·설명하고 있는데, 정작 방사선이 외부로 누출되는 사고(우회사고) 등 고리2호기 특성에 맞는 사고 시나리오 분석은 빠졌다. 이 밖에도 환경단체는 격납용기 건전성 평가나 확률론적 지진 분석이 빠진 점 등을 꼽으며 평가서가 부실하게 작성됐다고 설명했다.

공청회에는 주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고리2호기 수명연장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손에 드는 등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반면 고리2호기 수명 연장에 찬성하는 주민도 10명가량 공청회를 찾았다. 자신을 한수원에서 30년간 근무한 전 직원이라고 소개한 한 70대 참석자는 “원자력발전소가 (인체에) 나쁘다는데, 나와 우리 가족은 지금도 이렇게 건강하다. 원전이 이 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며 “비행기도 조종사를 믿고 탑승해 안전하게 태평양을 건너가듯, 원전도 기술자를 믿고 격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언 이후 수명 연장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이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갈등이 빚어졌다.

한수원 관계자를 향한 사과 요구도 이어졌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사무처장은 “평가서를 공람한 주민은 대상자의 0.02%밖에 되지 않는다. 공청회 절차가 그만큼 요식으로 진행됐다는 말이다”며 “원자력안전법상 주민공청회가 2회 무산되면 공청회를 진행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한수원이 이를 노리고 파행을 계획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를 두고 한수원 관계자는 “공청회는 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한수원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해야 하느냐”며 반박했다. 환경단체와 한수원의 실랑이가 이어지면서 결국 주민공청회는 이날 오후 3시10분 무산이 결정됐다.


한수원은 조만간 2차 주민공청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고리본부 관계자는 “공청회가 2번 무산되면 관련 절차가 진행된 것으로 인정되는 건 맞지만, 이를 활용할 생각은 없다. 지역주민과 계속해서 소통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앞서 한수원은 지난 23일 울산시 울주군에서 주민공청회를 열었으나 마찬가지로 파행됐다. 당시 주민공청회는 울주군 서생면 주민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주민들은 주민공청회 자리가 사전에 공지되지 않아 진행해서는 안 되며, 고리 2호기 수명연장과 관련해 주민에게 자세하게 설명한 뒤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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