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이재호 기자 2024. 10. 18.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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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2곳, 민주당 2곳 각자 텃밭 지켜… 서울시교육감엔 정근식 “교육 격차 해소, 역사 왜곡 교육 바로잡을 것”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후보(왼쪽)가 2024년 10월16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마련된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조희연 전 교육감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민들은 조희연 전 교육감의 ‘진보 교육’ 기조를 계승할 것을 선택했다. 2024년 10월16일 치른 보궐선거에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96만3876표(50.24%)를 받아 88만1228표(45.93%)를 얻은 조전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번 보궐선거는 조희연 전 교육감이 해직교사 특별채용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치러졌다.

진보 진영 단일화 성공하며 우위 선점

2014년과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던 조전혁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조희연 전 교육감의 10년 ‘혁신교육’이 실패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조희연 심판론’을 내세웠다. 그는 2022년 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을 보수 진영 후보 ‘단일화 실패’로 돌리며 안양옥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과 홍후조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단일화를 이끌어냈지만, 윤호상 후보(한양대 겸임교수)와는 단일화에 실패했다. 윤 후보의 득표율은 3.81%(7만3148표)였다.

반면 정근식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윤 정부의 잇따른 뉴라이트 인사 임명, 뉴라이트 친일 역사 교과서 논란 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정 후보는 선거 막판 최보선 후보의 사퇴로 진보 진영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선거 구도에서 유리한 지위를 선점했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너무 정치 성향이 강한 후보를 내세워서 졌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조전혁 후보는 2010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 시절 교육부로부터 ‘학교 교원의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가입 현황’ 자료를 받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명단을 자신의 누리집에 공개한 뒤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종 패소한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조전혁 후보는 전교조와의 싸움에 너무 몰두하고 집착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근식 신임 서울시교육감은 당선 후 일성으로 ‘교육 양극화 극복’과 ‘올바른 역사 교육’을 강조했다. 2024년 10월17일 서울시교육청으로 출근한 정 교육감은 기자들과 만나 “기초학력에 관련된 우려도 많고, 학습진단 치유센터 계획을 작성하는 사안에 먼저 손을 대겠다”고 밝혔다. 정 교육감은 선거 과정에서 조희연 전 교육감의 ‘혁신교육’에서 학생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면서 전체 학생의 기초학력 수준이 낮아졌다는 지적을 받고 ‘학습진단 치유센터’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이날 발언은 여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 교육감은 지역과 계층에 따른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양극화 지수’를 개발하고 관련 정책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당선 직후 “왜곡된 역사의식이 우리 초중고 교육현장에 발붙이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정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 산하에 역사교육위원회와 역사교육자료센터를 설치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한 바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024년 10월15일 오후 부산 금정구 대한노인회 부산 금정구지회 건물 앞에서 시민들에게 윤일현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금정 민심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울시교육감 외에도 부산 금정구, 인천 강화군, 전남 곡성군, 전남 영광군에서 치러진 기초단체장 보궐선거에선 국민의힘이 두 곳(부산 금정, 인천 강화), 더불어민주당이 두 곳(전남 곡성·영광)에서 승리하면서 각자 ‘텃밭’을 지켰다는 평가가 나왔다.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선 5만4650표(61.03%)를 얻은 윤일현 국민의힘 후보가 3만4887표(38.96%)를 얻은 김경지 민주당 후보를 20%포인트 이상 크게 앞서며 당선됐다. 선거운동 기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류제성 후보)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고,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가 선거 운동에 나섰지만 전통적으로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했던 금정구의 민심은 움직이지 않았다.

금정구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직후에 치러진 2018년 제7회 지방선거를 제외하면 모두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역시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한 인천 강화에서도 박용철 국민의힘 후보가 1만8576표(50.97%)를 얻어 1만5351표(42.12%)를 받은 한연희 민주당 후보를 앞서며 당선됐다.

전남 영광군수 보궐선거에선 민주당의 장세일 후보가 1만2951표(41.08%)를 받아 9683표(30.72%)를 받은 이석하 진보당 후보와 8373표(26.56%)를 받은 장현 혁신당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됐다. 전남 곡성군수 보궐선거에도 조상래 민주당 후보가 8706표(55.26%)를 받아 5648표(35.85%)를 받은 박웅두 혁신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조국 혁신당 대표는 보궐선거 한 달 전부터 곡성의 한 다세대주택에 입주하며 ‘월세살이 선거운동’에 나섰지만 혁신당의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로만 국회의원 12석을 확보한 혁신당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최소 한 곳 이상 승리하며, 지역구로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10·16 보궐선거는 평일에 치러졌음에도 최종 투표율이 24.62%(유권자 864만5180명 가운데 212만8077명 투표)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관심을 적게 받았던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투표(투표율 23.5%)를 제외하면 기초단체장 네 곳의 평균 투표율이 53.9%에 이르러 휴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와 비슷했다. 선거 기간 터져 나왔던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 대법원 선고를 앞둔 조국 혁신당 대표의 투지가 선거 주목도를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표는 선거 기간 동안 일곱 차례나 금정구를 찾아 지원 유세를 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재보궐선거가 실시된 2024년 10월16일 오후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된 더불어민주당 장세일 후보가 배우자 정수미 씨와 영광읍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혁신당과 민주당 교차하는 희비

재보궐선거에서 텃밭을 지킨 한 대표는 10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을 촉구했다. 그는 “김 여사와 관련한 일들로 모든 정치 이슈가 덮이는 게 반복되면서 우리 정부가 추진한 개혁들이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의 걱정과 우려를 이번에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재보궐선거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한 대표는 10월 넷째 주 중 윤석열 대통령을 독대하고 직접 쓴소리를 전달할 예정이다.

호남 지역 보궐선거에서 혁신당에 지면 지지 세력 이탈이 시작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던 민주당은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표는 재보궐선거 결과가 나온 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재보선의 민심을 받들어 정권의 퇴행을 막고, 국민의 삶을 지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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