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는 어떻게 압력밥솥 대기업으로 성장했을까?

[하영균의 진화경제학]
카멜레온이 색을 바꾸는 것처럼
동물세계의 화려한 '의태' 전술
은폐, 경계, 모방, 경고 등 다양
산업계에 한솔교육과 쿠쿠
대기업 못 들어오게 '의태' 발휘

자신을 위장하거나 모방하는 동물들

자연 생태계에는 포식자와 피식자 간 다양한 진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포식자도 생존 전략을, 피식자도 생존 전략을 갖고 진화한다. 이런 생존 전략 중에 신체부위 변화, 특별한 행동 또는 신호 등 다른 동물이나 식물 또는 환경을 모방하는 동물 행동을 의태(擬態)라고 한다. 이런 의태는 각 종마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다양한 의태를 통해 동물들의 화려한 생존 전술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은폐' 전술로 의태를 발전시킨 동물들이 많다. 포식자로부터 숨는 것은 도망을 치는 것보다 에너지 절감이 되기 때문이고, 공간 이동도 하지 않아서도 좋았다. 대신 은폐 전술을 통해 포식자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 때는 자신을 숨기기 위한 의태 능력만 가지면 되지만, 도망을 치는 경우에는 또 다른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도망을 치면 포식자도 그만큼 공진화를 하게 되는데, 의태를 통해 숨는 행위는 공진화의 가능성을 낮춘다. 이것이 오히려 피식자에게는 생존에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해준다. 다만 '의태에 의한 숨기'가 발각되면 어떻게 될까. 심각하게는 종이 멸종의 운명을 맞을 정도로 위험하기도 하다.

하지만 의태로 살아남은 동물의 입장에서는, 이 의태로 숨기를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생존방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자벌레가 나무의 가지와 같은 모양으로 의태를 하거나, 해마가 해초와 같은 색깔을 지니는 형태로 의태를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위장 동물인 카멜레온은 은폐 전술에 뛰어나다. 카멜레온은 위장 의태를 통해 천적인 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위장 은폐 전술을 보이는 카멜레온.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진화한 거라구!

둘째로는 '경계 전술'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이를 '베이츠 의태'(Batesian mimicry)라고 하는데 이를 보고한 학자인 헨리 월터 베이츠(Henry Walter Bates)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방식은 포식자에게 그 포식자를 위협하는 존재 또는 무가치한 존재로 의태를 하는 진화다. 이는 포식자가 그 존재를 기피하도록 만들어 위험을 벗어나는 방식을 말한다.

이 방식도 나름 효과가 크다. 특히 곤충들에게 많이 드러나는 현상인데 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파리의 경우, 벌에 쏘인 경험이 있는 동물에게는 기피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또한 소리를 냄으로써 그런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말벌과 같은 비행 소리를 내서 포식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큰생쥐귀박쥐 같은 종도 있다.

경계 의태의 경우, 의태종은 포식(잡아먹힐) 확률을 낮출 수 있어 이익이다. 하지만 포식자와 의태의 대상이 되는 종은 손해를 입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 포식자가 의태종을 먼저 접촉했다면 진짜로 유해한 종(의태의 대상이 된 종)을 만났을 때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 때 유해한 종 역시 포식자에게 공격을 받게 될 확률이 증가하므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유해한 종에 대한 학습이 먼저 이루어졌다면 포식자는 잠재적 먹이인 의태종 개체들을 놓치게 된다. 의태종은 의태의 대상이 되는 종을 닮는 방향으로, 의태의 대상이 되는 종은 의태종과 달라지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나방이나 꽃등에가 있는데, 이들은 독침을 가진 벌과 같은 모습을 가지거나(벌하늘소) 날개에 부엉이의 눈을 닮게 하는 문양을 지니거나(올빼미 나비)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셋째로는 '상호 모방' 전술을 활용하는데, 둘 이상의 종이 서로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독성이 있는 종들 사이에 비슷한 경고색 패턴을 공유하는 경우 해당하는 전술이다. 독일 동물학자인 프리츠 뮐러(Fritz Muller)의 이름을 따서 '뮐러 의태'라고 한다.

이런 전략을 펴는 이유는 수가 많을수록 생존에 더 강해지고 유리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환경에서 그 수가 많을수록 어느 하나의 개체는 먹힐 확률이 낮아진다. 만일 독성을 지니고 있는 종에 대해 경험을 하게 되면 포식자는 그 다음부터 그 비슷한 종을 회피하게 되어서 생존 확률을 높인다. 포식자가 한 종에 대해 불리한 경험을 하게 되면 비슷하게 보이는 다른 종에 대해서도 기피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계통학적으로도 전혀 관계가 없고 상호 종 간에 먹이 관계도 없지만 상호 필요에 의해서 상호 모방 의태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베이츠 의태와 달리 모방자와 피모방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홍반디과 딱정벌레목이나 열대지방의 독나비나 말벌, 산호뱀 등에서 보이는 의태이다.

몽구스 무리 앞에 선 코브라뱀이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알기에 가급적 피한다.

나, 독있다! 선전하는 동물들도

네번째로는 '경고 전술'을 쓰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위험하거나 포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광고하는 동물이 쓰는 전술이다. 독을 품고 있는 동물들이 이런 전략을 쓰는데, 대표적으로 독을 품고 있는 뱀이 스스로를 광고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독으로 인해서 피해를 본 포식자들은 더 이상은 달려들지 않는다. 이는 한 마리가 희생을 하여 같은 종 전체에 이득을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무당벌레의 경우는 새들이 자신을 잡아먹어도 맛이 없어 뱉어내도록 만든다. 무당벌레가 화려한 색으로 보여 주어서 쉽게 인식은 되지만 한번 경험한 새들은 더 이상 무당벌레를 잡아먹을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전술 구사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속한 종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개체 뿐만 아니라 종의 보존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자신을 위험하고, 잡아먹어봤자 실이익이 없으니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전술이다. 독을 가졌다고 강한 색으로 표현하는 무당개구리나 자신을 위협하는 동물에게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폭탄먼지벌레, 중남미 열대 우림에 사는 독화살개구리와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진화적인 경주 중의 하나인 의태. 일종의 공갈이나 허세에 해당한다. 만일 공갈이나 허세가 들통이 난다면 바로 멸종당할 수 있다. 하지만 들통이 나기 전까지는 종의 보존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의태도 하나의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결국은 포식자와 피식자, 모방자와 피 모방자 간의 상호 진화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로 다양한 형태의 의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의태는 피식자의 '맞춤형 회피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포식자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포식자의 입장에서는 피식자의 개체 수가 일정 정도 조절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먹이원이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효과를 얻는다.

산업생태계에서 성공한 '의태 기업들' 있다

생태계 내의 의태는 산업 생태계 내에서는 어떤 측면과 닮았을까? 이것은 어쩌면 약자인 피포식자가 강자인 포식자의 기피 확률을 높이는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점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대해 회피 행동을 보이는 현상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대항하여 생존 방법을 찾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전술에 해당한다고 본다.

첫째로 은폐 전술이다. 중소기업은 자신이 크게 이익을 보고 있는 시장이나 기술에 대해서 숨기려고 한다. 이런 시장이나 기술이 드러나서 대기업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한 숨긴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이익의 규모나 이익률에 대해서 철저하게 숨기기 때문에, 의외로 그런 제품이나 시장이 있는 것조차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사례로 '한솔교육'이 있다.

이 회사의 초기 시장 전략은 대기업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영유아 교육 시장에 대해 철저하게 숨김으로써 대기업인 대교나 웅진 같은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을 못하게 했다. 한솔교육은 '유아 교육' 시장이라는 생소한 시장에 들어가서 조용히 기업을 키워서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 회사는 '유아들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을 때, 한글 교육을 중심으로 성장을 했다.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철저하게 숨어서 성장을 한 결과, 지금은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미 확보한 시장에서는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한솔교육'과 '쿠쿠', 의태전술로 설명 가능

경계 전술을 사용하는 기업도 있는데,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 들어오면 이익보다 손실이 크다는 점을 부각한 경우이다.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바로 밥솥 시장이다. 지금이야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쿠쿠'지만 쿠쿠라는 브랜드를 만들기 전에는 대기업 하청 기업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IMF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밥솥 사업에서 대기업이 철수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밥솥 시장 규모가 1000억 원 이하였고, 삼성과 LG 두 대기업이 경쟁했지만, 가정에서의 밥솥 폭발 사고로 인해 대기업의 브랜드 인지도에 안 좋은 영향이 생기고 있었다. 밥솥 시장의 규모도 작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질 것 같지 않고, 특히나 세계 시장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전기밥솥을 사용하는 나라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 대기업은 투자보다 손실이 크다고 판단을 하고 시장을 철수했다.

이 작은 시장을 바탕으로 '쿠쿠'는 독자 브랜드로 살아남아 대기업 반열까지 오른 것이다. 분명히 그 시기에 쿠쿠도 밥솥 사업을 포기하고 철수할 수 있었지만, 대기업에는 불리한 요인이 많다는 판단 때문에 오히려 대기업이 다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밥솥 사업을 독자 브랜드로 확장한 것이다.

셋째는 상호 방어를 목적으로 사례다. 이는 중소기업들이 협동조합이나 이익 단체를 구성하여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중고차 매매업이다. 2013년에 중소기업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이 되면서 대기업의 진출이 법을 통해 방어했다. 하지만 2022년 기준으로 해제가 되면서 대기업의 진출이 가능하게 됐다.

현재 국내에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기관으로 '동반성장위원회'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해마다 그 업종을 지정하고 해제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만일 중소기업들이 연합하여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을 받는다면 일정 시기까지는 대기업의 진출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대기업의 시장 진입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개별 중소기업이 아니라 집단 또는 조합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라고 본다.

넷째는 '경고 전술' 전략을 구사한 경우인데,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에 들어올 경우 어느 정도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경우에 해당한다. 대기업 유통 체인점이 골목 상권을 위협할 경우 이를 방어하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과거 할인점이나 대형 유통점 개장 때마다 있었다. 대기업에 비해서 규모의 경제로 밀리기에 자유 경쟁시 약할 수 있지만 지역 내의 다양한 단체나 공공기관들과 협력할 경우 어느 정도의 방어력이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즉 대기업은 자신들이 원하는 지역에 새로운 유통점을 열려고 하면 그 지역 상권의 허가를 받거나 거센 저항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게 됐고, 이는 지역 내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서는 것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지역 유통업체는 이 때문에 지역 상권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을 받기도 한다.

방어는 일시적, 진화를 해야 살아남는다

문제는 방어는 일시적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그 효과를 유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방어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진화로 대기업과의 경쟁에 살아남을 수 있어야 했지만 어느 순간 그 이상 버티지 못하는 지역 상권이 많았다. 진화는 한순간이 아닌 영속적이어야 한다. 중소기업도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버틸 수가 있다.

생존은 처절한 것이다. 대기업의 횡포를 견디고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중소기업이 가지고 있는 시장 규모가 크면 대기업이 들어오기 쉽고, 너무 적으면 중소기업 스스로 생존하기 힘들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시장은 초기에는 작은 시장이라 대기업이 눈독을 들이지 못하지만,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그 시장을 쥐고 있는 중소기업도 따라 커지기에 결국은 대기업으로 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이었다. 이들의 초기 시장은 작았지만 그 미래 잠재력을 믿고 시장을 키워온 결과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기업은 대기업이기 때문에 약한 부분도 많다. 몸을 쉽게 움직이기 힘들고 약하게 보일 수도 없다. 그리고 의태와 같은 중소기업만의 특별한 행동을 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점을 동물들의 의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약하지만 그래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점을 중소기업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