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4℃에서 가장 무거운 이유, 韓 과학자 10년 '뚝심' 연구로 풀었다

이병구 기자 2026. 3. 2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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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팀이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수십년간 난제로 여겨진 물의 특별한 성질의 원천을 실험적으로 규명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포스텍 제공

겨울이 되면 물은 위쪽부터 얼어붙는다. 물은 4℃에서 가장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에 수면 근처의 물이 어는점인 0℃에 먼저 도달하는 원리 때문이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온도가 낮아질수록 일관되게 밀도가 증가하는 다른 물질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물만의 특징이다.

국내 연구팀이 약 10년에 걸친 '뚝심' 연구를 통해 수십년간 난제로 여겨진 물의 특별함의 원천을 실험적으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경환 포스텍 화학과 교수팀이 안데르스 닐손 스웨덴 스톡홀름대 물리학과 교수팀과 공동으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처음으로 관측했다고 27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26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됐다.

● 10년 걸쳐 차근차근 밝혀낸 '물의 비밀'

물은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물질이면서 동시에 생명현상에 필수적인 물질로 꼽힌다. 끓는점이 높고 온도를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인 비열이 높아 지구의 안정적인 기후환경을 이루는 핵심 기반이 된다. 지구밖 환경에서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물의 흔적을 탐사할 정도다.
 

다른 어떤 물질에서도 물과 같은 특성이 관찰된 적 없기 때문에 물의 특별한 성질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두고 학계에서는 수십년 이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영하 45℃보다 낮은 극저온에서 액체인 물의 성질 변화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곳에 물의 비밀이 감춰져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물이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이라는 두 가지 액체 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상온에서 관찰하는 물은 하나의 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런 차이를 알아채기 어렵다.
 

'두 가지 액체 상' 가설을 증명하려면 두 상의 구분이 사라지는 임계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혀내야 한다. 기술적 장벽이 높아 그동안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다.

먼저 영하 45℃보다 낮은 온도에서 얼지 않은 물을 구현하고 성질을 측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영하 20℃까지는 깨끗한 물을 조심히 냉각하면 쉽게 과냉각 상태로 만들 수 있지만 영하 45℃ 이하의 과냉각수는 기존의 어떤 측정 방법보다도 얼어붙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실험적인 접근이 불가능했다.
 

김 교수는 "극저온 과냉각수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반 연구는 꾸준히 있었지만 실험으로는 구현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져 '무인지대(No man's land)'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10년에 걸쳐 물의 비밀을 밝혀내는 연구성과가 차곡차곡 쌓였다. 연구팀은 첫단추로 영하 45℃ 이하의 얼지 않은 물의 성질 측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하고 연구결과를 2017년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3년 뒤인 2020년에는 영하 70℃에서 물이 두 종류의 액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하고 연구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과냉각수 구현에서는 물이 얼어붙는 속도보다 온도를 빠르게 내리는 것이 과제다. 결정 구조가 튼튼하지 않은 비정질 얼음을 레이저로 가열하면 순간적으로 영하 70℃의 극저온에서도 녹아 있는 물을 구현할 수 있다. 영하 70℃의 극한 과냉각수는 10억분의 1g으로 극소량 생성되며, 100만분의 1초 안에 얼어붙을 정도로 찰나에 존재한다.

짧은 시간에 과냉각수의 성질을 측정하는 문제는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해답을 줬다. 태양보다 수십억 배 밝은 빛을 구현해 1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거대 현미경 역할을 한다.

물 연구 서사의 대단원인 이번 연구에서는 물이 두 가지 액체 상에서 하나의 액체 상으로 변하는 액체-액체 임계점의 존재가 처음으로 증명됐다.

영하 50~70℃ 사이 과냉각수의 성질을 측정한 결과 영하 약 60℃ 이하에서는 물이 두 가지 액체 상으로 존재하고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상의 구분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오차는 아직 ±8℃로 넓어 후속 연구에서 줄여 나갈 계획이다.

온도에 따른 물의 밀도를 그린 그래프. 물은 높은 온도에서는 고밀도 물로, 낮은 온도에서는 저밀도 물로 더 많이 존재한다. 4도 근방에서 저밀도 물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온도가 낮아질 때 물의 전체 밀도가 감소하는 현상이 생긴다. 김경환 교수 제공

물이 4℃에서 가장 무거운 이유도 명확해졌다. 

대전제는 물을 포함한 모든 액체는 온도가 낮아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물은 다른 액체와 달리 가벼운 물과 무거운 물의 비중이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온도가 낮아질수록 저밀도 물의 비율이 증가한다.

온도가 낮아지면 밀도가 증가하는 일반적인 액체의 경향성과 물 내부에서 가벼운 물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밀도가 감소하는 경향성이 서로 경쟁하다가 최대 밀도로 균형을 이룬 지점이 4℃인 것이다.

4℃를 지나 어는점 이하로 계속 냉각했을 때 물이 액체 상태를 유지한다면 저밀도 물의 비중이 계속 커지면서 전체 밀도가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낮아진다. 저밀도 물의 비율이 최대가 되면 다시 일반적인 액체의 경향성을 따라 밀도가 계속 증가한다.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0℃ 이하에서 물이 고체인 얼음으로 변하기 때문에 극저온 상태에서 물의 밀도 변화를 살펴보기는 어렵다.

김 교수는 "물을 둘러싼 오랜 학계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성과"라며 "주요 자연 현상에서 물의 역할을 정확히 규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생명과학, 기후변화, 화학 등 수없이 많은 분야가 물의 특성에 좌우된다. 물의 특이한 성질의 근원을 이해하면 관련 연구의 정확도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 "교과서 남을 발견 하겠다" 꿈 이룬 학생

이번 연구는 또 다른 유망 과학자의 탄생 순간으로도 평가된다. 연구의 제1저자인 유선주 포스텍 화학과 석박통합과정생은 2020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도 공동 저자로 참여한 바 있다. 유 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과학자라는 꿈을 꾸면서 교과서에 남을 만한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유 씨는 연구성과 발표 브리핑에서 "아무도 하지 못한 부분을 처음으로 연구한 것이기 때문에 참고할 연구도 없고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이후 7년 만에 진짜로 교과서에 실리는 발견을 해낼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교과서에 실릴 만한 연구들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참고 자료>
- doi.org/10.1126/science.aec0018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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