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왕따 주행 논란, 노선영·김보름이 남긴 상처와 진실

빙판 위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야 했던 세 명의 선수. 그러나 결승선 앞에서 남은 것은 기록이 아니라 깊은 불신과 상처였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불거진 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은 단순한 경기력 문제를 넘어 한국 빙상계 전체를 흔든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노선영, 김보름, 박지우 세 선수의 이름은 평창 이후 ‘팀워크 부재’와 ‘파벌 논란’의 상징처럼 불리게 되었다.

발단, 충격의 장면

2018년 2월,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여자 팀추월 8강 경기에서 노선영은 레이스 후반부에 크게 뒤처졌다. 팀추월은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한 시점으로 기록을 산정하는 종목이었지만, 김보름과 박지우는 노선영이 떨어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속도를 올려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기록은 기대 이하였고, 무엇보다 중계 화면에 잡힌 장면은 국민들에게 ‘노선영을 버리고 달린 두 선수’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경기 직후 김보름과 박지우의 인터뷰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노선영 선수가 잘 따라오지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은 대중에게 차갑게 다가왔고, ‘왕따 주행’이라는 단어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갈등의 불씨, 특혜와 불신

논란은 단순한 경기 장면에서 끝나지 않았다. 노선영은 이후 인터뷰에서 “대표팀 내 일부 선수들이 한국체육대학교와 빙상연맹 실세의 비호 아래 별도의 훈련을 받았다”며 특혜와 불공정을 폭로했다. 이는 이미 뿌리 깊었던 파벌 논란과 맞닿아 있었다.

빙상계에서는 특정 지도자와 선수들이 태릉선수촌 대신 한체대에서 별도 훈련을 받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제기되어왔다. 또한 대표 선발 규정이 특정 선수에게 유리하게 개정되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러한 구조적 불공정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 간 신뢰를 무너뜨렸고, ‘왕따 주행’ 논란은 결국 빙상계 권력 구조를 향한 국민적 분노로 확산되었다.

법적 공방, 법정으로 번진 갈등

논란이 확산되자 김보름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수천 건의 비난 댓글과 청와대 청원까지 이어졌다. 김보름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2018년 노선영을 상대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노선영이 김보름에게 3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왕따 주행’이라는 사실은 인정되지 않으며, 다만 노선영의 발언으로 김보름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선수와 선수, 선수와 연맹, 선수와 대중 사이의 깊은 불신은 해소되지 않았다. 법적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문체부 감사, 고의성은 없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왕따 주행’ 논란에 대한 특정 감사를 진행했다. 경기 영상과 랩타임 분석 결과, 김보름과 박지우가 노선영을 의도적으로 따돌렸다는 고의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마지막 랩에서 속도를 높이는 것은 정상적인 전술적 선택이었으며, 노선영이 따라오지 못한 것은 체력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감사는 다른 진실을 드러냈다. 감독과 선수 간 의사소통이 부족했고, 대표팀 내 파벌 구조와 불공정한 운영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백철기 감독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빙상연맹 부회장이던 전명규 교수는 대표팀 운영과 훈련 과정에 부당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직무 정지와 수사 의뢰를 받았다.

국민 여론, 청와대 청원으로 번지다

당시 국민 여론은 폭발적이었다. 경기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보름을 국가대표에서 제외하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단기간에 60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이는 체육계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거대한 국민적 분노를 보여준 사례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김보름과 박지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빗발쳤으며, ‘노선영은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았다. 반면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에서는 “여론 재판으로 선수 개인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왔다. 하지만 당시 여론의 무게추는 철저히 노선영 편에 기울어 있었다.

이처럼 왕따 주행 논란은 단순한 스포츠 이슈를 넘어 사회적 공분으로 확산되었고, 청와대 청원이라는 제도를 통해 체육 행정과 정치권까지 압박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사회적 파장, 국민의 분노와 체육계 개혁 요구

왕따 주행 논란은 단순한 경기 실패를 넘어 사회적 파문으로 확산됐다. 국민들은 “왜 국가대표가 함께 뛸 수 없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언론은 빙상계 파벌 문제와 지도자 권력 집중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체육계 전반에서는 공정한 선발과 훈련 환경, 지도자의 책임 있는 운영, 인성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선수 간 갈등은 빙상계를 넘어 한국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의 고질적 병폐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남았다.

현재의 행보, 갈라진 길

2025년 현재, 두 선수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노선영은 콜핑 팀 소속으로 선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나 국가대표 무대에서는 사실상 멀어졌다. 평창 이후 연맹과의 갈등, 법적 분쟁은 그녀의 커리어에 큰 상처를 남겼다.

김보름은 강원도청 소속으로 여전히 현역 선수로 활동 중이다. 경기 출전과 더불어 최근에는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법적 분쟁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여론의 상처와 심리적 부담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박지우 역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나, 평창 당시의 논란은 여전히 그녀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꼬리표다.

빙상계가 마주한 과제

평창 팀추월 ‘왕따 주행’ 논란은 결국 선수 개인의 잘잘못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파벌 구조, 불공정한 대표팀 운영, 지도자 권력 남용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였다. 법원 판결과 정부 감사는 ‘고의성 없음’을 확인했지만, 국민이 목격한 장면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2025년, 노선영과 김보름은 각자의 무대에서 여전히 스케이트를 신고 있다. 그러나 빙상계가 풀어야 할 과제는 선수 개인의 갈등이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평창에서의 충돌은 끝났지만, 그 충돌이 남긴 질문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