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관·학계, 주주 보호장치 쏙 빠진 밸류업에 '쓴소리'
재계 "밸류업 세제혜택 시급…연기금 국내주식 비중 축소 안타까워"
국민연금 "공시 확대·주총 분산 필요‥밸류업, 임원보상과 연계해야"
국내외 기관투자자와 학계를 중심으로 한국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대한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들은 여전히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추가하는 상법 개정 등 주주보호 장치가 미진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아울러 기업에서는 밸류업 세제 혜택을 하루 빨리 도입하고 국민연금의 국내 증시 비중 확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기업의 정보 공시 확대와 주주총회 분산 등을 요구했다.
외국계 연기금, 학계 "여전히 소액주주 보호 장치 미흡"
금융감독원과 국민연금공단, 한국거래소는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센터에서 공동으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복현 금감원장,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기경 한국거래소 부이사장과 국내외 기관투자자, 학계 등이 참석했다.
발제를 맡은 아마르 길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사무총장은 "한국은 영문공시와 기업 분할시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안이 법제화됐지만 여전히 해결해야하는 과제가 있다"며 "밸류업 프로그램 출범은 올바른 방향이지만 코리아디스카운트의 근본적 문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책 연속성 확보 △공식적인 이사교육 시스템 △스튜어드십코드 강화 등을 권고했다.
박유경 네덜란드 연기금 APG 전무는 "MSCI 신흥국(EM) 지수에서 한국의 비중이 10년 전 17%에서 13%로 내려왔다"며 "중국처럼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아 자금이 오지않고 대만·인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티핑포인트(임계점)에 와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증시의 체질 개선을 위해선 소액주주를 위한 법적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 전무는 "주주입장에서 자금을 맡긴다면 보호장치가 있어야하는데 상법도 보호를 해주지 않는다"며 "LG화학이 에너지솔루션 분할로 시장에서 물의를 일으켰는데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페널티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영진에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지 권리는 없다. 권리를 갖고있는 유일한 존재는 주주"라며 주주권한을 보장하는 상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증시는) 일반 주주의 부를 편취하거나 뺏어갈 수 있는 구도"라며 "상법이 이것과 관련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추가하는 것은)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과 같은 것인데 이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상법 개정에 적극적이었던 금감원의 최근 입장 변화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지난 7월 최상목 경제부총리께서 경제단체 앞에서 (법 개정) 추진 안 하겠다고 한마디 하고 나서 아쉬웠다"라며 "그 이후에 이복현 금감원장도 말씀 횟수도 줄고 좀 톤도 다운되신 게 아닌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금감원의 규정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009년 전에는 지배구조와 재무구조를 증권거래법에서 관장하고 있다가 지배구조 부문을 상법에 넘겨주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며 "(지배구조 관련 규제를) 다시 자본시장법으로 가져오는 것을 유력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시장법에서 합병 비율, 분할을 관리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정합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재계 "국민연금, 국내주식 더 사달라"
경영계에서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시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맞섰다. 강석호 대한상공회의소 본부장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포함해 15건의 상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며 "기업의 밸류업이라는 당초 목표와 달리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정안 내용에 대해 "1주 1의결권 기본 원칙에 위배되고 회사의 존립 이유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본부장은 밸류업 기업에 지급하기로 한 세제 인센티브에 대해선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 입법 처리가 잘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라며 "입법이 지연될 경우 미리 (밸류업을 실시)했던 기업들이 혜택을 못 받을 수 있으니까 소급하는 안도 고민해달라"고 요청했다.
밸류업 정착을 위해 국민연금 등 '큰손' 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철우 신한금융지주 IR 총괄 파트장은 "글로벌 투자자들을 만나면 장기 액티브 펀드 특히 국내 자금이 많아야 기업가치 제고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퇴직연금 자금이 연 평균 15%씩 늘어나고 있고 그 자금이 안정적으로 주식 시장으로만 유입될 수 있다면 분명히 그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도 사실은 물론 수익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기는 하지만 국내에 대한 주식 투자 비중을 줄이는 부분은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책임형 펀드 6000억 집행…"경영정보 적극 공시해야"
국내 증시에서 16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책임투자형 펀드를 통해 밸류업 기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최근 가치형 위탁펀드 운용사 3개사를 추가 선정한 바 있으며, 총 6000억원 규모를 집행해 투자를 확대했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기업가치 제고 기업에 대한 투자실적에 상응하는 위탁운용사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며 "위탁운용사가 운용하는 책임투자형 위탁펀드에도 적절한 자본 활용 등 기업 가치 노력을 반영해 운용대상과 규모를 차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또 "기금운용본부 내에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지배구조개선 자문위원회 및 3개 분과를 신설·운영중이고, 기금운용 전반에 걸쳐 개선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앞으로 위원회 논의 결과가 나오면, 기금운용 전반에 걸쳐 적절히 반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밸류업 지수는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측은 정보 공유에 소극적인 기업 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실장은 "배당, 이사선임, 합병 분할 등 기업 가치 훼손 우려가 있는 경우 기업과 의견을 나눠보는데, 기업들에게 (물어봐야)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며 "기업들은 이러한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결권 행사가 신중하게 이뤄질 수 있게 주총 분산을 의무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3월 2~4주차에 (주총) 대부분이 몰려있다"며 "일주일에 250개를 한다면 5일 근무하는 직원들이 하루에 50여개의 회사를 분석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기업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서로 불만이 생긴다"고 말했다.
상장사들이 발표한 밸류업 공시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이 실장은 "가입가치 저평가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하는데 그간 해온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는데 그친다"라며 "개선 계획을 만들 때 경영진의 보상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황선오 금감원 부원장보는 "기업 의사결정과 관련해 공시가 너무 부족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고 이사회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지는지, 어떤 기초자료를 활용했는지 등에 대해서 공시하는 것을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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