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 거니까 전셋집 빼세요!" 거짓말 하는 집주인, 법정가면 불리해진다
[땅집고] "전셋집에 살고 있는데, 며칠 전 집주인이 앞으로 이 집에서 실거주하겠다며 방을 빼달라고 통보했습니다. 현재 다른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집주인이 굳이 이 집으로 이사올 이유가 없어 거짓말인 것으로 의심되는데요. 만약 전셋집에서 퇴거하지 않으면 집주인이 명도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시기인 2020년부터 이른바 ‘임대차 3법’이 시행하면서 집주인과 전세세입자 간 갈등이 커진 분위기다. 임대차 3법은 세입자가 임대차계약을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갱신요구권을 보장하지만, 집주인이 해당 주택에 실거주할 계획이 있는 경우라면 세입자의 갱신요구권을 거절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집주인이 실거주할 생각이 없는데도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허위로 실거주 통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통상 전세보증금을 기존보다 더 높여서 받으려는 목적으로 일단 세입자를 내보낸 뒤, 새 세입자를 들이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억울한 마음에 방을 빼지 않으려고 버티는 세입자가 많지만 집주인이 주택을 비워달라고 요구하는 명도소송을 제기한다면 꼼짝없이 전셋집을 내줘야 한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은 집주인이 실거주 목적을 근거로 계약 만료를 통보하더라도 세입자를 상대로 맹목적으로 명도소송을 제기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집주인의 실거주 통보는 법률상 정당한 퇴거 사유로, 세입자가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명도소송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세입자가 아직 갱신요구권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집주인의 실거주 통보로 명도 분쟁이 발생한다면, 집주인은 진짜 실거주할 계획이 있는지 증명해 낼 책임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집주인의 실거주 통보를 믿지 못한 세입자가 갱신요구권을 주장하며 집을 넘기지 않자 집주인이 명도소송으로 대응했는데, 법원은 세입자의 편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에서 1심과 2심 법원은 집주인이 실제로 실거주할 계획이었는지 의문은 가지만 주장에 명백한 모순이 없어 집주인 승소 판결을 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대법원은 실거주에 대한 구체적인 증명 책임이 집주인에게 있는데도, 그가 처음에는 본인 가족이 해당 아파트에 살 계획이라고 했다가 소송과정에서 부모가 거주할 거라고 말을 바꾸는 등 통상적으로 수긍할 만한 정황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세입자의 손을 들어줬다(대법원 2022다279795).
법조계에선 이 판결이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가 진실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사례라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집주인들은 세입자에게 실거주 의사를 밝힐 때 현재 주거 상황, 구체적인 실거주 계획 및 사정을 세입자에게 증명할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집주인이 정말 실거주할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세입자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할 기간을 놓쳤다면 명도소송을 제기하기가 어려워진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임대차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계약 갱신이나 종료에 관해 당사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즉 집주인의 실거주로 인한 계약 만료 통보는 최소한 계약 종료 2~6개월 전에 해야 한다는 의미다.
엄정숙 변호사는 ”만약 법률에서 정한 실거주 통보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묵시적 계약 갱신이 되기 때문에 세입자를 함부로 내보낼 수 없다“며 “한 번 계약이 연장되면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집주인이 실거주 목적이 있더라도 명도소송을 제기하기 어렵고, 세입자의 계약 기간을 보장해 줘야 할 의무가 생긴다“고 했다.
글=이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