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모건스탠리…AI슈퍼사이클 선언 한달만에 돌변 왜?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4. 9. 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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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
지난 9월 15일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글로벌 테크놀러지 분석보고서, 메모리-겨울은 항상 마지막에 웃는다(Memory-Winter Always Laughs Last)의 표지 사진/사진=모건스탠리 보고서 표지사진 캡쳐.


"AI가 주도하는 반도체의 슈퍼사이클이 오는 만큼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30만원으로 제시한다"(2024년 6월 6일)

"내년 메모리반도체 시장 침체가 예상되는 만큼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26만에서 12만으로 하향조정한다."(2024년 9월 15일)

지난 6월과 9월 일본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SK하이닉스에 대한 상반된 전망 보고서다. 그 사이 이같은 반전이 있을만한 이벤트가 있었을까. 사실 3개월만에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53% 이상 급격하게 하향조정하기 전에 이미 전조는 있었다. 그것도 목표주가를 30만으로 올린지 한달여만에 나온 보고서에서다.

모건스탠리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30만원으로 상향했던 'AI-Driven Supercycle(AI 주도의 슈퍼사이클)'이라는 보고서를 낸 지 한달여만인 지난 7월 21일 'Downgrading to In-Line(시장평균으로의 하향조정)'이라는 아시아테크놀러지 분석보고서를 냈다.

6월에 슈퍼사이클이 온다고 주장했던 리포트를 접한 사람들은 7월에 반도체 섹터에 대한 전망을 시장평균(중립)으로 하향 조정한 것에 당황해 했지만 그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빅마우스의 외침에 주가는 그때부터 서서히 하락세를 탔지만 7월의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는 사실 '특별한 것'이 없었다. 주가가 많이 올랐으니 차익실현의 욕구가 강한 시기라는 것이고, 실리콘사이클(4년주기)의 특성상 이제 하락할 시점이라는 정도였다. 그래서 한달여만의 모건스탠리의 갑작스러운 변심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 올림픽 주기(4년)와 맞먹는 실리콘(반도체) 사이클상 2년의 상승기 후에는 2년의 하락기가 온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호황을 노래하다가 갑자기 반도체 침체를 외친 3개의 리포트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반도체 관련 분석보고서의 제목들. 7월부터 반도체 시장 전망에 대한 분위기가 반전된 것을 볼 수 있다.
올1월부터 6월까지만 해도 모건스탠리의 스탠스는 반도체에 대해서는 '강력매수'에 가까웠다. '슈퍼사이클'(Supercycle)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시장 기대를 잔뜩 높여 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보고서에서 모건스탠리는 이전에 긍정적 요인들 모두를 부정적 요인으로 바꿔놨다.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이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HBM의 경쟁심화 △투자증가에 따른 공급확대 △메모리 반도체 재고의 증가로 내년에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 2년간의 반도체 성장세가 꺾이고, 침체기가 올 예정이니 대비하라는 게 요지다.

반도체 시장을 30년 이상 겪어본 사람들은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를 읽어보고는 당연한 얘기를 좀 과하게 해석했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한다. 기자의 생각이 아닌 30여년 애널리스트 생활을 한 외국계 리서치본부장의 생각이다. 다만 이 보고서가 슈퍼사이클을 외친 직후 나왔다는데 대해 의아해하고 있다.

6월 슈퍼사이클을 외친 직후 태세를 전환한 모건스탠리는 7월 반도체 전망을 하향조정한 아시아테크놀러지 분석보고서에 이어 한달 간격으로 글로벌테크놀러지 보고서와 하이닉스 분석보고서를 내며 '침체'를 외쳤다.

8월 20일에 낸 '고점에 대비하라'(Preparing for a Peak)는 분석보고서는 7월 '다운그래이딩' 보고서와 결을 같이 하는 '실리콘사이클'상 고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내용이다. 약 한달 뒤인 지난 15일 발간해 최근 논란이 된 '겨울이 다가온다(Winter Looms, 38페이지)'와 '메모리-겨울은 항상 마지막에 웃는다(Memory-Winter Always Laughts Last, 79페이지)'라는 리포트는 반도체의 지역별(한국·중국·일본·미국), 종목별(삼성전자·마이크론·난야 등) 상황을 분석한 것이다.

요점은 마찬가지로 2023년 1월 이후로 주가가 많이 올랐고, 실리콘사이클상 정점이라는 점과 함께 지난 6월 슈퍼사이클이라며 공급부족률이 -11% 정도로 예상했던 HBM(고대역 메모리)이 오히려 공급과잉의 우려가 있고, 내년에 메모리 섹터가 수익 하락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점이 차이다.

당초 모건스탠리가 6월 슈퍼사이클을 주장했을 때는 공급부족률이 2025년까지 HBM은 -11%, 전체 D램은 -23%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HBM의 수요는 크게 늘어 전체 D램 공급의 30% 이상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지만 이 전망을 1개월여만에 뒤집은 것이다.
2017년 11월 '멈춰야할 시간'이라며 부정적 전망을 내놨지만 2018년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2021년 8월 '겨울이 온다'고 했다가 실적이 좋아지자 12월엔 '온난화를 만났다'고 전망을 수정했다. 2022년 10월에는 '빙하기가 끝을 보인다'고 전망했으나 2023년은 메모리 업계는 최악의 빙하기를 맞았다./그래픽=이지혜 디자인 기자
반도체 기업 vs 모건스탠리, 누가 맞을까?...D램·낸드 재고 각각 62주·67주

모건스탠리는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주요 공급 및 수급 기반 리스크에서 반도체 재고증가를 우려했다. 모건스탠리는 채널을 점검한 결과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재고가 각각 62주와 67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터무니 없는 분석"이라고 맞받아쳤다. A사 관계자는 "2022년말에서 2023년초에는 재고(생산업체+고객 보유분)가 1년(52주)를 넘어선 적이 있지만 감산을 통해 이를 해소했다"며 "재고로 수조원에서 십수조원의 적자를 본 메모리 업체들이 현재도 그 수준의 재고를 가졌다는 것은 지나친 분석"이라고 말했다.

또 B사 관계자는 "재고 규모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긴 힘들지만 2분기까지의 재고는 매우 정상화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PC와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범용 D램이 기대보다 잘 팔리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지만 지난해 워낙 실적이 좋지 않아 D램 메이커들이 재고를 최대한 줄여온 상태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 C씨는 "모건스탠리의 시장전망이 △삼성전자라는 HBM 경쟁사의 등장과 생산시설의 확대 △중국 CXMT(창신메모리)의 DDR4 확대 등으로 메모리 시장의 경쟁이 격화될 것이라는 데 기인한다"며 "이는 메모리 업체들이 범용D램을 늘리지 않고 투자도 HBM과 미세회로 공정전환에만 집중해 범용 D램 생산량 증가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과한 재고 전망에 대한 오류로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미래 수익에 대해 오판하고, 이로 인해 주식시장에서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아시아 헤더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모건스탠리가 바라보는 방향(실리콘사이크의 정점 도래)이 옳을 지는 모르지만, 시장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1년 8월 '겨울이 오고 있다'는 보고서를 낸 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2022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다. 반면 '빙하기의 끝이 보인다'는 2022년 10월의 보고서가 나온 다음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조원에서 십수조원의 적자를 내는 등 보고서와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사진=삼성전자사업보고서 매출추이.
연이은 뒷북에 엇박자...'빙하기 끝' 보고서 후 메모리 대규모 적자
삼성전자의 최근 10년 주가 추이. 모건스탠리의 매도 보고서(파란화살표지점)는 주가가 하락한 이후에, 매수 리포트(빨간화살표지점)는 주가가 오른 이후에 주로 나오는 뒷북 보고서의 성격이 짙어보인다. 또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뒤 1년은 실적이 좋고, 그 이듬해에 오히려 실적이 악화되는 양상을 보여 엇박자 전망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사진자료=삼성증권 HTS 캡쳐.
모건스탠리가 지난 6월 'AI 슈퍼사이클' 보고서와 7월 '반도체 시장전망 하향' 보고서처럼 단기간에 태세를 전환하거나 엇박자를 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11월 26일 '고마워 메모리, 잠시 멈출 시간(Thanks for the Memory, Time For a Pause)'이라는 반도체 보고서를 낸 모건스탠리는 당시 메모리가 정점에 도달했다며 이제는 잠시 멈출 때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로는 흔치 않게 삼성전자에 대해 투자의견을 '비중확대'(Over weight)에서 '중립'(Equal weight)으로 낮췄고, 목표주가도 10만원 하향(280만원, 이후 1/50 액면분할 5만 6000원)조정했다.

이 보고서가 나온 다음날 하루에만 삼성전자의 주가는 5% 이상 빠져 시가총액이 18조원 증발했고, 당일 코스피에서는 25조원의 시총이 날아갔다. 당시에도 논란이 일자 모간스탠리는 "2018년 1분기 이후 D램 사이클이 부정적으로 돌아설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해 투자의견을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년 후 삼성전자의 실적이 모건스탠리가 틀렸음을 증명했다.

실적이 나빠질 것이라던 2018년에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86조 2900억원)은 16%, 영업이익(44조 5700억원)은 27% 급증했다. 반도체의 영업이익률은 50.2%에 달했다. 모건스탠리의 '악담'이 무색하게 된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2018년 8월에도 지표들이 '적색등을 켜고 있다(Indicators are flashing red)'며 비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안식 기우제' 리포트를 냈다. 이듬해인 2019년 메모리 시장에 침체가 왔지만 그 원인은 모건스탠리가 주장했던 이유가 아니라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 한일 갈등, 홍콩 시위 등 정치적 이슈로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된 영향이 컸다.

SK하이닉스의 최근 10년 주가 추이. 모건스탠리의 매도 보고서는 주가가 하락한 이후에, 매수 리포트는 주가가 오른 이후에 주로 나오는 뒷북 보고서의 성격이 짙어보인다./사진자료=삼성증권 HTS 캡쳐.


최근 다시 유명세를 탄 2021년 8월 11일 발간한 '메모리-겨울이 오고 있다(Memory-Winter is Coming)'는 분석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9만 8000원에서 8만 9000원 하향조정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삼성전자 실적이 나쁘지 않자 3개월만에 슬그머니 "예상보다 D램 시황이 나쁘지 않다"면서 다시 목표주가를 9만 5000원으로 상향하더니 12월에 '겨울이 지구온난화를 만났다(Winter meets global warming)'는 말장난 같은 보고서로 부실한 전망을 다시 뒤집었다. 모건스탠리는 겨울이 온다고 했지만 2022년도 썩 나쁘지 않은 가을 날씨정도는 됐다는 게 업계의 평가였다.

그러자 모건스탠리는 2022년 10월 4일엔 '빙하기의 끝이 보인다(Ice Age-End In Sight)'는 긍정적 분석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중국/대만의 반도체 전망을 '주의'(Cautious)에서 '매력적'(Attractiv)으로 상향으로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의 하향곡선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이유를 들며 2023년에 대한 '희망가'를 불렀다. 하지만 이 또한 빗나갔다. 빙하기의 종료를 얘기했던 2023년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게는 창사 이래 최대의 혹한기였다. 삼성전자는 14조 8700억원, SK하이닉스는 7조 7000억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한 한해였다. 빙하기의 끝이 아니라 더 추운 빙하기 그 자체였다.

2024년 9월 한국 증시를 흔들어놓은 '겨울보고서'도 1년 후를 지켜볼 일이다. 세계 반도체 무역 통계(WSTS)는 2024년 봄 예측을 상향 조정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16.0%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올해 시장은 6110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이는 컴퓨팅 최종 시장에서 지난 2분기의 강력한 성과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세계반도체통계기구(WSTS)가 1986년부터 2024년까지 36년간의 전세계 반도체 시장규모를 그린 그래프다. 3MMA는 3개월 매출이동 평균을 의미한다. 추세상 2024년 이후에도 상승세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래프다./사진제공=WSTS.


또 2025년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12.5% 성장해 6870억 달러에 달할 것로 예상했다. 메모리 및 로직 부문에서 전년 대비 25%와 10% 이상 성장해 2025년에는 각각 2000억 달러 이상으로 WSTS는 예상했다.

모건스탠리의 전망과 다르게 기업들의 실적은 움직였지만, 주가는 빅마우스의 외침에 동조한 모습을 보였다. 시장의 불안을 먹고 사는 비즈니스의 특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모건스탠리의 최근 주장은 주가가 많이 올랐고 이제 수익을 실현하고 기다렸다가 다시 주가가 내리고 메모리 수급이 안정되면 다시 사라는 딱 거기까지의 얘기다. 모건스탠리는 '겨울장사'로 시장의 주목을 충분히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맞든 틀리든. 대부분의 분석은 과거 데이터의 분석으로 미래도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확률 50%인 동전 던지기 게임이다.

다만 겨울 놀이에 맛들인 모건스탠리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겨울 뒤엔 항상 봄이 온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난 36년간 9번의 실리콘 사이클에서 그 봄의 고점은 항상 이전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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