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조건 없이 “휴전 지지”…이, 레바논에 지상군 추가배치
무선호출기(삐삐) 동시 폭발 테러, 레바논 전역에 대한 공습, 지상군 투입 등 최근 3주간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으로 코너에 몰린 헤즈볼라가 사실상 이스라엘에 굴복한 모양새란 평가가 나온다. 이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전 수장 하산 나스랄라, 차기 수장 하솀 사피엣딘 등 주요 지휘관들이 대부분 사망한 상태다. 또 미사일과 로켓 발사대, 침투용 땅굴, 무기고 등 군사시설도 대거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하마스와 헤즈볼라 무력화’를 강조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강경 일변도 정책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네타냐후 총리가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1일 이스라엘 본토를 미사일로 타격한 이란에 대한 보복 수위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보복에 돌입하면 중동 정세는 더욱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 “헤즈볼라, 이스라엘 ‘힘’에 굴복”
8일 CNN에 따르면 카셈 사무차장은 비공개 장소에서 녹화된 영상 연설에서 “(이스라엘과의) 휴전이 성사되고 외교의 장이 열리면 다른 세부 사항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이 발언을 두고 카셈 사무차장이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했지만 이제 그 연결고리를 끊었다고 평가했다. 무선호출기 테러, 헤즈볼라 고위 인사 암살 등에 나선 이스라엘이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는 의미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도 “최근 1년간 전 세계가 요구한 휴전에 동의하지 않던 헤즈볼라가 갑자기 말을 바꿔 휴전을 원한다”며 “헤즈볼라의 입장이 불리해졌음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은 미국과 아랍 주요국이 중동의 휴전을 위해 헤즈볼라,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과 비밀 회담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휴전 조건으로 “이스라엘 국경과 가까운 레바논 남부가 근거지인 헤즈볼라를 레바논 리타니강 북쪽으로 이동시키고, 국경 일대에 있는 헤즈볼라의 주요 군사 기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력을 사실상 제거하는 조치로 이란이나 헤즈볼라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란 분석이 나온다.
● 네타냐후, 강경 노선 고수
이스라엘은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당초 9일 미국 워싱턴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회담하기로 했던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방미 일정이 8일 전격 취소된 것은 네타냐후 총리의 반대 때문이라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이 보도했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갈란트 장관은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 귀환 등을 위해 조속한 휴전 등을 강조하며 네타냐후 총리와 줄곧 대립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에 대한 보복을 미국과 합의하기 전 갈란트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다른 목소리를 낼까 우려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 지상군을 속속 추가 배치하는 등 지상전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레바논에 배치된 이스라엘군은 최소 2만 명으로 추산된다. 또 네타냐후 총리는 8일 연설에서 “헤즈볼라의 새 수장 하솀 사피엣딘이 3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무인기(드론)와 저격수 등을 이용해 피란길에 오른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마스 공격을 위해 6일부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를 다시 포위 중인 이스라엘군이 자신들의 대피 명령에 따라 인도주의 구역으로 가던 피란민에게 발포했다는 것이다. 자발리야 주민 이타프 하마드 씨는 CNN에 “이스라엘군이 움직이는 건 모두 다 쏜다”며 “6일 숨진 조카의 시신을 수습하고 싶지만 외출은커녕 창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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