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우와 정해영의 충격적인 부진에 가렸을 뿐, 아시아쿼터 제리드 데일(26)의 결장도 KIA 타이거즈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데일은 28일 SSG와의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서 빠진 뒤 대타, 대수비, 대주자로도 끝내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10개 구단 유일한 타자 아시아쿼터입니다. 80억원짜리 박찬호 공백을 2억원에 메우겠다고 데려온 선수가 개막전 벤치를 지켰습니다.

KIA가 데일을 영입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붙박이 유격수 박찬호가 FA로 두산에 이적하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총액 15만 달러(약 2억 2600만원). 80억원 유격수 공백을 단돈 2억원에 메울 수 있다면 대성공입니다.

데일은 호주 멜버른 출신으로 2019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은 뒤 트리플A 2시즌을 포함해 총 6시즌을 뛰었고, 지난 시즌에는 NPB 오릭스 2군에서 41경기 타율 0.297을 기록했습니다. 2026 WBC에도 호주 국가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야수입니다.

그런데 시범경기에서 좀처럼 기지개를 켜지 못했습니다. 11경기에서 31타수 4안타 타율 0.129 2득점에 그쳤습니다. 장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지만, 외야로 시원하게 뻗는 타구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이범호 감독은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극약처방을 내렸습니다. 데일의 타격감을 살려주기 위해 하위타선에 배치하는 배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팀 승리를 위해 타격감이 좋은 박민을 유격수로 기용하면서 데일을 뺐습니다.

이범호 감독은 경기 전 데일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현재 컨디션이 박민이가 가장 좋아 먼저 내보내기로 했다. 정현창이와 데일, 그리고 민이까지 3명을 놓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데일의 경우 현재 컨디션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또 개막전이라 본인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어서 "컨디션, 그리고 수비적인 부분에서 박민이 굉장히 좋아졌다.
지금은 컨디션이 제일 좋은 선수를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데일도 최근 연습할 때 굉장히 좋았다고 하더라. 다만 한국의 개막전을 아직 못 본 것도 있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지켜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만약 데일을 유격수로 썼다면 박민이 3루수로 나갔을 것이고, 김도영이 지명타자로 기용됐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나성범이 우익수로 들어가면서 시범경기에서 타격감이 좋았던 윤도현과 오선우를 동시에 기용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대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이범호 감독이 데일을 벤치에 앉힌 건 냉정한 결단이었습니다. 컨디션 좋은 선수들을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시즌 초반 총력전 모드입니다.
KIA는 이날 9회초에 1점을 추가한 끝에 6-3으로 앞서며 사실상 승기를 굳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클로저가 무너졌습니다. 정해영이 아웃카운트 1개밖에 잡지 못한 채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3실점으로 무너졌고, 뒤이어 나온 조상우마저 아웃카운트를 1개도 책임지지 못한 채 1피안타 2볼넷 1실점으로 끝내기 폭투를 범하며 패전의 멍에를 썼습니다.
불펜진만 무너지지 않았다면 KIA가 거의 다 잡은 경기였습니다. 총 12안타를 때려낸 타선도 좋았습니다. 카스트로가 5타수 3안타 2득점으로 활약했으며, 클린업 트리오에 배치된 김도영, 나성범, 김선빈은 나란히 멀티히트를 기록했습니다.

데일도 박민, 정현창, 김규성 등을 제쳐야 출전시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 아시아쿼터로서 경기에 나갈 가치와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박민, 정현창, 김규성은 주전 경험이 없는 선수들입니다.
데일이 이 선수들을 실력으로 확실히 누르지 못하면 리그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박민이 막상 개막전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는 못하면서, 당장 29일 경기에서 데일이 유격수로 선발 출전할 수도 있습니다. 또 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분명한 건 이범호 감독이 당장 데일에게 붙박이로 한 자리를 주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시범경기에서 그만큼의 믿음을 주지 못한 대가입니다. 결국 데일이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막과 함께 시련의 시간이 시작될 수도 있고, KIA는 아시아쿼터 투수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데일로선 일단 출전기회가 주어지면 확실하게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