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츠 씨, 염치 좀 챙기시길

사진 제공 = OSEN

고급진 WBC 출전 발표

두둥~.

SNS에 사진 두 컷이 올라왔다. 모든 야구팬들의 눈길이 쏠린다.

한 장은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다. 다른 한 장은 2023년 WBC 때 우승 장면이다.

계정 주인은 오타니 쇼헤이(31)다. 이런 멘션이 달렸다.

“또 한 번의 멋진 시즌을 보내게 해 준 모든 팬들께 감사드린다. 열심히 훈련해서 내년에도 만나길 기대한다.”

의미심장한 말이 이어진다.

“다시 일본을 대표하고, 플레이하게 돼 기쁘다.”

그의 SNS 활용법은 특별하다. 중요한 일은 언제나 직접 알린다. 다저스행 결정, 결혼 소식 등이 그랬다. 덕분에 기자들은 뒷북(?)만 치면 된다.

메시지도 고급지다. 간결하고, 확고하다.
이번 일도 그렇다. 1~2주 전부터 세상이 시끄러웠다. 오타니의 WBC 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걸 속 시원하게 정리해 준 것이다.

‘고민해 보겠다.’ ‘상태를 점검해 봐야겠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따위의 어정쩡함은 없다. 강한 표현도 아니다. 그냥 담담하다. 그리고 깔끔하다. 하지만 확고한 결심이 느껴진다.

이미 그의 참전은 기정사실이 됐다.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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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못 마땅한 로버츠

당초 불을 지핀 인물이 있다.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53) 감독이다. 월드시리즈 직후다. 일본의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WBC는 선수들, 또 각 나라에 매우 중요한 대회다. 출전 여부는 선수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선수들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다저스의 일본인 3명 얘기를 꺼낸다. 오타니와 야마모토 요시노부, 사사키 로키에 대한 부분이다.

“세 선수가 참가하기로 결정한다면 응원할 것이다. 그런데 요시(야마모토)는 많이 던졌고, 로키는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다. 쇼헤이 역시 복귀 후 많은 이닝을 던졌다. 이들을 보호하고 싶다. 2026시즌 준비를 위해 잘 쉬었으면 좋겠다.”

뭐, 그럴 수 있다. 선수 걱정이다. 또 팀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감독으로서 당연하다.

오타니도 처음에는 답을 피했다. “WBC에 대해서는 우선 구단과 상의할 문제”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자 미디어들이 반응한다. ‘다저스 구단과 로버츠 감독이 반대한다.’ ‘출전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목소리 톤을 높인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사자의 뜻이 바뀐 적은 없다. <…구라다>는 그렇게 추론한다.

다만 오타니가 초기에 보인 유보적인 태도는 나름의 격식과 배려일 것이다. 감독이나, 구단의 입장을 생각해서 ‘상의’라는 단어를 꺼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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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구시렁 대는 로버츠

그래서 일이 그렇게 됐다.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또 시작이다. 구시렁구시렁 말이다. 말 많은 로버츠 씨의 입이 쉬지도 않는다. 왜 그리 인터뷰는 많이 하는지. 가는 곳마다 흘리고 다닌다.

일본의 AMEBA라는 방송이 있다. 아사히 신문 계열의 인터넷 TV다. 지난 5일 방영된 내용이다. WBC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진행자 “WBC에 대해 오타니와 얘기했나.”

로버츠 “그 결정은 본인에게 맡겼다.”

진행자 “오타니는 출전을 결심했는데.”

로버츠 “타자로서, 지명타자라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투타 겸업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진행자 “야마모토의 경우는 어떤가.”

로버츠 “2년간 많이 던졌다. 쉬는 기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일본이 8강전 이후 미국에서 치러지는 본선 라운드에 진출한다면, 거기서 1~2경기를 등판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출전하더라도, 최소한으로 줄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사키 로키에 대해서는 더 완강하다. 재활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출전 자체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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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감독이 있는데, 감 놔라 배 놔라”

염치(廉恥)라는 말이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로버츠는 기억해야 한다. 바로 1~2개월 전 일이다.

월드시리즈 6차전이었다. 선발 야마모토가 6회까지 버텼다(승리투수). 투구수가 96개로 적지 않았다. 가을 동안 누적된 피로감이 상당하다.

다음 날이다. 벼랑 끝 7차전이 피 말리는 접전으로 이어진다. 4-4 동점이던 9회 말이다. 다저스가 1사 1, 2루의 위기에 몰린다. 1점이면 끝나는 상황이다.

여기서 믿기 어려운 일이 펼쳐진다. 투수 교체다. 전날 100개 가까이 던진 야마모토를 다시 마운드에 세운다.

잠깐 등판이 아니다. 10회 말에도, 11회 말에도 바꿔주지 않는다. 불펜에는 다른 투수들이 있었지만, 눈길도 주지 않는다. 결국 이 승부수는 적중했다. 다저스의 2연패가 이뤄졌다.

오타니 역시 마찬가지다. 포스트시즌 내내 풀 가동된다. 타자로는 한 타석도 쉬지 않았다. 그것 만이 아니다. 선발 투수로 4경기를 책임졌다. 20.1이닝을 막아낸 것이다.

물론 혹사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무리한 기용이라고 할 수도 없다. 비상의 조치였고, 응당한 활약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쓴 것은 어쨌든 감독이다. 본인 입장, 팀 상황, 그런 것만 따지면 곤란하다. 염치 좀 챙기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다.

일본 내 여론도 싸늘하다. “우리 대표팀에도 엄연히 감독이 있다. 그런데 ‘오타니는 타자만, 야마모토는 1~2게임만’ 하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다.’ 그런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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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를 대표하는데, 무슨 허락...”

2023년 WBC 때다. 결승전서 미국과 일본의 매치업이 이뤄졌다.

9회까지 치열하다. 3-2의 한 점 차 승부다. 마지막 아웃 1개만 남았다. 마운드에는 오타니, 타석에는 마이크 트라웃이다. (당시는 같은 에인절스 소속이었다.)

볼 카운트도 끝까지 간다. 3-2에서 6구째였다. 예리한 스위퍼가 홈 플레이트를 훑고 지나간다. 배트가 끌려 나온다. 헛스윙. 삼진이다.

투수 오타니의 포효로 피날레가 장식된다. 야구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장면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WBC를 창설한 뜻이 가장 완벽하게 재현된 순간이기도 하다.

로버츠 씨의 말대로면, 내년에는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2013년 WBC를 앞둔 시점이다. 탬파베이의 마무리 페르난도 로드니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

기자 “구단으로부터 출전 허락은 받았나?”

로드니가 정색하며 이렇게 반문한다.

“내가 내 나라를 대표하겠다는데, 구단의 허락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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