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코씩 엮어가는 삶의 회복과 연대

2026. 11. 7. 00: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떤 뜨개도 개인적이지 않았다
로레타 나폴레오니 지음
장상미 옮김
유유
실을 잇는 여자의 손
니콜 네리그 지음
이영아 옮김
돌고래

글쓰기와 뜨개질을 좋아하던 여성이 맞닥뜨린 삶의 위기를 ‘실’로 극복하면서 쓴 ‘글’. 두 책의 공통점을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글쓰기와 뜨개질은 모두 인내심을 요구하는 창작 행위이면서도 자생적 치유력이 있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면서도 방법론적 차이가 있는데 『실을 잇는 여자의 손』이 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그 치유력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면, 『어떤 뜨개도 개인적이지 않았다』는 개인적 서사를 확장함으로써 치유의 세상과 연결돼간다.

11세기 잉글랜드 역사를 천에 수놓은 작품을 재현한 예술가 미아 한슨. 자수와 뜨개질은 역사를 전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사진 조 기든스]
『어떤 뜨개…』의 저자는 어릴 적 할머니한테 뜨개질을 배우면서 들은 이야기에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삶을 배웠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물레를 모두 없애는 바람에 양모산업이 무너져 경제가 파탄났다가 공주가 깨어난 뒤에야 되살아났다는 얘기. 찰스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에 쓰지 않았던 ‘트리코퇴즈(프랑스혁명 때 단두대 앞에서 뜨개질을 했던 프랑스 여성들)’ 얘기. 결혼 전 남자에게 스웨터를 떠주면 헤어진다는 할머니 조언을 따라 마음에 안드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는데 성공한 것처럼 책에도 없는 얘기들 말이다.

그러니 남편의 무리한 사업으로 재정 파탄과 이혼을 겪은 그녀가 삶의 조각을 다시 짜맞추기 위해, 본업인 경제컨설턴트가 아니라 실과 바늘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한 코 한 코 반복과 인내를 거듭할 때마다 할머니의 지혜가 더해지면서 뜨개질은 마음의 요가가 됐고 통증을 없애는 진통제가 됐다.

저자는 기적 같은 경험을 나누기 위해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자료 조사를 하면서 몰랐던 뜨개질의 힘과 역사를 발견하게 된다. 책은 고대 이집트와 페루, 몽골, 알래스카까지 각각의 환경에 맞춰 발달해온 뜨개질의 문화사를 훑으며 역사적 순간마다 뜨개질이 수행한 정치·사회적 역할을 드러낸다.

1차 대전 때 군수 부족에 허덕이는 영국군에 (남은 실로 뜨다 보니 총천연색이 많던) 털양말과 털모자 등을 보낸 ‘자발적 뜨개’ 운동은 정부를 긴장시킬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2차 대전 때는 뜨개 제품 속에 암호를 숨긴 ‘뜨개질 스파이’가 활약하기도 했다.

뜨개질은 더 이상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요리만큼은 아니더라도 점점 더 성별, 인종, 사회적 지위를 초월한 활동이 돼가고 있다. 저자는 뜨개질이 “서로가 있어야만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놀라운 공예”라고 말한다. 이제 보니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 직조물로 전시장 천장을 감싸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마타오 컬렉티브의 ‘타카파우’도 그런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실을 잇는…』의 저자 역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위기를 겪는다. 대학 강의와 병원 심리치료를 병행하던 일상이 깨졌지만 스물여섯 살부터 계속해온 뜨개질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5년을 계획한 연구가 강제중단됐는데도 아쉽지 않더란다. 뜨개질이 “정신을 자극해줄 다른 활동”을 찾아줬기 때문이다. 그 활동의 결과물이 이 책이다. 저자는 고대 신화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직물 노동’을 통해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왔는지 탐구했다.

책은 뜨개질뿐 아니라 직조, 퀼트, 레이스, 자수 등 ‘바느질’로 통용되는 모든 공예 예술을 섭렵했다. 잉카 전통을 전승하는 페루의 직조 장인들, 중국 먀오족의 옷에 정교하게 수놓아진 이야기, 3000년 넘게 팔레스타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계승한 타트리즈, 색실을 뽑아냄으로써 오히려 회복된 정의가 직조된 미국 남부연합기, 4세부터 100세까지 모두 416명(그중에는 지금의 영국 왕 찰스 3세까지 있었다)이 바늘땀을 보탠 올더니 섬의 태피스트리 등 실과 바늘이 만들어낸 놀라운 이야기들을 모았다.

실과 글을 엮으면서 두 저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뜨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푸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잘못된 부분을 풀지 않고 넘어가면 절대 잘못이 감춰지지 않고 엉망인 결과가 나올 뿐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을 과감히 풀어낸 뒤 다시 떠나가는 것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이훈범 작가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