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지금의 이야기’로 살아난 남도의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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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 광주 남구 양림동의 우일선 선교사 사택 앞.
광주 동구 금남로 한복판에 자리한 전일빌딩245는 오래된 건축물이 어떻게 도시의 역사적 기억을 품은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양림동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광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문화유산이 도시의 경쟁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만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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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에는 시간이 쌓인다. 수많은 사람이 오갔던 거리와 골목에는 그들의 삶과 이야기가 남는다. 한때 도시의 중심이었던 공간이 세월의 흐름 속에 낡고 쇠퇴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깃든 기억과 역사의 가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오늘의 쓰임을 더하려는 움직임이 도시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광주와 전남에는 오랜 세월 지역민의 삶과 함께해 온 역사문화유산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품은 건축물부터 근대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남은 마을, 개항의 흔적을 간직한 항구도시의 골목까지 그 모습도 다양하다. 한때 낡고 오래된 것으로 여겨졌던 공간들이 이제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자산이자 도시의 경쟁력을 높일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이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지키고 활용하느냐다. 보존에 머물 것인가, 새로운 쓰임을 찾아 지역의 활력으로 연결할 것인가. 전남광주 곳곳에서도 오래된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지역의 새로운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 동구 금남로 한복판에 자리한 전일빌딩245는 오래된 건축물이 어떻게 도시의 역사적 기억을 품은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철거까지 검토됐던 건물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헬기사격 탄흔이 확인되면서 새로운 운명을 맞았다. 건물에 남은 탄흔은 광주가 겪었던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흔적이었다. 보존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2020년 ‘전일빌딩245’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건물 내부에는 5·18의 진실을 알리는 전시공간과 시민문화공간 등이 들어섰다. 과거 신문사와 사무실 등이 자리했던 건물은 이제 시민과 관광객들이 광주의 역사를 만나고 문화를 향유하는 장소가 됐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건물에 남은 탄흔은 감춰야 할 상처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역사의 증거로 보존됐다. 낡은 건축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세웠다면 결코 되살릴 수 없었을 가치다.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 일대 역시 광주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1980년 5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외쳤던 역사의 현장이자, 오늘날에도 광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장소다.

광주 원도심에는 이처럼 도시의 시간을 증언하는 공간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충장로의 광주극장도 그중 하나다. 1935년 조선인 자본과 지역 인사들의 주도로 문을 연 광주극장은 9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영화를 상영해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인을 위한 문화공간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영화뿐 아니라 강연과 집회 등 시민사회 활동의 무대가 됐다.
광주극장은 지난 10월 12일 국가유산청으로부터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예고를 받았다. 국내에서 드물게 단관극장의 기능을 유지해 온 장소성과 희소성, 근대 극장건축의 특징 등이 가치를 인정받았다. 최종 등록까지는 의견 수렴과 심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광주 시민들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 국가 차원의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광주 남구 양림동은 도시의 오래된 시간이 어떻게 문화적 매력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마을이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한옥과 서양식 근대건축물, 오래된 담장과 주택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만난다. 근대 선교사들의 활동과 지역민의 삶이 축적된 공간에는 광주가 근대도시로 성장해 온 흔적이 남아 있다.
양림동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광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 가운데 하나다. 회색 벽돌과 독특한 지붕 구조를 갖춘 건물은 100여 년 전 광주에 들어온 서양식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근의 오웬기념각과 수피아여학교 관련 건축물 등도 양림동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산이다. 근대 선교활동과 교육, 의료의 역사가 건축물 곳곳에 남아 있다.
양림동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오래된 건축물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마을이 간직한 역사에 문화예술과 관광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새로운 장소로 재발견됐기 때문이다. 특히 호랑가시나무 언덕 일대는 근대유산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옛 선교사 관련 건물과 시설 일부가 전시·창작 공간 등으로 활용되면서 과거의 장소에 새로운 문화예술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목포의 특징은 특정 건축물 한 채가 아니라 거리와 마을 전체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근대건축물과 골목, 상업시설이 서로 연결되며 개항도시의 풍경을 형성한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이러한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고 활용하려는 시도의 중심에 있다.
근대유산을 활용한 전시와 관광 프로그램, 오래된 건축물의 새로운 쓰임은 쇠퇴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이다. 건축물에 깃든 이야기를 발굴하고 거리 전체를 역사문화 공간으로 바라보는 접근은 개별 문화재 보존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문화유산의 가치를 발견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순천의 매산등 근현대역사문화공간은 최근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예고로 주목받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조성한 이곳에는 선교와 교육, 의료, 주거의 역사가 함께 남아 있다.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이 예고된 순천 매산등 근현대역사문화공간의 선교마을 옛 담장. [사진 국가유산청]](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1/04/551731-YCbg9of/20261104180858428bsrc.jpg)
국가유산청은 지난 10월 매산등 일대와 개별 유산 7건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을 예고했다. 건축물 한 채의 가치를 넘어 선교·교육·의료·주거 기능이 집적된 공간 전체의 역사성을 인정한 것이다.
오래된 산업시설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시도도 있다. 담양 해동문화예술촌은 과거양조장으로 쓰였던 공간을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재생한 사례다. 산업시설의 흔적을 남기면서 전시와 문화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역사적 건축물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과 달리, 옛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입히는 방식이다. 한때 지역 산업의 현장이었던 건물이 문화예술을 매개로 다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광주와 전남의 역사문화유산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과거의 시간을 미래의 자산으로 바꿔가고 있다.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오래된 마을을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거나 낡은 건축물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이 도시의 경쟁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만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비슷한 시설과 관광 콘텐츠는 다른 지역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오랜 세월 그곳에 쌓인 역사와 기억은 쉽게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주의 5·18 역사공간과 양림동의 근대 선교유산, 목포의 개항도시 풍경, 순천 매산등의 근현대 건축유산이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는 이유다. 지역의 문화유산은 과거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고유한 자산이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역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만큼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중요하다. 많은 예산을 들여 건물을 복원하고 전시시설을 마련하더라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사람들의 발길은 다시 끊길 수밖에 없다.

주민 참여도 빼놓을 수 없다. 오래된 골목과 마을은 관광객이 찾아오기 전부터 누군가의 생활공간이었다. 문화유산 활용이 주민의 일상을 밀어내거나 마을의 고유한 모습을 훼손한다면 지속가능한 재생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화유산이 지역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고 해서 지역 상권이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방문객들이 지역에 머물며 식당과 상점, 문화시설 등을 이용하고 일자리와 창업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광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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