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미루나…반복되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 논의에 정책 신뢰 흔들
해외 거래소 정보 확보·손실 이월공제 등 과세 인프라 미비
국민의힘 과세 조항 삭제 추진…민주당은 제도 보완에 무게
반복되는 시행 연기에 정책 신뢰 흔들…시장 불확실성 확대
[지데일리] 가상자산 과세가 또다시 갈림길에 섰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정치권이 네 번째 유예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면서 과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반복되고 있다. 과세 형평성과 조세 원칙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거래소의 준비 부족과 제도적 허점까지 드러나면서 시행을 둘러싼 진통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1월로 예정된 가상자산 과세의 추가 유예 여부를 늦어도 11월 말까지 결론짓기로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논의를 거쳐 시행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오기형 의원은 관련 논의를 1~2주 안에 신속하게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결정 시점을 앞당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부 역시 정치권의 논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과세 관련 고시안 발표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과세 체계가 시장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과세를 위한 전산 시스템과 자료 확보 체계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가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해외 거래소를 이용한 투자자의 거래 내역과 소득 정보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있다는 점이 주요 걸림돌로 꼽힌다. 국내 거래소에서 발생한 거래만으로 전체 투자자의 가상자산 소득을 정확히 산출하기 어렵고, 해외 플랫폼을 통한 거래와 지갑 간 자산 이동까지 추적하려면 국제적인 정보 교환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손실 이월공제 문제도 논란이다. 주식이나 다른 금융투자 상품과 달리 가상자산 투자에서 발생한 손실을 향후 이익과 상계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면 투자자 간 과세 형평성이 훼손될 수 있다. 취득가액 산정 기준 역시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다.
거래소와 개인 지갑을 오가거나 여러 플랫폼에서 매매한 자산은 최초 매입 가격과 이동 경로를 확인하기 어려워 과세 과정에서 납세자와 과세 당국의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의 입장은 엇갈린다. 국민의힘은 가상자산 과세 조항을 삭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며 과세 자체를 백지화하는 수준의 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과세 제도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관련 규정을 보완한 뒤 시행하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과세 유예를 둘러싼 여야의 입장 차이가 법률 개정으로 이어지면서 내년 1월 시행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문제는 과세 시점이 정치권의 판단에 따라 반복적으로 흔들리면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소득이 발생한 투자자에게 세금을 부과한다는 조세 원칙과 자산 간 과세 형평성을 고려하면 제도적 필요성이 크다.
반면 충분한 인프라 없이 시행을 강행하면 소득 산정 오류와 납세자 혼란, 행정 비용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 유예와 강행이라는 양자택일에 매달리기보다 거래 정보 확보, 손실 공제 범위, 취득가액 산정, 납세자 보호 장치를 함께 정비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네 차례나 시행이 미뤄진 과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면 국회와 정부가 명확한 기준과 일정을 제시하는 것이 관건이다. 과세를 계속 늦추는 것도,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시행하는 것도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번 결정이 또 한 번의 정치적 시간 벌기에 그칠지, 실효성 있는 과세 체계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