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반대하는 CPTPP, 李 “임기 내 타결 어려워”

이재명 대통령은 26일 “많은 분이 걱정하고 계시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가입 문제 관련해서는 연내 가입 신청을 하지 않고 농·어민 여러분과 충분히 소통해서 방향을 정하도록 지시해 뒀다”며 “제 임기 안에 최종 타결이 안 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어민과의 대화’ 모두 발언에서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CPTPP 가입과 관련해 “내년, 내후년 한다고 그러면 제 임기 안에는 거의 안 된다고 봐야 한다”며 “제가 연임은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가 전체를 위해서는 일부 비난, 비판이 있더라도 해 놔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며 “답답하겠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당장은 못 하더라도, 장기적 이익을 위해 필요한 절차는 밟아야 한다는 뜻이다.
CPTPP는 일본·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아시아·태평양 12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회원국 간 관세 철폐와 무역·투자 장벽 완화를 목표로 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CPTPP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여권 지지층인 농민 반발이 거세자 연내 가입 신청을 보류했었다. 그러다가 이날 성난 농심을 달래기 위해 마련한 행사에서 “임기 내 거의 안된다고 봐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농민들이 반발해 온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에 대해선 “우리 (송미령) 장관님께서 저한테 ‘법률상 의무인데 수십 년 동안 안 한 게 있으니까 전수조사를 합시다’ 이렇게 제안을 해서 (전수조사를) 한 것”이라며 “땅 빼앗는다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李 “농지 조사는 송미령 장관이 제안한 것”
이날 간담회는 대통령이 직접 농어업인 110여 명을 초청해 마련한 자리다. 참석자들은 대통령에게 “CPTPP 가입 검토 자체를 철회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 “농지 전수조사는 처벌 중심의 행정 처분 발표가 있어 오해들이 있다”고 직접 건의했다.

이 대통령은 CPTPP 가입 문제와 관련해선 “전 세계가 무역 자유화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판에 우리만 (농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탈하면 과연 통상 국가라는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면서도 “결국 길가에 (농민 반대 집회로) 최루가스가 자욱하게 되지 않을까. 최종 결론이 그렇게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농어민들이 극렬 반대하는 사안을 밀어붙일 순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또 “경운기 몰고 남태령 넘는 전략은 현실적이지 않다” “청와대 앞에 트랙터 모는 상황은 안 되게 할 것” “말로 해도 되는 걸 뭐 하러 그렇게 주먹을 쓰느냐”고도 했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공익직불금 상향 건의에 대해서는 “기대하셔도 될 것 같다”며 “농가에 대한 직접 지원액을 늘려야 한다. 농어촌 기본소득도 그 방법의 하나”라고도 했다.
CPTPP 가입 추진은 정부가 작년 말부터 공개적으로 밝혀온 사안이다. 작년 12월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미·중 리스크 대응을 위해 가입 적극 검토”(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경제 영토를 넓히기 위해 가입 추진”(조현 외교부 장관) 등의 발언이 나왔다. 청와대도 올해 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CPTPP 가입 문제를 논의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어 8월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CPTPP 가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 착수를 전격 선언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40여 일 만인 지난 6일 가입 문제를 원점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이날은 “임기 안에 최종 타결이 안 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고 밝힌 것이다.
농지 전수조사 역시 농민 반발에 후퇴했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땅 투기를 잡겠다”며 농지 전수조사에 착수했으나 농민 반발이 커지자 추석을 앞둔 지난달 21일 대대적인 처분 유예 방침을 밝혔다. 그럼에도 농심 이탈이 계속되자 17일 만인 지난 8일엔 투기를 제외한 고령, 상속 등 일반적 불법은 농지은행을 거치지 않더라도 처분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농지조사는 송미령 장관이 제안한 것에 따른 것”이라고 했는데, 야당은 “일이 잘못되자 이제 와서 장관 탓을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 정책이 일부 여론 반발에 밀려 후퇴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반도체 핵심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적용 여부에 대해서도 양대노총 등 노동계 반발이 심해지자 지난 23일 “기존 제도 시행령을 수정하거나, 절차를 쉽게 하는 방법이 있는지도 서로 깊이 논의해 보라”고 지시한 바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등 에 투자에 나설 재계는 당황한 분위기다. 메가특구법을 통해 52시간 예외 특례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시행령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정부 정책 신뢰가 떨어져 혼란만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리한 정책을 바로잡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섣불리 발표했다가 거둬들이는 ‘땜질식 행정’은 되레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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