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돌봄로봇…노벨상엔 이미 SF 스며들었다
강양구의 ‘SF 사고실험실’
![199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동명 영화. 어느 날 사람 대다수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설정은 1951년 발간된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을 떠올리게 한다.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7/joongangsunday/20261027103541690timc.jpg)
이 설정을 놓고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1995)를 떠올린다면 순문학 독자일 가능성이 크다. 알다시피, 주제 사라마구는 이 책을 펴내고 나서 199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반면, 이 설정을 놓고서 그보다 44년 전에 나온 SF 소설 한 편을 떠올릴 수도 있다. 영국 작가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1951)이다.
『트리피드의 날』의 설정은 이렇다. 어느 날 밤 지구에 유성우가 쏟아진다. 평소 보기 힘든 이 유성우 쇼를 전 세계 인류가 실시간으로 지켜본다.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아침에 이 유성우를 직접 본 인류 대다수는 시력을 잃은 채 깨어난다. 눈먼 자들의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눈먼 인류를 애초 기름 추출용으로 길렀던 육식 식물이 습격하는 상황을 그린다.
서로 소통하고 사람이 쳐 놓은 울타리를 공격하는 집단 지능까지 발휘하는 듯한 이 육식 식물의 위협 앞에서도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다행스럽게 유성우를 보지 않아서) 눈이 보이는 사람이 연대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까. 아니다. 이 소설 역시 인간성의 추악한 바닥을 보여준다.
![BBC 동명 드라마 ‘트리피드의 날’. [중앙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7/joongangsunday/20261027103541892mmzq.jpg)
올해(2026년) 노벨 문학상은 SF와는 거리가 아주 먼 것처럼 보이는 캐나다 작가 앤 카슨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해마다 카슨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는 단골 후보들의 작품은 사뭇 다르다.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 모두 SF 작품을 직접 쓰거나, SF 장르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왔다.
같은 캐나다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평생 후보로만 꼽히다가 정작 상은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애트우드가 대표적이다. 올해 86세인 애트우드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세 권에 걸쳐서 펴낸 ‘미친 아담’ 3부작에는 천재 과학자 크레이크가 인류를 멸망시킬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린 뒤 폐허가 된 세상,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신인류 등이 등장한다.
내는 작품마다 논란의 중심에 서는 노벨상 단골 후보 우엘벡도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작 『소립자』(1998년)는 끊임없이 쾌락과 행복을 좇으면서도 정작 갈수록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지독한 고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현대 서구 문명을 꼬집은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괴팍한 농담처럼 등장하는 해결책이 생명공학으로 욕망을 거세하고 노화와 죽음까지 지워 버린 신인류다.
전 세계 하루키 팬덤의 실체를 유감없이 보여준 『1Q84』(2009~2010년)는 어떤가. 이 소설은 현실과 놀랍도록 겹치지만, 사실은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에서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그렇다. 이 소설 독자도 크게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현대 물리학의 영향을 받은 SF의 장치인 평행 우주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사라마구처럼 이미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등 SF의 사고실험을 통한 영토 확장은 더욱더 도드라진다. 사라마구 자신부터 노벨상을 받고 나서 발표한 『죽음의 중지』(2005년)에서 새해 0시를 기점으로 ‘죽음’이 사라진 나라의 모습을 그린다. 늙고 병들어도, 심각한 사고를 당해도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 기이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201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05년에 발표한 『나를 보내지 마』를 영화화한 ‘네버 렛 미 고’(2011년)의 한 장면.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7/joongangsunday/20261027103542108btxx.jpg)
독자가 나중에 간파하게 되는 이 설정을 빼놓고서는 전혀 SF 느낌이 나지 않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이런 질문이 저절로 떠오른다. 원숭이까지 복제해 낸 테크놀로지를 손에 쥔 오늘날,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사실은 장기 기증용으로 길러지는 이들이 없으리란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노벨상을 받고 나서 처음 발표한 『클라라와 태양』(2021년)은 유전자 ‘향상(lifted)’ 시술의 부작용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긴 소녀와 인공지능 돌봄 로봇의 관계를 그린다. 갈수록 쇠약해지는 소녀를 살리기 위해 인간보다 더 헌신하는 로봇(클라라)은, 결국 폐기장에 버려지면서도 소녀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끝내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클라라의 모습을 통해서 이시구로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층 분명해진다.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진짜 조건은 무엇인가. 병에 걸려 죽을 수 있는 딸을 대체하기 위해 그 외형을 본뜬 로봇을 준비하는 소녀의 엄마와 클라라 가운데 인간에 더 가까운 존재는 누구인가.
SF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작가의 덜 알려진 작품도 있다. 2018년도 노벨상을 받은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단편집 『기묘한 이야기들』(2018년)에는 인간이 늑대 같은 동물로 자신의 형태를 바꾸는 시술을 소재로 한 소설이 등장한다(‘트란스푸기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토카르추크의 문제의식이 투영된 작품이다.
물론 SF 독자로서 좀 더 욕심을 내고 싶은 대목도 있다. 본격 SF 작가가 공들여서 해명하는 질문은 ‘왜?’이다. 왜 갑자기 세상 사람이 눈이 멀게 되었는가.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에서는 유성우 쇼, 정확히는 우주 궤도를 돌던 냉전 시대 인공위성 무기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원인 불명의 감염병을 의심할 뿐 끝내 명확한 원인이 드러나지 않는다.
본격 SF 작가가 ‘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SF의 사고실험 혹은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핵심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어야 현실에 없지만 있을 법한, 혹은 작가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정교한 사고실험이 가능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어떻게?’에 답하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애트우드가 계속해서 누가 봐도 SF로 분류할 법한 자기 소설을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이라고 주장해 온 이유도 이런 사정과 관계가 있다. 그는 마법이나 빛의 속도로 성간 항해하는 우주선처럼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판타지 요소가 아니라 ‘지금 우리 과학 기술이 그대로 이어질 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 작품 세계의 중요한 축을 ‘STS SF’로 내세우는 장강명 작가의 문제의식과도 통한다. 장강명 작가가 말하는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는 지금 혹은 가까운 미래에 과학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상상해서 경고하는 작품이다. 그가 펴낸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2023년)에 실린 단편들은 STS SF의 적절한 사례다.
인간성 묻는 문학 최전선, SF로 바뀌는 중
앞으로도 흔히 노벨상 후보가 되는 작가의 작품에서 SF의 요소를 찾는 일은 갈수록 많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삶 구석구석에서 과학 기술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부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이 곧 우리 삶이다. 그러고 보면, 앨리스 먼로(2013년) 이후 13년 만에 캐나다 작가에게 돌아간 올해 노벨상이 애트우드 대신 나이가 열한 살 적은 앤 카슨을 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과학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작품 속에 녹여 놓은 애트우드와 달리 카슨은 그리스 신화와 고전 문학을 연구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인간의 욕망, 사랑과 결핍을 그렸다. AI 시대에 과학 기술 아닌 것에 진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항변하는 노벨상의 마지막 몸부림 혹은 저항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인간성의 조건을 다시 묻는 문학의 최전선은 이미 SF로 바뀌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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