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푸틴은 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의 마찰과 안개를 통제하지 못하는가?…러·우전쟁 심층분석

정충신 선임기자 2026. 10. 2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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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으로 규정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2월 24일 시작돼 2026년 10월 18일 기준 1698일째를 맞았다.

2026년 10월 21일 러시아가 미국·우크라이나와의 3자 종전협상 재개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도 군사적 압박만으로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군사적 우위와 전쟁지속능력이 반드시 정치적 승리와 종전의 통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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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저항과 내부 마찰은 푸틴의 단기전 구상을 좌절
러시아의 군사적 우위는 드론전과 장기 소모전을 극복 못해
스타링크와 서방의 지원은 푸틴에게 새 전략적 마찰 만들어
첨단 군사기술도 전쟁의 안개와 불확실성 제거하지 못해
전쟁의 장기 소모와 종전조건 충돌은 푸틴의 종전 선택권 제약
푸틴이 우크라이나 저항의지와 내부적 마찰을 과소평가한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프롤로그. 푸틴이 예상한 전쟁과 실제 전쟁은 왜 달라졌는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으로 규정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2월 24일 시작돼 2026년 10월 18일 기준 1698일째를 맞았다. 6·25전쟁(약 3년 1개월)과 제1차 세계대전(약 4년 3개월)보다 길어진 것이다. 단기간에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려던 푸틴의 구상과 달리 전쟁은 장기 소모전으로 전환됐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과 서방의 지원, 드론전의 발전과 러시아군 내부의 문제는 최초의 전쟁계획을 변화시켰다. 러시아는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7%까지 장악했지만, 2026년 10월 현재 점령지역은 약 19%에 머물고 있다. 북한으로부터 병력과 대규모 포탄, 탄도미사일까지 지원받았지만 막대한 인명피해와 군사적 소모에도 전선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군사적 우위에도 전쟁의 전개와 결과를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지 못한 것이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강조한 전쟁의 마찰(Friction)과 안개(Fog of War)가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푸틴은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군사적 우위를 정치적 승리와 종전의 통제력으로 전환하지는 못하고 있다. 2026년 10월 21일 러시아가 미국·우크라이나와의 3자 종전협상 재개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도 군사적 압박만으로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대 명예교수. 김태준 소장 제공
I.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의 저항의지와 내부적 마찰을 과소평가했는가

푸틴 대통령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우크라이나의 지휘체계와 방어능력을 신속하게 무력화하고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러시아군 내부의 작전상 문제는 이러한 기대를 무너뜨렸다. 군사력의 우위가 상대방의 저항의지까지 결정하지는 못했다.

첫째, 우크라이나의 저항의지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오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신속하게 붕괴하거나 조직적인 저항을 오래 지속하지 못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코미디언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짧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로 진격하는 위기에서도 해외로 피신하지 않고 수도에 남아 국민과 함께 항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의 이러한 결단은 지도부의 결속과 국민의 저항의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군사력의 우위만으로 상대국 지도자의 위기 대응능력과 국민의 항전의지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푸틴의 전략적 오판이자 전쟁의 안개가 드러난 사례다.

둘째, 러시아군의 지휘·통신·병참체계에서 발생한 마찰이다. 초기 진격 과정에서 연료와 탄약 공급의 차질, 지휘체계의 혼란, 부대 간 협조 부족이 드러났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군의 매복과 대전차 공격이 겹치면서 러시아군의 기동은 제한됐다. 결국 러시아군은 2022년 봄 키이우 주변에서 철수했고, 초기의 신속한 정치적 목표 달성 구상은 좌절됐다.

셋째, 러시아 내부의 지휘권 갈등과 무장반란이다. 2023년 6월 23~24일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국방부 지도부와의 갈등 끝에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바그너 병력은 로스토프나도누의 군사 지휘시설을 장악하고 모스크바 방향으로 진격했다. 반란은 중단됐지만, 전쟁수행체제 내부의 갈등이 중앙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사건은 전쟁의 마찰이 적의 공격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군수지원과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 군사조직 간 경쟁과 정치적 불신도 전쟁수행능력을 제약한다. 내부적 마찰이 새로운 정치적 불확실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넷째, 우크라이나의 장기 저항능력에 대한 판단의 불확실성이다. 전쟁이 4년 7개월 이상 지속됐다는 사실은 러시아의 단기전 구상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얼마나 더 저항할 수 있는지는 병력 손실과 동원능력, 국민의 전쟁피로, 서방의 지원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미 확인된 장기 저항과 앞으로의 지속능력은 구분해야 한다.

결국 푸틴의 단기전 구상은 우크라이나의 저항의지와 러시아군 내부의 작전상 문제, 예상하지 못한 무장반란에 부딪혔다. 전쟁의 마찰은 계획의 실행을 어렵게 했고, 전쟁의 안개는 상대방과 자신의 전쟁수행체제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푸틴의 군사적 우위가 드론전과 소모전의 마찰을 극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 러시아의 해상·공중 우위는 왜 드론전과 소모전의 마찰을 극복하지 못했는가

러시아는 침공 당시 전투기와 폭격기, 미사일 전력과 흑해함대에서 우크라이나보다 우세했다. 그러나 전쟁은 러시아가 기대했던 신속한 기동전이 아니라 드론과 미사일, 포병과 참호가 결합한 장기 소모전으로 변화했다. 군사력의 수적 우위가 전장의 통제력을 보장하지 못한 것이다.

첫째, 흑해함대의 손실과 해양통제력의 제약이다. 러시아는 흑해함대를 활용해 우크라이나 연안을 봉쇄하고 미사일 공격을 수행했다. 그러나 2022년 4월 기함 모스크바함이 우크라이나의 넵튠 대함미사일 공격으로 침몰했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해상드론과 장거리 미사일 공격이 이어지면서 러시아는 일부 함정을 흑해 동부로 이동시켜야 했다.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도 우크라이나의 해양거부(Sea Denial) 능력을 억제하지 못한 것이다.

둘째, 공중우세 확보의 실패다. 러시아 공군은 우크라이나보다 많은 항공전력을 보유했지만 방공망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동식 방공체계와 지대공미사일, 서방의 지원 장비로 러시아 항공기의 작전 자유를 제한했다. 러시아는 활공폭탄과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지속했지만, 전면적인 공중우세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셋째, 드론이 변화시킨 지상전의 양상이다. 우크라이나는 정찰·공격용 무인기와 일인칭시점(FPV)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군의 전차와 장갑차, 포병진지와 보급차량을 공격했다. 러시아도 공격드론과 배회탄약(Loitering Munition)을 대량 운용하며 대응했다. 드론의 지속적인 감시와 정밀타격으로 병력과 장비의 집결 및 기동은 더욱 위험해졌다.

넷째, 참호와 은폐·분산 중심의 소모전이다. 드론과 정밀타격, 지뢰와 포병의 위협이 결합하면서 대규모 기동작전은 제약받았다. 양측은 참호와 지하시설, 위장과 분산배치, 전자전으로 생존성을 높이려 했다. 전장의 가시성이 높아질수록 병력은 더욱 깊이 숨고 기동은 제한됐다. 첨단 정밀타격과 전통적인 참호전이 결합한 새로운 소모전이 형성된 것이다.

다섯째, 막대한 인명피해와 제한적인 영토적 성과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2026년 7월 분석에 따르면 개전부터 2026년 6월까지 러시아군의 전사·부상·실종자는 약 140만 명, 우크라이나군은 약 52만 5000~62만 5000명으로 추정됐다. 이는 공식 확정치가 아닌 연구기관의 추정치다. 양측이 막대한 인적 손실을 감수했지만 일부 전선의 진격거리는 하루 수십 미터에 그쳤다. 전술적 손실과 전략적 성과 사이의 불균형이 장기 소모전의 특징으로 나타난 것이다. 북한의 병력과 포탄, 탄도미사일 지원은 러시아의 전쟁지속능력을 보완했지만, 외부 군수지원에 대한 의존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마찰도 만들어냈다.

결국 러시아의 공중·해상 우위는 우크라이나의 방공망과 해양거부 능력, 드론과 전자전에 의해 제약받았다. 러시아는 여전히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결정적인 전장 돌파와 정치적 승리로 전환하지 못했다. 이것이 군사적 우위에도 장기 소모전의 마찰을 극복하지 못한 이유다.

스타링크와 서방 지원이 푸틴에게 새로운 전략적 마찰이 된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I. 스타링크와 서방의 지원은 왜 푸틴에게 새로운 전략적 마찰이 되었는가

푸틴이 예상하지 못한 중요한 변수는 우크라이나의 저항뿐 아니라 서방의 군사·정보·재정 지원이 장기간 지속됐다는 점이다. 특히 민간 위성통신과 미국의 군사정보, 유럽의 무기와 재정지원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수행능력을 강화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시설을 공격할 수 있었지만 외부 지원체계까지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첫째, 스타링크(Starlink)가 제공한 위성통신 능력이다. 러시아는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의 통신시설과 전력망을 공격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통신망으로 통신체계의 일부를 유지했다. 스타링크는 전방부대의 지휘통신과 전장정보 공유, 드론 운용을 지원했다. 민간기업의 통신기술이 국가 간 전쟁의 중요한 작전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군사정보와 위성영상 지원이다. 미국은 러시아군의 이동과 배치, 군사적 위협에 관한 정보·감시·정찰(ISR) 자료를 제공해 우크라이나의 상황인식과 방어작전, 장거리 타격능력을 강화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시설을 공격할 수 있었지만 서방의 정보수집체계까지 제거할 수는 없었다. 외부 정보체계가 우크라이나의 군사력과 결합하면서 러시아가 상대해야 할 전쟁의 범위도 확대됐다.

셋째, 유럽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의 군사·재정 지원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포병과 탄약, 전차와 장갑차, 방공미사일과 전투기, 드론 등 다양한 군사장비를 제공했다. 유럽연합과 회원국들의 재정지원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경제의 생존을 뒷받침했다. 다만 나토 회원국들의 지원과 나토의 직접적인 참전은 구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뿐 아니라 장기간 유지되는 외부 지원체계까지 상대해야 했다는 점이다.

넷째, 스타실드(Starshield) 통신 제한이 드러낸 외부 지원의 불확실성이다. 2026년 10월 중순 스타실드에 이동속도 약 160㎞/h를 초과할 경우 통신을 제한하는 조치가 적용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일부 드론 운용에 차질이 발생했다. 미국 언론은 일론 머스크가 제한 조치를 지시했다고 보도했으나, 미국 정부는 관여 사실을 부인했다. 이는 첨단 위성통신에 의존하는 우크라이나가 외부 지원체계의 운영 결정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전략적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다섯째, 외부 지원의 지속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원으로 러시아의 군사적 우위에 대응했지만 이러한 지원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미국의 정책 변화와 유럽의 정치·경제적 부담, 무기 생산능력과 우크라이나의 자체 방위산업 발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푸틴 역시 서방의 지원이 언제 약화될 것인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결국 스타링크와 서방의 지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비교를 변화시켰다. 러시아에는 외부 지원체계를 차단하기 어려운 전략적 마찰이, 우크라이나에는 외부 지원의 지속 여부를 통제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발생했다. 서방의 지원은 전쟁수행능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전쟁의 마찰과 안개를 확대시키는 요인이 됐다.

첨단 군사기술도 푸틴의 전쟁 안개를 제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V. 첨단 군사기술은 왜 푸틴의 전쟁 안개를 제거하지 못하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인공위성과 드론, 전자전과 정밀유도무기는 전장의 감시와 타격능력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첨단기술은 푸틴에게 전쟁의 전개와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통제할 능력까지 제공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대응전술의 등장으로 전쟁의 불확실성은 더욱 복잡해졌다.

첫째, 전장의 가시성 확대와 작전 자유의 축소다. 정찰위성과 드론은 병력과 장비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전장이 투명해질수록 병력과 장비의 집결 및 기동은 더욱 위험해졌다. 전장정보의 확대가 작전의 자유를 높이기보다 오히려 제한하는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둘째, 첨단기술과 대응기술의 반복적인 경쟁이다. 우크라이나가 드론과 정밀타격 능력을 발전시키면 러시아는 전자전과 전파교란, 방공망과 위장시설을 강화했다. 러시아가 새로운 공격드론과 활공폭탄을 투입하면 우크라이나도 대응수단을 발전시켰다. 특정 무기의 전술적 우위는 상대방의 적응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마찰을 제거하기보다 새로운 적응 경쟁을 만들어낸 것이다.

셋째, 장거리 정밀타격과 극초음속 미사일의 한계다. 러시아는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로 우크라이나의 군사시설과 에너지 기반시설을 공격했다. 그러나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것과 우크라이나의 저항의지를 꺾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일부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한 요격 성공 주장도 제기되면서 첨단무기의 성능이 절대적인 공격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넷째, 전술적 정보와 전략적 판단의 차이다. 러시아는 위성과 드론으로 우크라이나군의 배치와 이동을 관찰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지도부와 국민이 어느 수준의 피해까지 감수할 것인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전장정보의 정확성이 상대방의 정치적 의도와 전략적 선택까지 알려주지는 못한다.

다섯째, 기술 변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불확실성이다. 양측은 전쟁 중 드론과 방공체계, 전자전과 장거리 타격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 새로운 우위를 제공하고 상대방이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 것인지, 그 결과가 어느 정도의 전장 성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결국 첨단 군사기술은 전장의 일부를 더 정확하게 보여주지만 전쟁의 결과까지 예측하게 하지는 못한다. 전쟁의 안개는 정보의 부족뿐 아니라 상대방의 저항의지와 정치적 선택, 기술적 적응과 복합적인 상호작용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마찰과 안개가 푸틴의 종전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V. 전쟁의 마찰과 안개는 왜 푸틴의 종전 선택권을 제약하는가

푸틴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군사적 압박과 전쟁지속능력을 정치적 성과와 종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막대한 인명피해와 경제적 비용을 감수하면서 전쟁을 지속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중단시키고 자신이 요구하는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지는 못했다.

첫째, 영토 확보와 정치적 목표 달성의 충돌이다. 러시아는 2026년 10월 현재 크림반도와 루한스크주 대부분, 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주의 상당 부분, 하르키우·수미주 일부 지역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약 19%를 점령하고 있다. 그러나 영토를 점령하더라도 우크라이나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전쟁은 지속될 수 있다. 반대로 현재의 전선을 기준으로 전투를 중단하더라도 영토의 법적 지위와 안보보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정적인 종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둘째, 인명피해와 전쟁지속능력의 부담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막대한 인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병력 보충과 군수생산을 통해 전쟁을 지속하고 있지만, 인명피해와 군사적 소모가 누적될수록 전쟁지속능력에 대한 부담도 커진다. 전쟁을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비용을 무기한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숙련병과 지휘관의 손실을 신규 병력으로 얼마나 보완할 수 있는지, 이러한 병력 보충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는 푸틴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전쟁의 안개다.

셋째, 민간인 피해와 경제적 파괴가 만드는 전후 부담이다. 유엔 우크라이나 인권감시단에 따르면 2026년 9월 우크라이나에서는 민간인 328명이 사망하고 2105명이 부상했다. 세계은행 등의 공동평가는 2025년 말 기준 직접 물적 피해를 1950억 달러 이상, 향후 10년간 재건·회복 비용을 약 5880억 달러로 추정했다. 이는 전쟁의 종결이 교전 중단뿐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복구와 사회적 회복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넷째, 에너지 수출 제약과 전시경제의 장기적인 국력 소모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과 전시 생산체계를 활용해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전쟁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은 2021년 1520억㎥에서 2025년 360억㎥로 감소했고, EU는 2027년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의 단계적 중단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역시 금융·에너지 제재를 통해 러시아의 전쟁자금 조달을 압박해 왔지만, 최근 국제유가 상승으로 일부 제재를 유예하면서 정책적 불확실성이 커졌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시장의 변화와 제재에 대응하면서 군사비와 무기 생산, 병력 보충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다섯째,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서방의 정책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푸틴은 군사적 압박이 우크라이나의 협상조건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서방의 정책 변화를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2026년 10월 21일 푸틴은 미국 특사와의 회담에서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자 종전협상 재개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조속한 협상 개최를 희망했다. 그러나 협상 참여에 대한 동의가 영토와 안보보장에 관한 입장 차이의 해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와 우크라이나의 저항, 유럽의 안보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종전의 시점과 조건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여섯째, 종전조건과 전후 안보질서의 충돌이다. 러시아는 점령지역에 대한 통제와 우크라이나의 안보적 지위에 관한 요구를 유지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주권과 영토보전, 재침공을 방지할 안보보장을 중시한다. 러시아는 휴전 이후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재건을 우려하고, 우크라이나는 충분한 안보보장 없는 휴전이 재침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한다. 이번 3자 협상 재개 논의에서도 전후 안보체계가 핵심 의제로 제시됐지만, 양측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는 해소되지 않았다. 협상 재개가 곧 종전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다.

결국 푸틴의 종전 선택권은 러시아군의 전장 성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서방의 지원, 러시아의 경제적 지속능력, 영토와 안보보장에 관한 정치적 합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면 인명피해와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타협을 선택하면 최초의 전쟁목표와 국내정치적 정당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가 강조했듯이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푸틴은 전쟁을 시작하고 장기간 지속해 왔지만, 종전의 시점과 조건까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전쟁의 마찰은 종전 선택의 비용을 높이고, 전쟁의 안개는 그 결과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에필로그. 푸틴은 왜 전쟁을 지속할 수 있어도 끝낼 수는 없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군사적 우위와 전쟁지속능력이 반드시 정치적 승리와 종전의 통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푸틴이 직면한 핵심 문제는 전쟁지속능력(War-Sustaining Capacity)과 전쟁종결능력(War-Termination Capacity)의 차이다. 러시아는 막대한 인명피해와 경제적 부담에도 전쟁을 지속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지는 못하고 있다.

클라우제비츠가 강조한 전쟁의 마찰은 군사적 성과를 정치적 목표로 전환하는 과정을 어렵게 만들고, 전쟁의 안개는 상대방의 선택과 종전의 결과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푸틴은 전쟁을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었지만, 종전의 시점과 조건까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전쟁을 지속하는 능력과 원하는 조건으로 끝내는 능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정충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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