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낸드 상장하면 HBM도 할인될까?···'코리아 디스카운트' 만드는 범인들
낸드 상장과 HBM 가치 하락 인과 없어
美 자회사 분리상장은 자본조달 수단
주주가치 훼손 주장엔 손실 계산 필요

인공지능(AI)의 세계에서 낸드플래시는 수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저장하는 병참창고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데이터를 연산장치로 실어 나르는 보급로다. 중앙처리장치(CPU)는 작업을 지휘하고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대규모 행렬 연산을 수행한다. 창고와 보급로, 지휘부와 연산부대가 각자의 기능을 맡아 하나의 계산체계를 이룬다.
한국 금융당국의 계산법은 기묘하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의 낸드 사업을 나스닥에 상장하면 모회사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참창고의 지분 일부를 미국 투자자에게 판다고 HBM의 대역폭이 줄어드는가. GPU에 공급하는 메모리의 경쟁력이 떨어지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사업의 가치를 한꺼번에 할인하려면 적어도 손익계산서부터 꺼내야 한다.
20일 금융권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SK하이닉스의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 상장 추진이 중복상장 규제에 저촉된다는 판단을 밝혔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의견이 같다는 설명도 내놨다. 솔리다임이 국내 증권신고서 제출 대상에 해당하는지는 금융위의 유권해석이 필요한 상태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플래시·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을 인수하면서 확보한 미국 반도체 사업체다. 인수 거래의 총규모는 약 90억달러다. 솔리다임은 기업용 SSD와 낸드 기반 저장장치 사업을 담당한다.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한 준비가 거론되면서 국내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 문제가 불거졌다.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상장 모회사가 지배하는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할 경우 기존 주주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다. 모회사가 보유한 사업의 일부를 별도 주식으로 거래하게 만들면서 기업가치 할인이나 주주 간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손실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공모가격이 낮아서인가. 지분이 희석돼서인가. 자회사에 들어간 현금이 기존 주주에게 돌아오지 않아서인가. 어느 항목에서 얼마가 빠져나가는지 확인해야 기업가치 훼손이라는 판단도 성립한다.

낸드는 저장하고 HBM 데이터 나른다
서로 다른 반도체에 같은 할인표 붙여?
SK하이닉스의 HBM은 AI 가속기에서 GPU가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읽고 쓰도록 지원하는 고대역폭 메모리다. D램을 수직으로 쌓고 실리콘관통전극(TSV)으로 연결해 데이터 전송량을 높인다. 경쟁력은 대역폭, 전력효율, 수율, 생산능력, 고객사 공급계약에서 나온다.
솔리다임의 주력 사업인 기업용 SSD는 데이터를 장기간 저장하는 장치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끊겨도 정보를 유지한다. AI 데이터센터에서는 모델의 가중치와 학습 데이터, 검색·추론에 필요한 대규모 정보를 저장한다. 연산 과정에서 필요한 데이터는 시스템 메모리와 HBM 등으로 이동해 처리된다.
GPU와 HBM, SSD는 하나의 데이터센터 안에서 함께 작동한다. 제품별 역할과 수익구조는 구분된다. 솔리다임이 주식을 발행한다고 HBM의 물리적 성능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HBM의 시장가치에 영향을 미치려면 모회사의 자본배분, 자금조달 비용, 지분가치, 투자자 평가 등 별도의 경로가 작동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의 가치는 기술 경쟁력과 미래 현금흐름에 따라 형성된다. HBM 사업이 높은 수익을 창출하면 해당 수익은 기업가치에 반영된다. 솔리다임의 낸드 사업이 독립적인 시장가격을 확보하면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잔여 지분가치 역시 평가할 수 있다.
모회사 주주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분명하다. 자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면 모회사의 소유 비율이 낮아질 수 있다. 대신 자회사에는 현금이 들어온다. 모회사가 보유 주식을 매각하면 현금의 귀속 주체가 달라진다. 어느 방식이든 거래가격과 자금 활용 계획을 함께 봐야 한다.
예컨대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 지분 100%를 보유한 상태에서 자회사가 적정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해 외부 투자자에게 지분 20%를 넘긴다고 가정하자. SK하이닉스의 지분율은 80%로 낮아진다. 동시에 솔리다임에는 신주 발행대금이 유입된다. 최태원 회장을 포함한 기존 주주가 보유한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려면 잔여 지분 80%와 유입된 현금, 향후 투자수익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지분율이 100%에서 80%로 떨어졌다는 숫자만으로 기업가치가 20% 사라졌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신규 투자자가 납입한 자본이 자회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모가격이 적정하고 조달자금이 생산설비와 기술개발에 투입된다면 기업가치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낮은 가격에 주식을 발행하거나 자금을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전하면 기존 주주에게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월가에서 거품론이 확산될 때마다 반도체 기업의 시가총액이 수조원씩 증발한다. 미래 성장률과 이익 전망을 낮춰 잡는 것만으로도 주가는 급락한다. 실제 공장이나 HBM 생산능력이 사라진 결과가 아니다. 투자자들이 미래 현금흐름에 적용하는 할인율과 기대수익을 바꾼 결과다. 시장은 이런 가격 변동을 매일 받아들인다.
국내 투자자들은 정작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에는 구체적인 공모가격과 지분 매각 조건도 확정되기 전에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AI 거품론으로 발생한 평가손실과 자회사 상장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을 구분하지 못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부터 잘못 진단하게 된다.

미국 투자자 지분율과 현금흐름 계산
한국에선 '중복상장' 네 글자가 먼저
미국 자본시장에는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일부를 공모시장에 내놓는 에쿼티 카브아웃(Equity Carve-out)이라는 거래 방식이 있다. 모회사가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자회사가 독립적인 상장회사로 거래되는 구조다.
자회사는 외부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모회사는 잔여 지분을 계속 보유한다. 별도의 시장가격이 형성되면서 사업별 가치를 확인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투자자는 자회사의 사업 전망과 재무상태를 평가하고 공모가격에 반영한다.
미국에서도 지주회사 할인이나 복잡한 지배구조에 따른 기업가치 할인은 발생한다. 모회사와 자회사 사이의 이해충돌, 지배권 유지 비용, 소수주주 권리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시장은 이러한 위험을 공시와 거래조건, 지배구조 규율의 대상으로 다룬다.
미국의 에쿼티 카브아웃은 자회사 분리상장이 자본조달과 사업가치 평가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례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됐다는 사실만으로 주주가치 훼손이 확정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중복상장 논쟁에서도 같은 구분이 필요하다. 자회사가 상장된다는 사실, 모회사의 주가가 하락한다는 사실, 기존 주주에게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각각 검증해야 할 대상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중복상장 제도개선을 추진하면서 모회사 일반주주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국내 상장시장에서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을 제한하고 예외적인 경우 주주보호 절차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해외 자회사 상장은 관할권부터 달라진다. 솔리다임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려면 미국 증권법과 거래소 규칙을 따라야 한다. 한국 금융당국은 국내 상장사인 SK하이닉스에 적용되는 공시와 이사회 의무를 감독할 수 있다. 미국 거래소의 상장 승인권은 미국 증권시장 규율에 따라 행사된다.
이 원장은 솔리다임의 국내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에 대한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금융당국이 미국 IPO를 직접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이 확인된 상태는 아니다.
금융당국의 우려가 실제 규제 조치로 이어진다면 기업은 자본조달 경로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미국 상장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과 투자 기회가 규제 불확실성으로 제한될 때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솔리다임은 데이터센터용 저장장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저장용량 수요가 확대되면 생산설비와 기술개발을 위한 자본도 필요하다. 미국 증시 상장은 그러한 자금을 확보하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상장을 제한하면 기존 주주가 어떤 이익을 얻는가. 독립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해지면 모회사의 투자 부담은 얼마나 줄어드는가. 상장 없이 모회사가 직접 투자할 경우 자본비용은 얼마인가.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숫자로 비교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없애겠다면서
해외 자본조달 경로부터 제한하나
마구잡이 상법 입법 유효성 따져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의 주식이 실적과 자산가치 등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기업지배구조, 주주환원, 자본배분, 시장 위험 등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자회사 중복상장 역시 할인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국내 실증연구에서는 자회사 상장 이후 모회사 주가수익률이 악화되는 경향이 보고됐다. 이 결과는 중복상장의 경제적 효과를 검증하는 근거가 된다. 산업별 차이와 공모조건, 상장 전후 기업가치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솔리다임의 경우에는 낸드 사업의 독립적인 가치평가와 미국 자본조달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 SK하이닉스의 HBM 사업가치, 솔리다임의 낸드 사업가치, 모회사가 보유할 잔여 지분가치, 공모로 유입되는 현금을 각각 계산해야 한다.
미국에는 한국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이름이 적용되지 않는다. 지주회사 할인과 자회사 상장에 따른 이해충돌 문제는 존재한다. 할인 요인을 측정하는 방식과 자본시장 규율은 별개의 문제다.
한국 금융당국이 해외 자회사 상장을 문제 삼는다면 어느 법률에 따라 어떤 주주를 보호하며 어떤 손실을 방지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국내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규제라면 실제 주주가치에 미치는 효과도 평가해야 한다.
낸드 사업을 나스닥에 상장한다고 HBM의 대역폭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D램의 수율도, GPU에 공급하는 메모리의 물리적 성능도 달라지지 않는다. 반도체의 기술적 경쟁력과 모회사 주식의 시장가치는 서로 다른 계산 대상이다.
솔리다임 중복상장 논쟁의 답은 공모가격과 지분율, 현금흐름, 투자수익률에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겠다는 정책 역시 기업가치가 실제로 어디에서 할인되는지 밝혀야 한다. 할인율을 측정하는 대신 상장 형식부터 금지한다면 규제 효과를 검증할 숫자마저 사라진다.
☞ 에쿼티 카브아웃(Equity Carve-out) =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일부를 외부 투자자에게 공개 매각하거나 자회사가 신주를 발행해 별도 상장하는 기업공개 방식이다. 모회사는 지배지분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자회사는 독립적인 시장가격을 형성한다. 거래 이후 모회사 주주의 경제적 가치는 잔여 지분율과 공모가격, 자금 귀속, 투자수익률 등에 따라 달라진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 한국 상장기업의 시장가치가 비교 가능한 해외 기업이나 자산가치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기업지배구조와 주주환원, 자본배분 등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자회사 중복상장은 가능한 할인 요인 가운데 하나이며 개별 거래의 주주가치 훼손 여부는 지분 희석과 현금흐름, 거래조건을 통해 판단한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또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 [국감] 이찬진, 솔리다임 나스닥 상장 막는다면···美 관할권 침범 명명백백 - 여성경제신문
- "ETF 상장 일정 맞추려 심사 서둘렀다"···이찬진, 졸속 심사·책임론 직면 - 여성경제신문
- [로짓에서] 지능의 물리 ㊤ 왠만하면 SRAM서 끝내자···왜 HBM 가긴 싫을까? - 여성경제신문
- [분석] 주주환원 없이도 파라미터는 자란다···SK 솔리다임에 필요한 건 미국 자본시장 - 여성경
- "中과 낸드 정면승부?"···SK하이닉스, 4년 멈춘 다롄 공장 재개 - 여성경제신문
- 밸류업으로 다진 코스피 6000선, 관건은 이익 다변화·장기 자금 유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