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만 알았다면”…지금 해외서 주목받는 한국 미술전 3

전하영 기자 2026. 10. 1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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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전시 흥행 속 한국 작가 해외 활약
유럽·미국 주요 미술관서 개인전 진행
이슬기·김아영·안창홍 개성 넘치는 작품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한국 미술작품 전시회를 연 RM. 연합뉴스

BTS RM이 공동 기획한 한국미술 전시가 지난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개막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개막 첫 주말 약 7500명이 전시장을 찾았으며, 지난 7일 기준 누적 예매량도 5만 장을 넘어섰다.

지금 해외에서 눈여겨볼 한국미술은 이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정월대보름 풍습이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변신하고, 네덜란드에서는 SF 영화를 닮은 미래 도시가 펼쳐진다. 박제된 동물들이 캔버스 바깥을 응시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묻기도 한다.

오래된 풍습과 우리 곁의 일상, 미래에 대한 상상까지.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저마다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전시 세 곳을 소개한다.
'달다리' 전경.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누리집 갈무리

파리한복판에뜬'정월대보름'
지금 프랑스 파리의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외벽에는 반달 두 개가 걸려 있다. 나무로 만든 커다란 반원형 구조물로,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모습을 바꾼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이번에는 형형색색의 리본이 천장에서 쏟아지듯 늘어져 있다. 공기의 흐름에 따라 리본이 조금씩 움직이고, 곳곳에 매달린 청동 방울들이 이따금 소리를 낸다.

한국 작가 이슬기가 내년 2월 8일까지 선보이는 설치전 '달다리(DAL DARI. The Moon and its Legs)'의 풍경이다.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정월대보름의 '다리밟기' 풍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대형 설치작품 2점을 선보인다.
'달다리' 전경.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누리집 갈무리

1992년부터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이슬기는 한국의 속담이나 오래된 생활 풍습을 색채와 도형으로 표현하는 작가다. 대표작 '블랭킷 프로젝트 U'에서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같은 우리말 속담을 다양한 색깔과 도형으로 풀어내고, 통영의 누비 장인과 협업해 이불로 제작했다. 파리로 건너온 초기에 선물받은 누비 이불을 훗날 다시 구할 수 없었던 경험을 계기로 전통 공예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작가는 이후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장인과 협업하며 전통 기술을 현대미술로 옮겨왔다.

이번에는 정월대보름에 다리를 건너면 한 해 동안 다리가 튼튼해진다고 믿었던 한국의 풍습을 작품으로 옮겼다. 미술관 외벽의 '달(DAL)'은 한국 전통 건축의 문살에서 착안한 나무 격자로 만들었고, 실내의 '다리(DARI)'에는 총 700m 길이의 리본과 작은 청동 방울을 사용했으며, 리본의 다채로운 색채는 한국 전통 건축의 단청에서 가져왔다. 관람객은 미술관 안팎을 오가며 한국의 오래된 풍습이 색과 형태, 소리로 펼쳐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명: 'DAL DARI. The Moon and its Legs' (26.06.06~27.02.08)

△위치: 프랑스 파리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딜리버리 댄서: 타임 커브스' 전경. 프리즈 누리집 갈무리

네덜란드서펼쳐지는'SF 미래도시'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도시에서 배달 노동자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배달할 물건과 이동 경로는 물론 업무에 걸리는 시간까지 알고리즘이 계산한다. 빠르게 움직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세상에서 배달 노동자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반 아베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아영의 개인전 '딜리버리 댄서: 타임 커브스(Delivery Dancer: Time Curves)'는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지난 6월 개막한 김아영의 네덜란드 첫 개인전으로, 영상과 조각, 조명 등을 결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김아영은 인공지능(AI)과 컴퓨터그래픽, 게임 제작 기술 등을 활용해 현실의 사회문제를 SF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가다.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 개발과 디지털 기술 등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 왔다. 실제 사건과 자료를 조사한 후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김아영 작가의 작품은 지난 2024년 ACC에서 미래상 수상작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갤러리현대 누리집 갈무리

대표 연작인 '딜리버리 댄서'도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시작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배달 앱을 자주 사용했다는 그는 문 앞에 음식을 두고 사라지는 배달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여성 배달 노동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오토바이 뒷좌석에 동승해 이들의 하루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복잡한 이동 경로를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춤에 빗대 '딜리버리 댄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번 전시의 배경은 가상의 지하도시 '노바리아'다. 배달 노동자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도시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겪는다. 영화나 게임을 연상시키는 영상 속에는 빠르고 편리한 배달 서비스 이면에 놓인 노동자의 현실과 기술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담겨 있다.

지난 2024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미래상 수상작으로 선보인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세 개의 영상 화면과 조명, 해시계 형태의 조각을 결합한 작품이다. 머나먼 이국에서 SF 영화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배달 앱의 이면도 새롭게 보일 법하다.

△전시명: 'Delivery Dancer: Time Curves' (26.06.06~27.04.01)

△위치: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반 아베 미술관
'눈물2025'10'. 아메리칸대학교 누리집 갈무리

박제동물들이되묻는생명의존엄성
검은 바탕 위에 노란 사슴이 서 있다. 주변으로 작은 불빛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얼핏 보면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작품의 모티브가 된 사진 속 동물은 이미 죽어 박제된 존재다.

미국 워싱턴 D.C. 아메리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안창홍의 개인전 '눈물(noon-mool)'에서는 이처럼 아름다움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지난달 5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회화와 조각 등 약 100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1953년생 안창홍은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오랫동안 다뤄온 작가다. 특히 인간의 신체와 얼굴을 변형하거나 가면 씌운 모습을 통해 폭력과 억압, 불안과 고통을 표현해 왔다. 익명의 얼굴을 반복해서 그린 '슬픈 증발' 연작이 대표적이다.
'눈먼 자들'. 아메리칸대학교 누리집 갈무리

폭력과 억압, 인간의 고통을 탐구하던 작가의 시선은 동물과 자연에 가해지는 폭력으로도 이어졌다. 한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죽은 뒤에도 생전의 모습으로 보존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버려진 박제 동물들이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박제(Taxidermy)' 연작이다. 박제된 동물의 사진을 크게 확대한 뒤 물감을 덧입힌 작품으로, 동물의 모습에 화려한 색채와 그림이 더해져 사진과 회화가 뒤섞인 독특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아름다운 색채에 이끌려 작품을 바라보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죽음과 폭력의 이미지를 마주하게 된다.

전시장에는 동물 이미지뿐 아니라 얼굴과 가면을 형상화한 조각 '마스크'(2018), '페이시스'(2018)를 비롯해 초기 회화 작품 등도 소개된다. 미술관 두 층에 걸쳐 펼쳐지는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과 동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생명의 상처와 고통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명: 'noon-mool'(26.09.05~26.12.06)

△위치: 워싱턴 D.C. 아메리칸대학교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