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국내주식 리밸런싱 유예 논란…운용 독립성 도마 위

김호성 기자 2026. 10. 15. 19: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감서 증시 부양 동원 의혹 제기…외국인 고점 매도 속 개인투자자 손실 우려
목표 비중·허용범위 확대 놓고 여야 공방…국내주식 운용이익 한 달 새 124조8000억원 감소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서 국내주식 리밸런싱 유예 결정과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 코스피 상승기에 바뀐 운용 기준…국민연금 역할 놓고 공방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비중 조정을 미루고 목표 비중과 허용범위를 확대하면서 정부의 증시 부양 기조에 동원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공적 연기금의 리밸런싱은 자산별 투자 비중이 목표치를 벗어날 경우 이를 조정해 위험을 분산하는 운용 원칙이다. 주가가 상승해 보유 비중이 한도를 넘으면 주식을 매도하고, 하락할 때는 매수하는 방식으로 자산 배분을 조정한다. 시장 변동에 대응하면서 장기적인 기금 수익률을 관리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기금 규모가 17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이 올해 초 국내주식 리밸런싱을 유예하면서 운용 원칙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주가 상승 국면에서 국내주식 보유 비중을 조정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시장의 수급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떠안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민연금은 지난 1월 26일 국내주식 리밸런싱을 전격 유예했다. 코스피지수가 8000선을 넘어 국내주식 보유 비중이 한도를 웃도는 상황에서 5월 말 기금운용위원회는 올해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5.9%포인트 높였다.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도 기존 ±3%포인트에서 ±6%포인트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국내주식 보유 비중을 최대 28.8%까지 운용할 수 있도록 여력을 넓혔다.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더라도 목표 비중 초과에 따른 기계적인 매도 부담을 줄이는 조치였다.

이를 놓고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기조와 맞물려 국민연금의 운용 기준이 바뀐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증시 상승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식 매도를 유예하면서 기금 운용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주장이다.

◆ 리밸런싱 유예 놓고 여야 충돌…장기 수익률이 쟁점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에 국민연금이 동원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배숙 의원은 " 대통령 말 한마디에 투자 기준을 바꾸고 당연직 관료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하명 회의였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리밸런싱 유예가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 의원은 "종전 목표치를 맞추려면 200조원어치 이상 팔아야 했는데, 막대한 물량을 쏟아냈다면 증시 붕괴를 불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장기적인 투자 원칙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시장이 급격하게 변할 때는 '바이 앤드 스테이'라는 투자 원칙이 있다"며 "시장상황에 따라 단기 등락에 맞춰 사고팔기를 반복하면 거래 비용만 커지고 기금의 장기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세계 연기금의 공통된 철학"이라고 말했다.

리밸런싱 유예를 둘러싼 논쟁은 시장 변동에 대응하는 운용 판단과 정해진 투자 원칙을 지키는 문제 사이의 충돌로 이어졌다. 주가 상승기에 국내주식 비중을 조정하지 않은 결정이 장기 수익률과 시장 안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 국내주식 운용이익 한 달 새 124조8000억원 감소

주가가 하락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운용 성과도 큰 폭으로 줄었다. 코스피지수는 6월 9000선을 기록한 뒤 7월 말 6600 안팎으로 내려왔다.

이날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누적 운용이익은 6월 말 283조5000억원에서 7월 말 158조7000억원으로 감소했다. 7월 한 달 국내주식 수익률이 -2.99%를 기록하면서 평가이익이 124조8000억원 줄어든 것이다.

다른 연기금과의 운용 방식 차이도 거론됐다. 사학연금과 우체국예금은 최근 10년간 시장 상황을 이유로 리밸런싱을 유예한 적이 없었고, 공무원연금은 20영업일 안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처분한 것으로 제시됐다.

국민연금의 운용 기준 변경이 시장에 미친 영향과 별개로, 다른 연기금이 정해진 원칙에 따라 자산 비중을 조정해 온 사례와 비교할 때 운용의 일관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외국인 매도 물량 개인이 받아…기금 독립성 논란 확산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순매도와 개인투자자의 매수 흐름도 국감에서 함께 거론됐다. 외국인은 5~6월 국내 증시 상승기에 170조원어치를 순매도한 것으로 제시됐다. 연간 누적 순매도액은 190조원에 달했다.

반면 개인투자자는 코스피지수 6000~9000대 구간에서 116조원어치를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출시된 '삼전닉스'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도 개인투자자의 매수 흐름과 함께 언급됐다.

이를 두고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비중 조정을 유예한 사이 외국인은 상승장에서 보유 주식을 처분하고 개인투자자는 매수에 나서면서, 주가 하락에 따른 부담이 개인에게 집중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만 외국인 매도와 개인 매수,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유예 사이의 인과관계는 구체적인 수급 자료와 운용 내역을 통해 따져볼 문제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구조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을 맡고 정부와 이해관계자 추천 인사가 과반을 차지하는 구조에서는 정권의 정책 기조가 운용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대형 연기금의 운용 사례도 비교 대상으로 제시됐다. 일본공적연금(GPIF)은 닛케이지수가 3만에서 7만까지 상승하는 과정에서도 국내주식 비중 25% 원칙에 따라 분할 매도한 것으로 소개됐다.

노르웨이중앙은행 투자관리청(NBIM)과 네덜란드 APG 역시 단기적인 정치적 압박이나 여론보다 운용 규율을 중시하는 사례로 거론됐다.

백종헌 의원은 "국민연금은 증시 부양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금"이라며 "핵심 운용 기준을 원칙 없이 바꾸고도 기금 운용위 회의록을 4년 뒤에나 보라는 것은 국회와 국민에대한 기만이자 독립성 포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리밸런싱 유예를 둘러싼 논쟁은 운용 기준의 변경이 시장 수급과 기금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국민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기금의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로 확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