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셜]한화를 사랑했지만 더 많은 팀의 사랑 받아 저니맨이 됐던 남자...오선진, 무려 19년을 버텨낸 뒤 은퇴

정철우 2026. 10. 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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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을 오래 사랑했다고 해서 그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선진의 경력에서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여러 팀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한화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한화에서 보냈고 한 차례 팀을 떠난 뒤 FA 자격을 얻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도 그런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한 팀에 대한 충성심과 프로 선수로서의 책임감이 충돌할 때도 있었겠지만 오선진은 자신을 선택한 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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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서 시작해 삼성·롯데·키움까지…화려하지 않았지만 어느 팀에서나 필요했던 내야수
FA 자격 얻자 다시 한화 선택, 청주 출신 아내와의 인연까지 더해진 특별했던 대전 복귀
팀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마음속 고향은 한화…680안타보다 빛나는 19년 생존의 기록
출처:한화 이글스

(MHN 정철우 기자) 한 팀을 오래 사랑했다고 해서 그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원하지 않았던 이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오선진이 그랬다. 누구보다 한화 이글스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선수였지만 정작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다른 팀에서 맞이하게 됐다. 한화에서 출발해 삼성과 롯데를 거쳐 키움까지. 여러 차례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했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냈다. 화려한 스타는 아니었어도 어느 팀에서나 필요한 선수였다. 오선진이 19년이라는 긴 시간을 프로야구 선수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키움 히어로즈는 11일 내야수 오선진이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008년 한화에 입단하며 시작된 프로 생활이 막을 내리게 됐다. 통산 17시즌 동안 1295경기에 출전해 680안타 251타점, 타율 0.239를 기록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특별히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다. 그러나 오선진의 가치를 타격 성적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가 19년 동안 프로 무대에서 버틸 수 있었던 진짜 경쟁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오선진은 2008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한화의 지명을 받았다. 처음부터 팀의 미래를 책임질 스타로 주목받았던 선수는 아니었다. 타격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유형도 아니었다. 대신 내야 어디에 세워 놓아도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선수였다. 유격수와 2루수, 3루수를 두루 소화할 수 있었고 수비에서 안정감을 제공했다. 주전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거나 예상하지 못한 공백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대안이었다.
출처:삼성 라이온즈

이런 선수들은 기록으로 자신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홈런을 많이 치는 것도 아니고 타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긴 시즌을 치르는 팀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주전 선수들이 모두 건강하고 제 몫을 해준다면 존재감이 크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그 중요성이 확인된다. 오선진은 바로 그런 선수였다. 감독이 라인업을 구성할 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내야수였고, 팀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여러 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자원이었다.

한화에서도 이런 능력을 인정받으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 나갔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 필요한 선수라는 평가가 반드시 한 팀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보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선진은 2021년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며 정들었던 한화를 떠나야 했다. 프로에 입단한 이후 처음으로 유니폼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삼성에서도 오선진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전 자리를 확실하게 보장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내야에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공격력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아도 수비와 작전 수행 능력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삼성에서 뛰는 동안에도 한화에 대한 애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선수 생활의 출발점이었고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팀이었다. 프로야구 선수에게 첫 번째 팀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성장의 기회를 얻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오선진에게 한화는 단순히 과거에 몸담았던 구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 팀이었다.

그런 오선진에게 다시 한화 유니폼을 입을 기회가 찾아왔다. 삼성으로 이적한 지 약 1년 반이 흐른 뒤 FA 자격을 얻었고 여러 구단의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친정팀 복귀를 선택했다. 다른 팀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선수였지만 오선진의 선택은 한화였다. 계약을 하러 가며 "대전 구장 가는 길은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 기쁘면서도 복잡한 마음이 든다"며 애정을 드러냈던 오선진이다.
출처:한화 이글스

당시 한화에도 오선진이 필요했다. 주전 유격수 하주석이 개인적인 문제로 징계를 받으면서 내야의 핵심 자리에 공백이 생긴 상황이었다. 한화는 안정적인 수비를 제공하면서 필요할 때 유격수 자리를 책임질 수 있는 선수가 절실했다. 오선진은 그런 요구에 부합하는 자원이었다. 오랫동안 팀에서 뛰었기 때문에 구단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한화의 필요와 오선진의 바람이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한화는 익숙하고 믿을 만한 내야수를 확보할 수 있었고 오선진은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단순히 FA 계약 하나가 성사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까지 더해지면서 대전 복귀는 더욱 특별한 선택이 됐다. 오선진은 당시 이미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고 아내의 고향은 청주였다. 대전과 청주는 생활권이 가까운 지역이다. 오선진에게 한화 복귀는 선수로서 익숙한 환경을 되찾는 일이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는 과정에서도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 야구와 인생의 중요한 선택이 같은 방향을 향했던 순간이었다.
출처:키움 히어로즈

하지만 오선진의 야구 인생은 그가 바랐던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다시 한화에 돌아왔지만 그곳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로 팀을 옮겼고 2025년부터는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었다. 한화에서 시작한 선수가 삼성과 롯데를 거쳐 키움에서 은퇴하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여러 팀을 오갈 수 있었던 이유다. 한 팀에서 확실한 주전 자리를 차지할 만큼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외면할 수도 없는 선수였다.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은 생각보다 훨씬 큰 경쟁력이었다. 팀마다 내야 사정은 다르지만 여러 자리를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는 선수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존재한다.

오선진은 바로 그 틈에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 냈다. 주전 선수가 빠졌을 때 대체 자원으로 투입할 수 있고 경기 후반 수비를 강화해야 할 때도 활용할 수 있었다. 한 명의 선수가 여러 포지션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은 제한된 엔트리로 시즌을 운영해야 하는 감독에게 상당한 이점이다. 오선진이 시장에 나올 때마다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유형의 선수에게 저니맨의 삶은 피하기 어려운 숙명일 수 있다. 특정 포지션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선수라면 구단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반면 여러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선수는 다른 팀에서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적 대상이 되기 쉽다. 오선진은 자신의 장점 때문에 프로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바로 그 장점 때문에 여러 팀을 옮겨 다녀야 하는 상황도 경험했다.

선수에게 유니폼을 바꿔 입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익숙한 동료들과 헤어져야 하고 새로운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 다시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구단마다 선수단 분위기가 다르고 요구하는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확실한 주전 자리가 보장되지 않은 선수라면 새로운 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선진은 그런 과정을 여러 차례 견뎌냈다. 어느 팀에서든 자신의 역할을 찾았고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필요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공격력이 크게 돋보이지 않았음에도 19년 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뛰어난 재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적응력과 꾸준함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출처:키움 히어로즈

오선진의 경력에서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여러 팀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한화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삼성에서도 뛰었고 롯데와 키움의 유니폼도 입었지만 오선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한화 시절을 먼저 떠올리는 팬들이 적지 않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한화에서 보냈고 한 차례 팀을 떠난 뒤 FA 자격을 얻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도 그런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유니폼은 한화가 아닌 키움이었다. 오선진은 은퇴를 결정하면서 자신이 거쳐 온 모든 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키움의 젊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성장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남겼다. 자신이 떠나는 순간에도 동료들의 미래를 응원하는 것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셈이다.

오선진은 19년 동안 야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행운이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그 시간을 단순히 행운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프로야구에서 19년을 버틴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기간 누군가에게 필요한 선수였다는 뜻이다. 화려한 기록이 없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새로운 팀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스타 선수에게는 한 팀에서 오래 뛰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구단이 중심 선수로 대우하고 그 선수를 중심으로 전력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선진과 같은 선수에게는 상황이 다르다. 언제든 더 좋은 선수가 나타날 수 있고 팀의 필요에 따라 자리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불안정한 환경에서 19년을 살아남았다는 것은 통산 680안타라는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성취다.

한화를 향한 애정은 깊었지만 다른 팀들도 그를 필요로 했다. 자신이 원했던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할 수는 없었지만 새로운 팀에 갈 때마다 다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한 팀에 대한 충성심과 프로 선수로서의 책임감이 충돌할 때도 있었겠지만 오선진은 자신을 선택한 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오선진은 한화를 사랑했지만 한화만의 선수로 남을 수는 없었다. 그를 필요로 하는 팀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스타가 아니었기에 더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했고, 그 치열함이 19년이라는 긴 시간을 만들어 냈다. 한 팀의 전설로 은퇴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팀에서 꼭 필요한 선수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충분히 값진 야구 인생이다. 오선진은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유니폼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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