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삼킨 프리미어리그…세계 갑부 손아귀에서 못 빠져나온다

[스포츠경향 김세훈 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상품이지만, 동시에 세계적인 부호와 국부펀드, 사모펀드의 이해관계가 가장 깊게 얽힌 리그이기도 하다.
가디언은 10일 칼럼을 통해 맨체스터 시티의 재정 규정 위반 사건이 프리미어리그의 현재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짚었다. 잉글랜드 축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자본을 끌어들인 대가로, 그 자본을 규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드러났다는 것이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왕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미국 억만장자와 각종 투자회사 등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 지역 사업가들이 구단을 운영하던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가 이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 기업가 가운데에는 축구와 지역사회를 위해 투자한 사람도 있었지만, 이익을 기대하거나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구단을 소유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80년대 낡은 경기장과 열악한 환경을 떠올리면 과거를 낭만적으로 볼 이유도 없다.
그래도 구단과 지역사회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다. 구단주가 티켓값을 올리거나 인기 선수를 헐값에 팔면 지역 팬들의 항의가 곧바로 돌아왔다. 거리에서 야유를 받을 수도 있었고,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이 불매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구단의 최대주주가 로스앤젤레스의 사무실이나 모나코의 펜트하우스, 중동의 호화 저택에 있으면 지역 팬들의 분노가 직접적으로 전달되기 어렵다.
이런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축구클럽이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잉글랜드 구단들은 여전히 지역과 가족, 역사, 정체성을 연결하는 존재다. 교회와 직장, 지역 사교모임 등 전통적인 공동체 기능이 약해진 시대에는 오히려 축구클럽이 지역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더 커졌다.
정작 팬들은 구단의 실질적인 소유권을 갖지 못한다. 독일의 ‘50+1’ 제도가 대안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부 투자자가 구단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도록 막는 구조다. 물론 이 제도도 완벽하지 않다. 바이에른 뮌헨이 최근 14시즌 가운데 13차례 분데스리가 정상에 오른 것처럼 경쟁력 격차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그래도 축구클럽이 단순한 투자자산이 아니라 지역사회 자산이라는 원칙만큼은 남아 있다.
프리미어리그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리처드 스쿠다모어 전 프리미어리그 최고경영자는 과거 “구단 소유 모델에는 중립적”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사실상 돈의 출처와 소유 구조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 결과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막대한 중계권료와 투자금이 들어왔고 경기장은 현대화됐으며 세계적인 선수들이 몰려왔다.
동시에 구단들은 국제 자본과 지정학의 일부가 됐다. 첼시만 해도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 올리가르히 구단주가 영국 정부의 제재로 구단을 매각해야 했고, 이후 미국인 공동구단주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의 보험회사가 미국 연방수사 대상이 되면서 지분 매각 압박을 받았다.
맨시티 사건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거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구단을 규제하려면 리그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법률 대응을 감당해야 한다. 과거 UEFA가 맨시티를 조사하던 당시 유출된 구단 내부 이메일에는 “세계 최고의 변호사 50명에게 3000만을 써서 10년 동안 소송하겠다”는 취지의 표현까지 등장했다. 영국은 오랫동안 해외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제 구조를 유지해왔다. 프리미어리그 역시 그 구조 속에서 성장했다. 돈을 먼저 받아들이고 문제가 발생한 뒤 규제를 통해 해결하려는 방식이다.
수익성과 지속가능성 규정, 선수단 비용 비율 규정 등 각종 재정 규제가 만들어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규제가 일정 부분 효과를 낼 수는 있다. 구단의 경쟁력이 단순히 ‘구단주가 얼마나 부자인가’에 따라 결정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이미 들어온 글로벌 자본을 다시 밖으로 밀어내기는 어렵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익성과 영향력을 확보한 대신, 세계 금융시장과 정치·경제 권력에 깊숙이 연결됐다.
결국 프리미어리그는 자신을 만든 사회와 경제 구조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지역사회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세계 부호들의 자산. 지금의 프리미어리그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모순이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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