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계 거물’ 필라이에 노벨평화상 간 이유는···“국제법 어긴 미국, 이스라엘에 경고”

국제법계의 거물인 나바네템 나비 필라이(85) 국제사법재판소(ICJ) 임시 재판관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국제법을 무력화하려는 미국, 이스라엘 등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은 9일(현지시간) 필라이의 수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강력한 반박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짚었다.
필라이는 국제법 분야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전문가다. 그는 현재 ICJ에서 로힝야족 집단학살 사건의 임시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소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지냈다.
노벨위원회도 수상자 선정 이유에서 국제법 질서와 국제사법기관이 공격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외르겐 바트네 프리드네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필라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 사실을 밝히면서 “(필라이가) 국제법의 범위와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필라이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국제 체제와 국제 규범에 기반한 질서, 관련 기구를 공격하고 훼손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ICC 재판관 출신인 필라이의 수상은 ICC와 갈등을 빚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경고 메시지로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ICC에 대해 “통제 불능의 불량 기관”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ICC 재판관과 검사 13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노벨위원회는 국제법 체계와 법·정의에 대한 세계적 존중이 약화하고, (국제질서가) ‘힘의 정치’로 전환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질서와 혼돈의 경계선을 지키는 판사들은 찬사받아 마땅하지만, 오늘날 바로 그 판사들이 제재받으면서 그들이 속한 기구도 공격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과 검사 등 13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벨위원회는 “법의 지배가 없이 운영되는 세계는 불공정하고, 현명하지 못하며, 비인간적이다. 평화에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카네 도모코 ICC 소장은 필라이의 수상에 관해 “국제 법질서와 법치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시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ICC뿐만 아니라 여러 국제기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며 국제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내게는 국제법이 필요없다”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2월28일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 등은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필라이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전쟁범죄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과 관련한 국제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도 했다. 필라이가 이끈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및 이스라엘에 관한 독립 국제조사위원회는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상대로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필라이는 보고서 발표 후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한 국가가 노골적으로 반항하며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강력히 부인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이날 필라이의 수상 소식 이후 엑스에 “필라이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정의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반이스라엘적 증오와 편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을 무기화한 것”이라 썼다.
다만 외르겐 바트네 프리드네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노벨위원회는 법원이 아니다”라면서 필라이의 가자지구 관련 보고서가 노벨위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프리드네스 위원장은 “우리는 필라이의 전문성과 진실성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해당 작업은 유엔 조사위원회의 활동”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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