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호남 반도체 '속도전' 선언.. 800조 반도체 대이동 시작되나

정용진 2026. 10. 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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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군공항 첫 방문…호남 반도체 부지 여건 직접 점검
용인 클러스터 3분의 2 규모 구상…수요 따라 추가 확대 가능성
전력·용수 늦어도 조기 착공 검토…건설비보다 일정 준수에 무게
800조 투자 청사진 현실화 관건…인프라 확보·지역 상생이 과제
[지데일리] 수백조원의 반도체 투자 지형이 수도권을 넘어 호남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9일 광주 군공항을 찾아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를 점검했다. 용인 클러스터의 3분의 2 규모로 구상하며 조기 착공 의지를 밝혔다. 전력·용수 확보가 관건이다. 사진=전남광주TV 유튜브 영상 캡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9일 호남권 반도체 생산기지 조성 예정지인 광주 군공항을 처음 방문해 부지 여건을 점검하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버금가는 규모와 조기 착공 의지를 드러냈다. 국가 반도체 산업의 무게중심을 넓히겠다는 구상이지만, 전력과 용수 확보, 인프라 구축, 기업 투자 실행력을 둘러싼 과제도 만만치 않다.

최 회장의 이번 방문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구상 단계를 지나 입지와 사업 추진 속도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지난 6월 29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총 800조원을 투자해 광주를 비롯한 서남권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인 팹 4기를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생산시설은 막대한 초기 투자와 장기간의 기반시설 구축이 필요한 만큼, 부지 확보와 인프라 공급 일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맞추느냐가 사업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최 회장은 호남권 생산기지 규모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약 3분의 2 수준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추가 부지를 확보할 수 있고 반도체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규모를 더 키울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는 호남권을 보조적인 생산 거점에 한정하지 않고, 국내 반도체 공급망의 한 축으로 육성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착공 속도다. 최 회장은 용인과 호남 생산기지를 병행해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전력과 용수 공급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전체 사업 일정을 맞출 수 있다면 공사를 먼저 시작할 수 있으며, 건설비를 아끼기보다 일정 준수에 무게를 두겠다는 취지다. 반도체 시장에서는 기술 변화와 수요 변동이 빠르게 나타나는 만큼 생산시설 가동 시점을 앞당기는 일이 경쟁력 확보와 직결될 수 있다.

그러나 조기 착공 의지만으로 사업의 속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팹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대규모 공업용수, 산업용 가스, 도로와 물류망, 숙련 인력 확보가 동시에 뒷받침돼야 운영할 수 있다. 

기반시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서두르면 공사비 증가와 일정 지연, 설비 운영 차질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최 회장이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더라도 기업의 투자 의지와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인프라 구축 능력은 별도로 검증해야 할 문제다.

지역경제에 미칠 파급효과 역시 투자 규모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대규모 생산시설이 들어서면 건설과 설비,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수요가 늘고 고용 창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핵심 장비와 협력업체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거나 지역 인력 양성이 투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경제적 효과가 일부 분야에 머물 수 있다. 지역 기업의 공급망 참여와 청년 기술인력 양성, 정주 여건 개선을 함께 추진해야 투자 효과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정책 목표와 기업의 생산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도 과제다. 반도체 산업은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의 집적도가 높을수록 협업에 유리하지만, 수도권에 시설과 인프라가 과도하게 몰리면 전력 수요와 교통, 주거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호남권 생산기지 조성이 국가 산업 기반을 넓히는 계기가 되려면 입지 분산 자체보다 지역별 역할 분담과 공급망 연계 전략이 먼저 구체화돼야 한다.

최 회장의 광주 방문은 호남 반도체 구상이 투자 규모와 착공 일정이라는 현실적인 과제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하지만 용인에 필적하는 생산 거점이 자리 잡을지는 아직 확정된 결과가 아니다. 부지 확보와 인허가, 전력·용수 공급 계획, 투자 주체별 책임과 일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 발표가 지역의 장밋빛 기대에 그치지 않으려면 속도전과 함께 실행 계획의 투명성, 기반시설의 안정성, 지역사회와의 상생 방안까지 갖춰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