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아틀라스보다 먼저 온 중국 ‘車海전술’
압도적 경쟁력으로 전세계 공습
안방 잠식당할 처지 몰린 한국차
정부, 위기 대응 나서야 할 때

루카 데 메오가 프랑스 르노 CEO일 때 “2년 안에, 2만유로 미만의 전기차를 개발하라”고 주문했다. 본사 개발진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중국의 기술진은 “문제 없다”고 했다. 르노가 중국 상하이에 개발센터를 만든 계기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의 개발센터가 상하이와 광저우 등지에 앞다퉈 들어서고 있다. 중국의 효율적인 전기차 공급망과 가공할만한 개발 속도, 기술력을 흡수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차를 팔러 가던 시장이 차 만드는 법을 배우는 곳이 된 것이다. 그 노하우가 집약된 중국산 전기차가 한국 안방을 폭격하고 있다. 중국 BYD는 올 상반기 단숨에 수입차 브랜드 4위에 올랐고,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양산된 테슬라 모델들은 한국 시장을 휩쓸고 있다.
한 국내 자동차 산업 전문가는 중국산 전기차의 공습을 인해전술에 빗대, 차해전술(車海戰術)이라고 했다. 차해전술은 과거 같은 싸구려 물량 공세가 아니다. 최근 중국에서 현지 전기차를 고루 타본 한 재계 인사는 “단차(段差)나 조악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가 알던 중국산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차가 이길 수 있겠나 하는 절망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중국의 전기차 공급망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흐름에서도 자유롭다. 미국 리서치 기업 로디엄 그룹은 중국 BYD가 동일하게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테슬라보다 차량 1대당 생산 단가를 약 4700달러나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체 원가에서 정부 보조금의 비중은 5% 남짓. 압도적인 원가 격차의 진짜 비결은 핵심 부품을 직접 내재화한 구조와 고효율을 자랑하는 연구개발 및 관리 역량이라고 했다.
엔진 하나 못 만들던 한국은 독자 자동차 브랜드를 세계 정상급에 올리는 기적 같은 성취를 이뤘다. 품질을 향한 집요한 노력에 두터운 내수가 더해진 덕분이다. 한국차는 이를 바탕으로 해외에 도전하고 미래 기술에 투자했다. 그 안전판이 흔들리고 있다. 올 2분기 현대차는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을 올리고도 영업이익이 20% 넘게 줄었다. 부품 공급 차질과 원자재 가격 상승, 경쟁 심화가 겹친 탓이다. 하지만 비용 상승분을 차값에 그대로 반영할 수 없는 처지다. 중국산 전기차가 가격 상한을 갈수록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산 전기차가 수익 기반을 잠식할수록 미래를 준비할 한국차의 혁신 여력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중국차의 공세가 계속된다면 한때 자동차 왕국으로 군림하다 쇠락한 영국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인 울산이 ‘한국판 러스트벨트’로 전락하고, 그 빈자리를 중국 자본의 공장이 채우는 암울한 시나리오를 공상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중국산 전기차의 진입을 봉쇄하고 있는 미국 시장마저 뚫린다면, 위기의 날은 훨씬 빨리 닥칠 것이다.
독일 아우디 엔지니어 출신 완강은 2000년 ‘전기차로 판을 바꾸자’고 제안한 뒤, 중국 과기부 장관에 올라 11년간 그 구상을 국가적 차원에서 현실로 만들었다. 자동차 100년사에 이름조차 없던 중국이 전기차 강국 반열에 오른 핵심 원동력이었다. 반면 한국은 자동차 노사가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며 건의한 전기차 생산 세액공제가 정부 안에서 빠졌다. 중국은 한국차에 15% 관세를 매기지만, 한국은 중국차에 8% 관세만 매긴다. 그러고도 한국 정부의 보조금은 한국산·중국산 가리지 않고 지급된다.
기업 홀로 국가 단위로 밀고 들어오는 차해전술을 당해낼 수 없다. 현대차의 승부수인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생산 현장에 등장하기 전 게임이 끝날 수도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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