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알벤가, 계획에 없던 마지막 밤이 오면
어쩌다 한 달, 이탈리아(41)
고양이, 낑깡 그리고 세탁기
한니발의 동생과 나의 운명
알벤가라는 곳으로 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도시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숙소를 예약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도 위에서 손가락으로 리구리아 해안선을 따라가다가 오늘 밤은 어디서든 자야 한다는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힌 지점. 그곳이 알벤가였다. 제노바와 프랑스 국경 사이 바다를 끼고 앉은 작은 도시. 여기 온 이유는 단 하나, 이동이다.
한국에서 갑작스러운 비보가 날아들었고 이탈리아를 떠나기로 했다. 알벤가는 떠나는 길 위에 가장 알맞게 놓여 있었다. 한 도시를 찾는 이유로는 꽤 무례한 편이지만 알벤가는 딱히 서운해하는 기색이 없다.
숙소는 57유로. 고른 기준이 오로지 가성비였으니··· 나머지는 말줄임표에 맡기기로 한다. 세상의 문장부호 가운데 말줄임표만큼 정직하면서도 예의 바른 것은 없다. 할 말은 다 하면서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으니까.
알벤가는 거의 돌아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알벤가는 숙소 근처 골목 몇 개가 전부다. 그 짧은 길에서 금귤이 조랑조랑 매달린 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어릴 적 '낑깡'이라 부르던 그 작은 주황빛 열매가 남국의 햇볕을 받으며 태연하게 익어 가고 있었다. 리구리아에서 만나니 낑깡도 어딘가 출세한 느낌이네.

여행이 길어지면 별수 없이 세탁기 앞에 서게 된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나는 꽤 많은 세탁기를 만났는데 놀랍게도 같은 녀석이 하나도 없었다. 제조사가 다르고, 모델이 다르고, 다이얼이 다르고, 버튼을 누르는 순서까지 달랐다.
코토네(cotone), 신테티치(sintetici), 델리카티(delicati). 동그란 다이얼에 둘러앉은 이탈리아어 단어들 앞에서 나는 매번 해독되지 않는 비문을 들여다보는 고고학자가 되었다. 빨래할 때마다 사전과 상상력을 함께 동원해야 하는 신세라니. 깨끗해지는 건 옷이었지만 사람은 너덜너덜해지는 쪽이었다.
한국에서 가전은 삼성 아니면 LG다. 두 회사가 세탁기 시장을 사실상 나눠 갖고 있으니 버튼 위치도, 헹굼 횟수도, 빨래가 끝났을 때 울리는 경쾌한 멜로디도 대개 거기서 거기다. 무엇이든 즉각 알아챌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세제 넣는 자리도 작동 순서도 저마다 다른 기계들은 매번 처음부터 다시 듣는 외국어 수업 같았다. 대체 세탁기 하나를 이렇게들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주차정산기도 다르지 않았다. 도시를 옮길 때마다 기계가 바뀌었다. 동전만 고집하는 기계가 있었고, 카드만 받아 주는 기계가 있었고, 차 번호판부터 입력하라는 기계도 있었다. 길바닥의 파란 선은 유료 주차라는 뜻인데 그 파란 선 앞에 설 때마다 처음 보는 시험지를 받아 든 수험생 신세였다.
그동안 꽤나 투덜거렸는데 여행 막바지가 되니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기계가 제각각이라는 건 그걸 만들고 들여놓고 관리하는 주체가 제각각이라는 뜻 아닐까.
이탈리아는 1861년에야 하나의 나라가 됐다. 그 전까지 천 년 가까이 도시와 공국과 공화국이 저마다의 깃발 아래 살았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사람들의 고향 사랑은 유난하기로 유명한데, 그들은 이 마음을 '캄파닐리스모(campanilismo)'라고 부른다.
마을 종탑(campanile)에서 나온 말로, 종탑이 보이는 데까지가 내 세상이고 우리 마을 종탑이 제일 잘났다는 마음쯤 된다. 이웃 마을을 향한 은근한 경쟁심까지 품은 말이라 마냥 칭찬은 아니지만 바로 그 고집 덕분에 동네마다 제 빵과 제 포도주를 지켜 왔을 것이다.
지역마다 저마다의 회사가 있고 경제가 제 주인을 가진다는 뜻이라면 그건 불편이라기보다 건강한 풍경에 가깝다. 한두 기업이 시장을 통째로 쥐고 흔드는 것보다는 확실히.
다만 이 아름다운 다양성에도 단서는 붙는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던 세탁기 브랜드 캔디는 2019년 중국 하이얼에 인수됐다. 한국에서 중견 업체들이 지키던 소형 세탁기 시장을 요즘 차지한 것도 하이얼 같은 중국 회사들이다. 이탈리아의 세탁실과 한국의 원룸이 뜻밖에 같은 주인을 섬기고 있는 셈이다.

그나저나 여행은 여기서 끝난다. 아쉬운 마음에 지도를 이리저리 늘려가며 가려던 도시와 길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서쪽으로 길게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나는 짐을 꾸려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아쉽다.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말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나중에 알았다. 이 작은 도시에서 나보다 먼저 서둘러 짐을 싼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걸. 기원전 205년 여름, 한니발의 막냇동생 마고가 카르타고 함대를 이끌고 느닷없이 리구리아 해안에 나타났다.
제노바를 기습한 그는 이 일대 해안에 살던 인가우니족과 동맹을 맺고 이곳을 원정의 발판으로 삼았다. 로마 사람들은 이곳을 알빙가우눔이라 불렀고 알벤가라는 이름도 바로 이 부족에게서 왔다. 칸나이에서 로마군을 포위해 무너뜨린 바르카 형제의 막내가 이탈리아 북서쪽 끝 바닷가에서 다시 한번 판을 벌이려 했던 것이다.
칸네의 들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알벤가에서 다시 내 앞에 나타날 줄이야. 여하튼, 그의 원정도 계획대로 끝나지 않았다. 북이탈리아에서 로마군에 패해 크게 다친 그에게 본국의 귀환 명령이 날아든다. 스키피오의 군대가 아프리카에 상륙해 카르타고를 위협하고 있었다.
마고는 돌아가는 배 위에서 끝내 상처를 이기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고향에서 온 소식에 서둘러 짐을 꾸리는 일. 2200년 전에도 여행은 그렇게 끝나곤 했다.
다친 데도, 쫓아오는 로마 군단도 없으니 내 사정은 그보다 훨씬 나은 것이지만 발이 무거워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겠나 여행이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이렇게 갑자기 끝내야 하는 사정도 생기는 법이다. 어쩌면 어이없이 서둘러 마무리하게 된 여행 때문에 또 다른 여행이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고.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이것도 다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렇게 믿기로 한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내게 무엇으로 기록될까. 여행의 목적은 여행 그 자체일 뿐, 목적을 세우는 순간 순수한 여행은 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행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그 여행의 주제와 이유가 슬그머니 떠오르곤 했다. 산티아고 길에서도 그랬다. 걷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돌아와 한참이 지나서야 제 이름을 달고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이번 여행에서 나는 신과 영웅들의 땅을 지나왔다. 시칠리아와 칸네의 들판이 있었고, 에트나의 검은 비탈이 있었고, 단테가 지옥에까지 데려간 볼로냐의 탑도 있었다. 그 장대한 여정의 마지막 장면이 하필 풀지 못한 세탁기 다이얼이 될 줄은 몰랐지만.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가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리스 시인 카바피스는 <이타카>에서 여행을 서두르지 말라고, 늙어서야 섬에 닿는 편이 낫다고 썼다. 내 여정은 예정보다 일찍 끝났지만, 어쩌면 그래서 이 여행의 이타카는 아직 더 먼 곳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알벤가의 밤. 나는 아직 이 여행의 이름을 모른다. 괜찮다. 이름은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하니까.
jaeheecall@gmail.com

박재희 작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전공 후 국제경영 MBA를 취득했다. 현대그룹과 DELL, EMC 등 글로벌 IT 기업 마케터로 일하고 미국 벤처 Actifio 아시아태평양 지역 마케팅 총괄대표를 지냈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인생 리셋'을 선언하고 두 차례 산티아고 순례 후 현재는 여행작가이자 자기계발 리더십 코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산티아고 어게인>, <숲에서 다시 시작하다>, <그 여자, 정치적이다> 등이 있으며 현재 모모인 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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