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추석’과 인도의 ‘피트라팍샤’ [라훌 라즈의 서울–델리 대화]

서경IN 2026. 9. 2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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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인도에는 가을을 맞아 친족 관계와 집단기억, 경제적 순환이 교차하는 축제가 있다. 한국의 추석과 인도의 피트라팍샤(Pitrapaksha)다.

이처럼 추석과 인도의 계절 축제가 지닌 의미는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에 기억과 전승의 가치를 전하는 데 있다.

결국 추석, 피트라팍샤, 퐁갈, 오남, 바이사키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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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훌 라즈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한국의 풍성한 농산물과 추석 풍경, 인도의 피트라팍샤 추모 장면을 하나의 길로 이어지게 만들어 기억과 세대 간 연결을 표현한 AI 이미지.

한국과 인도에는 가을을 맞아 친족 관계와 집단기억, 경제적 순환이 교차하는 축제가 있다. 한국의 추석과 인도의 피트라팍샤(Pitrapaksha)다. 두 축제에서는 조상을 기리는 의례와 농경의 흐름이 맞닿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휴식과 여행을 선호하는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의례 참여가 줄고 있다. 이는 단순히 편의를 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시간 사용 방식의 변화, 효(孝)의 재해석, 새로운 소속 방식의 등장 등 사회적 변화를 보여준다. 조상을 기리기 위한 고향 방문이 여가 활동으로 대체되고, 조상을 기리는 공간은 디지털 이미지로 재현되고 있다.

많은 연구자는 수확 축제와 조상 의례를 서로 다른 범주로 구분하지만, 역사적으로 두 범주는 깊이 얽혀 있었다. 한국의 추석은 수확에 대한 감사와 차례·성묘를 통한 조상 추모가 결합된 전통을 보여준다. 가족들은 갓 수확한 쌀과 제철 농산물을 조상에게 먼저 올린 뒤 함께 나누어 먹는다. 이는 수확의 결실을 조상과 가족이 함께 나눌 때 비로소 의미가 깊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도의 피트라팍샤 역시 주로 망자를 기리는 의례이지만, 가을 수확기를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 농경과 연관된다. 공동체는 풍년을 위해 조상의 축복을 빌었다. 수확과 의례의 연관성은 타밀나두의 퐁갈(Pongal), 케랄라의 오남(Onam), 북인도의 바이사키(Baisakhi) 등에서도 확인된다. 두 문화에서 수확은 단순한 경제적 산물이 아니라 이전 세대로부터 이어받은 유산으로 여겨졌다.

두 축제를 비교하면 ‘유산’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주주와 이해관계자를 구분하지만, 전통사회에서 조상은 ‘도덕경제’의 이해관계자였다. 한국의 차례는 현재의 번영이 조상의 노력과 희생 위에 놓여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인도의 피트라팍샤에서 바치는 제물 역시 세대를 거쳐 이어진 빚을 갚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조상 의례는 종교적 헌신을 넘어 역사적 망각을 막는 문화적 기억 장치였다. 기록을 남기거나 족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의례는 혈통을 재확인하고 가족의 역사를 기억하게 했다. 그렇다면 이 축제들은 죽은 이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살아 있는 이들에게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

또 하나 주목할 공통점은 축제가 시간을 구분하는 장치로 기능했다는 사실이다. 농경사회는 의례의 달력(ritual calendar)을 통해 자연의 시간을 사회적 시간으로 전환했다. 추석은 수확의 계절에 열리며 풍요와 완성, 감사의 의미를 담는다. 바이사키는 한 농업 주기의 종료와 새로운 주기의 시작을, 퐁갈은 태양의 이동과 풍성한 수확을, 오남은 케랄라의 수확철을 기념한다. 이처럼 축제는 자연의 순환을 가족의 유대와 사회적 관계, 집단기억으로 연결했다. 인도와 한국은 이러한 의례를 통해 공동체의 도덕적 삶에 참여하는 일종의 ‘계절적 시민권’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축제와 관련된 이동 역시 두 사회가 공유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매년 추석이면 수백만 명의 한국인이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재회한다. 그 여정은 지리적인 동시에 상징적이다. 사람들은 조상의 집과 묘소를 찾아 가족의 역사와 다시 연결된다. 인도에서도 수확 축제 기간에 도시 거주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난다. 이는 관광과 구별되는 ‘의례적 이동’이다. 관광이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추구한다면, 의례적 이동은 익숙한 장소로 돌아가 삶의 연속성을 확인한다.

오늘날 전통 축제가 직면한 위기는 세속화보다 ‘상업화’일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에게 축제 연휴는 점차 휴가의 기회가 되고 있다. 여행 상품, 쇼핑 할인, 오락 행사 등이 주목받으면서 의례 참여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는 세대 간 교류를 줄이고, 디지털 네트워크는 물리적 공동체의 일부 역할을 가상공간으로 옮겨 놓았다. 소비문화에서 의무보다 경험이 중시되면서 축제의 의미도 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생활양식의 변화와 복잡한 의례에 대한 젊은 세대의 회의적 태도 속에서 조상 제사가 간소화되고 있다. 2025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조사에 따르면 차례를 준비한 가구는 40.4%로, 2016년의 74.4%에서 크게 감소했다. 결혼과 출산의 감소,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선호 역시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와 맞물려 가족 의례의 변화를 낳고 있다. 가족 모임 대신 여행을 택하거나 혼자 명절을 보내는 ‘혼추족’도 늘고 있다. 2025년 추석 연휴 기간에는 245만 명이 넘는 여객이 인천공항을 이용했다.

인도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나타난다. 피트라팍샤와 수확 제례의 기간이 단축되고 있다. 도시화와 생활양식의 변화, 핵가족화로 세대 간 지식 전승이 약화되면서 젊은 세대가 의례의 의미와 방법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축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집단기억을 담고 세대 간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축제의 쇠퇴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형식적인 의례 참여는 감소하고 있지만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여행 중 조상의 고향을 찾기도 하고, 해외에 사는 인도인들은 오남을 통해 지역 정체성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는 전통을 당연히 물려받는 대상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됐음을 뜻한다. 앞으로 축제의 생명력은 참여를 강제하는 데보다 각자가 그 의미를 능동적으로 찾는 데 달려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문화 정책의 과제는 의례를 과거의 형태 그대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를 재해석하는 데 있다.

현대화는 흔히 전통과 진보 사이의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이러한 축제들은 둘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준다. 조상 의례와 수확 축제는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 개인의 성취가 이전 세대가 구축한 사회적·문화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인공지능과 국제적 이동성, 디지털 문화가 공존하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축제는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수확은 자연에 대한 의존을, 조상 의례는 과거에 대한 의존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삶이 개인의 독립적인 성취만이 아니라 관계와 유산의 연속선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추석과 인도의 계절 축제가 지닌 의미는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에 기억과 전승의 가치를 전하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전통 의례를 과거의 형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연속성, 상호성, 기억이라는 핵심 가치를 어떻게 보존하고 재구성할 것인가이다.

수세기 동안 한국과 인도는 수확을 기억으로, 기억을 정체성으로 전환해 왔다. 이 축제들의 미래는 현대사회가 그 오래된 연결 방식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추석, 피트라팍샤, 퐁갈, 오남, 바이사키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 사이의 대화가 이어지는 시간이다. 모든 수확이 유산이며, 모든 유산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문명적 기억을 환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라훌 라즈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서경IN sk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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