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유홍준 관장의 이상한 사과

허윤희 기자 2026. 9. 2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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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일반시국은' 유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특별전에서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한 유묵이 친일파 박중양의 것임이 뒤늦게 밝혀져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검증 오류를 스스로 인정하고 유물을 조기 철거한 것은 80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문제의 유묵은 지난 7월 개막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나온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이다. 당시 언론 공개회에서 유 관장은 “이 전시에서 크게 감동받은 작품”이라며 “임진왜란 최초의 승병장인 영규대사가 충청도에서 의병을 일으키면서 외친 ‘밥 한 그릇도 나라의 은혜다’라는 말씀을 담은 글”이라고 했다. 박물관은 영규대사의 구호를 애국지사 박원근이 쓴 글씨라고 전시했지만, 개막 한 달여 만에 낙관의 ‘박원근’이 박중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제보에 작품을 철거했다. 근현대사·서예 등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은 검증 끝에 박중양이 일본 유학 시절 쓴 글씨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상한 건 사과의 내용이었다. 유 관장은 배포 자료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은 박물관이 국민 앞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 미흡했다”며 “앞으로 전시품 검증 절차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직후 열린 강연에서는 “유물의 정확한 의미를 읽지 못한 것은 (박물관의) 역량 부족”이라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직원들의 잘못을 살피지 못해 리더로서 사과한다는 뉘앙스로 읽혔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검증 안 된 개인 소장품을 전시에 밀어 넣은 주역은 유 관장 본인이었다. 관장의 ‘강력한 추천’에 내부 검증 시스템은 무력화됐다. 본인이 주도해 놓고 정작 문제가 터지자 “역량 부족” 운운하며 주어가 모호한 사과 뒤로 숨은 셈이다.

유홍준 관장은 베스트셀러 인문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 다작을 펴낸 미술사학자다. 어려운 문화유산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데 탁월하고, 대중 강연에선 이를 맛깔나게 들려주는 스타 강사다. 하지만 책이 출간될 때마다 사소한 오탈자부터 심각한 오류까지 논란이 따라붙는다. 2002년 ‘완당평전’을 냈을 땐 오류가 200군데 넘는다는 추사 전문 연구자의 지적이 나왔다. 유 관장은 이후 언론에 “지적을 받아들여 5쇄를 찍는 동안 90군데를 고쳤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오류가 발견되면 개정판에서 고치면 된다는 태도다.

하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의 전시품은 개인의 저서와는 그 무게가 다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작품의 철저한 검증과 연구 성과로 기준점을 제시해야 할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기관이다. 검증 실패는 공신력 추락으로 직결된다. 박물관의 권위는 ‘관람객 세계 3위’라는 화려한 숫자나 관장의 입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작품을 관장 한 사람의 인상평으로 전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박물관 역사에 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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