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힘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 가장 큰 영감”…‘긴긴밤’ 작가가 동화를 쓰는 이유

박선희 기자 2026. 9. 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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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출간된 이후부터 줄곧 어린이 문학 베스트셀러 상단을 지키고 있는 책이 있다. 지구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가 어린 펭귄과 함께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긴긴밤'이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작가는 동화 작가 겸 그림책 작가인 루리.

우리는 누구나 죽음과 이별을 겪고, 그렇다면 모두가 예정된 비극을 살아가는 것인데, 그 예정된 비극을 왜 저렇게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온 힘을 다해 사는 거지? 그리고 그건 또 왜 이렇게 예쁜 거지? 이게 제가 가진 질문이었고, 이 질문에 대해 가장 잘 답할 수 있는 방법이 저에게는 어린이문학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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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등단한 아동문학작가인 루리는 ‘긴긴밤’ ‘나나 올리브에게’ 등의 장편동화를 쓰면서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등 그림책 작업을 동시에 한다. 그는 “내 이야기가 온 마음을 다해 사는 이들에게 닿길 바란다”고 말했다. © 레이지웨이브

2020년 출간된 이후부터 줄곧 어린이 문학 베스트셀러 상단을 지키고 있는 책이 있다. 지구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가 어린 펭귄과 함께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긴긴밤’이다. ‘아이들 읽어주다 어른들이 더 운다’고 입소문난 이 책은 출간 2년 만에 30만부를 넘겼고 현재까지 누적 80만부가 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작가는 동화 작가 겸 그림책 작가인 루리. ‘긴긴밤’이 그의 등단작이다. 장편동화 뿐 아니라 그림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메피스토’ 등을 펴내면서 글과 그림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등단 때부터 현재까지도 회사생활을 줄곧 병행 중인 그는 “독자에게 이야기로 먼저 가 닿고 싶다”며 개인 신상이나 대면 인터뷰 같은 직접적인 노출은 아낀다.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솔직히 글 뒤에 숨을 수 있는 게 다행스럽다”는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hug harder’이란 문구가 들어간 이메일 아이디가 참 예쁩니다. 작품에서 느꼈던 ‘함께함’이란 메시지와 따뜻한 세계관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지으신 이유가 있나요.

“아…! 부끄럽지만 중2병이 한창이던 중학교 2학년 때 만든 이메일입니다. 그런데 저만 그랬던 건 아닌 것 같고, 다들 그 시절에 만든 중2 감성의 이메일 하나씩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지… 지금은 그저 너무 웃기고 부끄러운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습작을 하셨고 2020년 비룡소, 문학동네에서 각각 수상하시면서 화려하게 등단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림, 글을 동시에 작업하며 응모하셨는지요.

“공모전에 응모한 이유는 마감일 때문이었습니다. 안 그러면 한없이 게을러져서요. 그렇게 6년 정도 공모전 마감일에 맞춰 더미북을 만들어서 제출했습니다. 처음 몇 번은 기대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몇 년 반복되다보니 떨어질게 뻔해서, 발표날은 점점 안 보게 되더라고요. 그림책을 만드는 것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고, 도피처 같은 것이었어요. 그래서 계속 이렇게만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책 공모전에만 내다보니, ‘긴긴밤’도 그림책 버전이 5가지가 있었어요. 그러다가 할 얘기가 점점 많아져서, 그림으로 다 그리기가 어려워서 지금의 글버전이 나오게 되었고요. 당연히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당선되던 날도 동생과 미드를 보느라 전화도 못 받았습니다. 나중에 저녁 늦게야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있어서 다시 걸어보니 ‘긴긴밤’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엄마가 목욕탕에 가 계셨는데, 목욕탕에 전화를 해서 엄마를 찾아 당선소식을 전하니, 이게 무슨 일이냐, 어떡하냐는 말만 반복하셨어요. 그만큼 믿기 힘든 일이었거든요.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당선전화를 받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감도 안 나고 한동안 멍했던 것 같습니다. 매년 아무런 성과도 없이 반복해오던 일들인데, 갑자기 누군가 그걸 봐주고,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해주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마음입니다. 여전히 제가 작가가 되었다는 실감은 잘 안 들어요. 그냥 회사 다니면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가끔 이렇게 인터뷰를 하거나 독자분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면, 아, 내가 작가구나! 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아요. ”


―많은 장르 중에서도 어린이 문학을 하게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어린이문학이 아닌 다른 장르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이문학이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니까요. 가짜일게 분명한데도, 진짜 같은 이야기, 진짜라고 믿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제 어른이고, 현실을 살지만 종종 어떤 일이 일어나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거든요. 어떤 동화같은 일이 내 현실에 일어나서 이 모든 괴로움을 단번에 희망으로 바꾸었으면 하고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이야기를 썼습니다.

하루는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야경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런데 ‘저 불빛들은 사실 다 사람들일 텐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불빛을 빛내며 열심히 사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죽음과 이별을 겪고, 그렇다면 모두가 예정된 비극을 살아가는 것인데, 그 예정된 비극을 왜 저렇게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온 힘을 다해 사는 거지? 그리고 그건 또 왜 이렇게 예쁜 거지? 이게 제가 가진 질문이었고, 이 질문에 대해 가장 잘 답할 수 있는 방법이 저에게는 어린이문학이었어요. 답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맞겠네요. 평생 답을 모르더라도, 답을 찾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많으니까요. ”

―작품 활동 하시는데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 ‘라이온킹’ ‘토이스토리’같은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이란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라이온 킹’이었어요. 그때는 더 이상 산타를 믿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정말 지구 어딘가에는 프라이드랜드가 있을 거라고는 믿었던 것 같아요. 그저 우리가 볼 줄 모르는 것뿐이지, 정말 동물들이 저렇게 온갖 모험을 겪으며 우정을 나누고 살고 있을 거라고요. ‘토이스토리’는 조금 큰 후에 보게 되었지만, 그때도 역시 정말 장난감들이 우리 몰래 저렇게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믿고 싶어지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저는 마침 수많은 매력적인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던 멋진 시대를 자라 온 것 같아요. 덕분에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를 꿈꾸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게 되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그런 마음으로 계속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등단 전부터 현재까지 직장생활을 병행 중인 그는 “작가 일만큼이나 직장일이 중요하다”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 레이지웨이브

―장편동화 ‘긴긴밤’ ‘나나 올리브에게’ 모두 뉴스와 보도사진이 모티브가 된 작품들입니다. 사회적 사건을 모티브로 가져오신 건데, 현실의 이야기를 동화라는 틀로 옮겨 오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요.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거든요. 사진 속 주인공들의 삶은 (제가 아는 한에서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아주 지독한 비극에 가까웠어요. 그 비극을 어떻게든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저기에는 분명 우리가 모르는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있을 거다, 라는 강한 염원 같은 것이 이야기를 만들게 합니다. 슬프고 괴로운 삶이라면, 그걸 감당할 만한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어서 그랬기를, 그래서 결국 이 모든 것에는 어떤 의미가 깃들어 있기를 비는 마음이 ‘진짜였으면 좋겠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어요. ”

―대부분의 작품에서 동물이 주인공이거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동물을 좋아하신다는 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동물을 서사의 중심에 두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의도 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은 네가 어렸을 때 농장에 살아서 그러나, 하시기도 합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해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자연농원 정기권을 끊어서 데리고 다녔다고도 하시고요. 동물 다큐멘터리도 좋아하고,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도 무척 좋아합니다.

일이 바쁘지 않을 때에는 나무위키에 동물을 검색해보는 것을 즐겨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들개에 대한 나무위키를 봤는데요, 무리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투표를 해서 정하는데, 재채기로 투표를 한 대요! 너무 재밌어서 관련 다큐멘터리나 정보들을 검색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됩니다. 혹은 한강을 지나다가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우연히 보다가, 배가 간지러운데 물고기는 배를 긁을 수가 없으니 저러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같은 인간도 저는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편인데, 동물들은 종이 다르니 더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사실이 그들을 더 이해하고 싶게 만들고, 나와 비슷한 마음이 있을 거라 상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긴긴밤’ ‘나나 올리브에게’ 등에는 어른들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울림이 있습니다. 창작 과정에서 염두에 두는 주 독자층이 있으신지, 어떤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닿기를 바라며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 이야기가 어른들에게 읽히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늘 어린이들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만듭니다. 어린이 같은 마음을 가진 어른들도 여기에 포함될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같이 일하는 회사동료분이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아킬레스건염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너무 뛰어 놀아서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기는 거래요. 어린이들은 그래요. 너무 신나서 토할 때까지 노는 애들도 많아요. 무엇을 하든 가진 것 모두를 쏟아 부어요. 저는 못 그래요. 그러면 상처받을까, 다칠까, 몸을 사리게 되요. 그런데 저도 한때는 가진 걸 다 쏟아 부어 무언가를 하던 어린이였거든요. 그래서 아주 가끔 다시 용기를 낼 때도 있습니다. 어린이였던 그때 처럼요. 저는 제 이야기가 온 마음을 다해 사는 이들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

―‘나나 올리브에게’는 특히 이야기만큼이나 마지막 부문 그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감동을 줍니다. 글과 그림을 모두 혼자 다 소화하시는 모습이 엄청난 ‘슈퍼 파워’를 가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글과 그림 작업을 함께 진행하시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보람이나 어려움이 있을까요.

“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특권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뿐이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없기는 합니다. 물론 처음 이야기를 상상할 때는 온갖 문장들과 장면들을 떠올리며 잔뜩 신이 나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책으로 빚어가는 과정이 시작되면 아무것에도 확신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작업 후반으로 갈수록 다 다시 써야 할 것 같고, 다 다시 그려야 할 것만 같아집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제 책들은 출간 된 이후에 한 번도 펼쳐본 적이 없어요. 너무 부끄럽고 오글거려서 차마 마주할 수가 없어서요. ”

―여백을 남기는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문장을 쓰십니다. 문장을 쓰실 때 가장 염두에 두고 공 들이는 건 어떤 부분일까요?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멋진 문장을 쓰지는 못해요. 어휘가 풍부한 편도 아니고요. 어떤 문장들은 보기만 해도 너무 아름답고 숨을 멎게 하는 그런 문장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렇지는 못해요. 그래서 문장을 쓸 때는 서사를 진행시키기 위한 문장을 쓰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옮긴다는 생각으로, 그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문장을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요. ”

―가장 좋아하는 아동문학 작품 몇 권을 추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북거, 아북거 (로알드 달), 몬스터 콜스 (패트릭 네스), Love That Dog (샤론 크리치), 사랑의 바다 (월프리드 루파노), 순례주택 (유은실), 주문이 많은 요리점 (미야자와 겐지), 끝없는 항해 (로베르토 인노첸티), 순간 수집가 (크빈트 부흐홀츠) 정말 끝도 없지만 이정도로 추천하겠습니다.”

―그림과 글 중에 뭐가 더 좋으신지요?

“긴 머리일 때는 단발로 자르고 싶고, 단발머리일 때는 긴 머리로 기르고 싶은 마음과 비슷합니다. 글을 쓸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좋고 그림을 그릴 때는 글을 쓰는 게 더 좋아집니다. ”

장편동화 ‘나나 올리브에게’ 에 수록된 루리 작가의 그림

―베스트셀러 작가이신데도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계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집필 루틴은 어떤지, 리프레시 비법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인데, 그걸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요. 그리고 오래 직장생활을 해와서인지, 사무실에 나가지 않으면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집필 루틴은 부지런한 시기와 게으른 시기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처음 구상을 막 시작한 시기는 부지런한 시기예요. 그 시기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에도 작업을 하고, 퇴근 후에도 작업을 하며 열심히 삽니다. 너무 재밌고 신이 나서요.
그러다가 이야기가 어느 정도 틀이 잡히고 수정을 하는 시기가 오면 이제 게으른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때부터는 벌여놓은 일이니 해야 한다,는 마음이 되어서 겨우겨우 침대에서 기어 나오고, 꾸역꾸역 작업을 해나갑니다. 그리고 갑자기 작업 외에 모든 것들이 다 재밌어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시간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업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 리프레시는 할 시간이 없습니다. 책 하나를 마무리 할 즈음이 되면 팔이 잘 안 올라가서 마사지를 받는데 그게 리프레시인 지 치료인지는…
그렇게 신난 과거의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는 하다보면 몇 년이 훌쩍 흘러있어서 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제가 나쁜 기억은 금방 잊고 좋은 기억만 오래오래 기억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래서 힘든 건 다 까먹고 다시 일을 벌입니다. 그 반복이 작업 루틴인 것 같아요.”

―대면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직품 뒤로 조금 비켜 서서 소통하시는 연유가 있으실까요.

“가장 큰 이유는 정말 시간이 없어서입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작업을 하다 보니, 정말로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대면 인터뷰는 거의 불가능하더라고요.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핑계가 감사하기도 합니다. 제가 정말 말주변이 없어서요. 저는 말을 정말정말 잘 못해요. 긴장을 하면 목소리까지 염소목소리가 됩니다. 그래서 사실 이렇게 글 뒤에 숨을 수 있는 게 좀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깊은 상실과 고통, 죽음 앞에서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참담한 순간 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살아내게 만드는 진짜 힘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컨택트’라는 영화가 있어요. 외계인 영화인데, 여주인공이 외계인으로부터 특별한 힘을 얻어서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어요. 그래서 자기가 곧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데, 그 아이가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된다는 걸 알게 되요. 그래도 그 여주인공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기를 택해요. 우리는 외계인한테 힘을 빌릴 것 까지도 없어요.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이별을 경험하고 죽음을 경험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기를 택하잖아요. 우리는 누구나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각자 다 다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경이롭게도 우리는 모두 이미 살아내고 있고, 그 모습이 저에게는 가장 큰 영감입니다.

―아버지께서 ‘국밥 한 그릇 같은 책을 쓰라’고 하셨단 말씀을 봤습니다. 독자들이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마음에 어떤 온기나 위로를 얻어 갔으면 하시나요.

“맞아요, ‘긴긴밤’ 당선 시상식에서 저 대신 수상소감을 얘기할 때 하셨던 말이에요. 책 한권 값이 국밥 한 그릇과 비슷하니, 그 정도의 뜨뜻함은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라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긴긴밤’의 마지막 장면은 다른 펭귄들 사이에서 아기펭귄이 뒤를 돌아보는 장면인데요, 저는 그 장면을 보는 분들이, 아기펭귄의 마음으로, 나 여기까지 잘 왔어요, 나 잘 살아냈어요, 하고 느꼈으면 했던 장면입니다. 다른 책들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

―좋은 아동문학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좋은 이야기는 내 이야기도 아니고, 진짜 있었던 일도 아닌데 마음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앞으로 그런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고요. ”

―차기작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구멸망을 배경으로 한, 거미와 나방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구상 중입니다. 약간의 공포·호러 장르가 가미 된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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