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생은 ‘멍게’처럼

지난 주말 바다를 보고 왔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직장과 집을 오가며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가 엄마를 모시고 자매들과 여행을 떠났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계획을 세우기로 했지만,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출발하게 되었다. 바다로 향해 가는 길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벌써 추수를 끝낸 논이 드문드문 보였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날씨와 낮에는 덥지만 청명한 하늘. 그리고 단풍나무 잎 끝에 가을이 온 것을 알고 있었지만 벌써 벼 추수 시기가 된 것이 새삼스럽다,
대천항에 도착하여 수조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며 '어떤 것이 맛있을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참돔, 광어, 동생이 좋아하는 새우와 가격이 비싸 한 마리만 구입한 오징어까지. 고르다보니 우리가 먹기에 조금 많다. 하지만 이렇게 넉넉하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자녀들 모두 직장에 다녀 돈을 벌고 있지만 기분 좋게 사주신 엄마 덕분이다.
포장을 해 숙소에서 열어보니 회가 먹음직스럽다. 우리가 구입한 회와 서비스로 넣어주신 멍게, 그리고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까지 있는 것을 보니 먹음직스럽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고소하고 쫀득한 오징어와 새우 껍질을 까서 먹으니 달큰한 맛이 난다. 오물오물 먹다보니 배가 부르다. 이럴 때는 멍게를 먹을 때다. 멍게를 초장에 살짝 찍어 소중하게 입에 넣고 깊은 바다 향을 음미한다. 멍게는 바다에서 살지만 바다에서 사는 다른 해산물보다 향이 진하다. 마치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청출어람(靑出於藍)처럼, 바다에서 자랐지만 바다의 고갱이처럼 향이 진하고 바다가 느껴진다.
따뜻한 물에 녹차가 우러나듯이, 한가로운 오후를 즐긴다. 가족들과 모여 있으니, 부모님이 건강하시던 시절로 돌아간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고추를 따던 일, 옥수수 따기와 옥수수 대를 베던 일, 호랑이콩 농사를 지을 때는 줄기 높이가 애매해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콩깍지를 따, 다리와 허리가 아팠던 일. 고구마, 감자를 캐던 일 등 일을 많이 해 봤지만 제일 힘들었던 일은 옥수수 따기다. 긴 팔 옷과 수건으로 중무장을 하고 옥수수 고랑으로 들어가도 날카로운 옥수수 잎에 여기저기 베이기도 하고, 더우니 땀이 상처에 들어가 얼마나 따갑던지. 그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어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 아버지가 더 보고 싶은 날이다. 우리 자매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한다. 시간이 지나가니 힘들었던 일들이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갑자기 막둥이가 집을 떠나 학교 다니는 오빠, 언니가 주말에 집에 오면 평상시와 달리 생선이나 고기반찬이 올라와서 부모님께 자신만 차별 당하는 것 같아 서운했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랬냐며 나 같아도 많이 서운했을 것 같다고 토닥이며, 이야기는 계속 된다.
시간이 지나 해질녘에 밖으로 나가니 노을이 아름답다. 오랜만에 파도가 치는 바다 위에 불게 물든 노을을 보니 역시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며 색이 달라지는 분수도 멋지고, 광장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니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이 났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씩씩하게 살아낸 나의 하루에 감사한다.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인지 헤아릴 수 없이 감사한 마음뿐이고, 별 다른 일 없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축복받은 삶이다. 운 좋게도 날씨 좋은 가을 날 여행을 와서 노을 지는 바다도 보고, 용기를 주는 음악과 마음이 평온해지는 파도의 소리를 들으니 오늘 하루도 행복하다.
힘들고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향으로 온전히 삶을 채워가는 '멍게'처럼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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