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챌'로 IT 신화 쓴 전제완, 지금은 자연 속 생활…"청소가 전공"(꼬꼬무)

박선하 2026. 9. 1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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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1000만 회원을 거느린 국민 플랫폼 '프리챌'로 벤처 신화를 썼던 전제완 전 대표가 굴곡진 사업가 인생을 지나 현재는 자연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근황을 전했다.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1세대 벤처 신화를 이끌며 국내 인터넷 업계에 한 획을 그은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한때 대한민국 인터넷 산업의 최전선에 섰던 전제완은 결국 도시를 떠나 양양의 한 펜션 청소부로 지내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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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업 실패 후 자연으로, 화려한 성공 뒤 굴곡…"첫째는 내 실력 부족"
출처:'꼬꼬무' 캡처

(MHN 박선하 기자) 한때 1000만 회원을 거느린 국민 플랫폼 '프리챌'로 벤처 신화를 썼던 전제완 전 대표가 굴곡진 사업가 인생을 지나 현재는 자연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근황을 전했다.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1세대 벤처 신화를 이끌며 국내 인터넷 업계에 한 획을 그은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전제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물산과 인사팀 등에서 근무했다. 삼성 재직 당시 인사정보 시스템 구축 등에 참여하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1994년 제1회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1999년 회사를 떠나 창업에 뛰어들었다. '자유와 도전'을 내걸고 회사를 세운 전제완은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던 각종 모임과 인간관계를 온라인 공간으로 옮길 수 있는 커뮤니티 서비스에 주목했다. 그렇게 2000년 세상에 나온 것이 프리챌이었다.

프리챌은 서비스 시작과 함께 빠르게 성장했다. 누구나 손쉽게, 무료로 자신만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이용자들을 끌어모았고, 서비스 개시 약 2년 만에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하며 당시 주요 포털로 꼽힐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 국내 대표 패션 플랫폼으로 성장한 무신사 역시 초기에는 프리챌의 신발 관련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리챌의 독주는 오래가지 않았다. 경쟁 서비스인 싸이월드가 성장하기 시작했고, 특히 미니홈피가 인기를 끌면서 이용자들의 선택지도 넓어졌다.

프리챌은 수익성 문제에도 직면했다.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서버와 저장 공간 등 서비스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도 함께 커졌지만, 무료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출처:'꼬꼬무' 캡처

결국 프리챌은 2002년 커뮤니티 유료화를 결정했다. 당시 커뮤니티를 계속 운영하려면 운영자가 월 3000원의 멤버십 비용을 내야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무료로 이용하던 서비스가 유료로 전환되자 이용자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경쟁 서비스로 이탈하는 사람들도 빠르게 늘었다. 한때 약 110만개에 달했던 프리챌 커뮤니티는 유료화 이후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전제완 개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2002년 12월 전제완은 주금 가장납입과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프리챌 측은 사적 이익을 위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며 해명했지만, 전제완은 이후 실형을 선고받아 약 2년 동안 복역했다.

여러 상황 속에 결국 2013년 메일과 커뮤니티 등 주요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프리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전제완의 도전 역시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후 한때 프리챌의 경쟁 상대였던 싸이월드의 대표를 맡아 서비스 정상화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싸이월드 역시 자금난을 겪었다. 전제완은 투자를 유치하며 서비스를 살리려 했지만 코로나19가 찾아오면서 결국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방송에서 전제완은 잇따른 사업 실패를 돌아보며 "첫째는 제가 실력이 없는 것일 것 같다"면서 "두 번째는 사업은 운이 있어야 하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두 사업을 접으면서 저는 사업과 인연이 없나 보다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한때 대한민국 인터넷 산업의 최전선에 섰던 전제완은 결국 도시를 떠나 양양의 한 펜션 청소부로 지내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전제완은 "청소가 제 전공이다"라며 웃었다. 이어 "좋은 말로 하면 정원 관리사"라며 과거 화려했던 벤처 사업가 시절과는 전혀 다른 근황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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