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못해서 미안합니다" 고개숙인 외인의 진심, 감싸안은 사령탑…그날 '대반전'이 시작됐다 [대전포커스]

김영록 2026. 9. 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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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한테 사과를 하더라고. 외국인 타자가, 야구 못해서 미안하다고. 나도 깜짝 놀랐지."

"우리 선수들은 홈런을 쳐도 타구 속도가 150㎞대인데, 힐리어드는 막혀도 160㎞대였다. 데이터가 너무 좋았다. 터지기만 하면 작살난다는 믿음으로 참고 기다렸다. 그러던 5월의 어느날이다. 더그아웃에서 타격 연습을 보고 있는데, 힐리어드가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미안합니다'하고 나한테 사과를 하더라."

콧대높은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타자,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힐리어드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자 이강철 감독도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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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KT 위즈
8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SSG의 경기. KT 힐리어드가 타격을 하고 있다. 수원=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6.09.08/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KT의 경기. 5회초 2사 1루 KT 힐리어드 투런포에 이강철 감독이 기뻐하고 있다. 잠실=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6.07.17/

[대전=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갑자기 나한테 사과를 하더라고. 외국인 타자가, 야구 못해서 미안하다고. 나도 깜짝 놀랐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선수가 새로운 무대에서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령탑에게 사과의 말을 건넨 그날, 야구에 눈떴다.

감동적인 반전을 이뤄낸 KT 위즈 샘 힐리어드(32)가 그 주인공이다.

4월말까지 힐리어드의 타율은 2할3푼2리(112타수 26안타)에 불과했다. 홈런 5개를 치긴 했지만, 볼넷 12개에 삼진 37개. OPS(출루율+장타율)는 0.728. 퇴출돼도 할말없는 성적이었다.

당시 이강철 감독에게 힐리어드 이야기를 꺼내면 깊은 한숨부터 토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그래도 수비를 잘한다. 발도 빠르다. 선구안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맞기만 하면 타구가 쭉쭉 날아간다. 조금 더 기다려보겠다"고 답하곤 했다.

반면 5개월 뒤의 힐리어드는 홈런왕에 도전하는 선수다. 16일 대전에서 만난 이강철 KT 감독은 힐리어드 이야기가 나오자 환하게 웃었다.

전날 KT는 힐리어드의 홈런 2방을 앞세워 13대3 대승을 거뒀다. 이강철 감독은 "(힐리어드에게)안타 몇개 덜 치면 어떠냐, 점수차 여유있잖아. 삼진 먹어도 되니까 무조건 홈런 노리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KT 위즈

힐리어드는 6회초 2점 홈런, 8회초 솔로포를 잇따라 쏘아올리며 시즌 36홈런을 기록했다. 이제 홈런 1위 김도영(KIA 타이거즈, 40개)과는 4개차, 2위 오스틴 딘(LG 트윈스, 39개)에게 3개 차이로 따라붙었다. 1회초 홈 주루사 정도는 웃어 넘길만한 맹활약이었다.

시즌초 ABS(자동볼판정 시스템) 적응에 실패하며 방황하던 힐리어드를 믿고 기다려준 이강철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인상적인 기억 하나를 뒤늦게 풀어놓았다.

"우리 선수들은 홈런을 쳐도 타구 속도가 150㎞대인데, 힐리어드는 막혀도 160㎞대였다. 데이터가 너무 좋았다. 터지기만 하면 작살난다는 믿음으로 참고 기다렸다. 그러던 5월의 어느날이다. 더그아웃에서 타격 연습을 보고 있는데, 힐리어드가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미안합니다'하고 나한테 사과를 하더라."

콧대높은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타자,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힐리어드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자 이강철 감독도 깜짝 놀랐다. 그는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냐, 괜찮다고 했다. 그러니까 '소속팀이, 사령탑이 나를 이렇게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경험은 처음이다. 잘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면서 "나중에 새삼 고맙다면서 또 이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돌아봤다.

2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KT의 경기. 1회초 1사 1,2루 KT 힐리어드가 안타를 날린 뒤 기뻐하고 있다. 잠실=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6.08.20/

일본프로야구(NPB)의 경우 외국인 선수가 1군에 4명까지 뛸 수 있고, 보유 한도는 제한이 없다. 투수-타자 합쳐 3명만 보유할 수 있고, 교체도 쉽지 않은 한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아마 힐리어드가 일본에 진출했다면, 일찌감치 1군에서 말소돼 2군을 전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메이저리그에서 7시즌을 뛰었다고는 하지만, 힐리어드의 빅리그 경험은 332경기 831타석이 전부다. 서른이 넘도록 대타, 대수비로나 간간히 기회를 받았던 그다. KT의 따뜻한 배려와 마음씀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강철 감독은 "나도 감동해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여러가지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한번 좀 올라오는 것 같다가 다시 떨어졌었는데, 그래서 더 미안했나 보다. 그 뒤로 작살나게 잘하더라"고 돌아봤다.

힐리어드는 5월부터 대폭발했다. 5월 한달간 3할5푼 8홈런 2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81을 몰아쳤다. 이후 6월에도 홈런 6개, 7월에는 9개의 홈런과 더불어 OPS 1.156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2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한화의 경기. 8회말 솔로홈런을 날린 KT 힐리어드. 수원=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6.09.02/

한차례 위기도 있었다. 아내의 출산이 늦어지면서 집중력이 흔들렸다. 8월 한달간 타율 2할1푼4리 2홈런 OPS 0.675에 그쳤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은 더이상 당황하지 않고 기다렸다. 마침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1주일간 출산 휴가도 주며 최대한 배려했다. 이후 돌아온 힐리어드는 9월에도 타율 3할2푼7리 6홈런 OPS 1.104로 리그를 평정하고 있다.

시즌 타율도 어느덧 3할 위로 끌어올렸다. 후반기만 보면 홈런 16개로 리그 전체 1위다. 막판 홈런레이스 대역전극까지 노리는 타자가 됐다.

다시 태어난 힐리어드, 그 중심에는 '강철 리더십'이 있었다. '신생팀' KT를 안정적인 가을야구 강팀으로 키워낸, KT에게 창단 첫 우승을 안긴 사령탑의 위엄찬 존재감이다.

5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롯데-KT전. 2회말 무사 힐리어드가 솔로포를 친 후 이강철 감독의 축하를 받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6.5.5/


대전=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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