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사는 세상] ‘연기 경력 46년차’ 배우 최민식…“나이 먹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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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이 먹는 게 좋아요."
그는 시간이 갈수록 배우에게 더 좋은 시기가 찾아온다고 말한다.
"내가 '물'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습자지에 물이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죠. 먼저 밥을 먹자고 하고 장난도 많이 쳐요.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땐 호흡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화합을 해치는 후배에겐 쓴소리도 합니다."
그렇게 두 배우의 진짜 감정이 맞물리며 강렬한 장면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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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탄생’ 감명받고 배우 결심
극단 ‘뿌리’서 연극 첫발…대학 진학
동료와 호흡 위해 친밀감 조성 노력
원작 ‘인턴’과 한국 아저씨로 차별화
든든한 어른 모습·활발한 아이디어
흥행 연연하지 않고 연기 진심 전달
“앞으로도 안해본 역할 하고 싶어요”


“저는 나이 먹는 게 좋아요.”
배우 최민식(64)은 세월을 받아들이는 데 거침이 없다. 1981년 배우의 길로 들어서 어느덧 연기 경력 46년차. ‘쉬리’ ‘올드보이’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신세계’ ‘명량’ ‘파묘’ 등 성공작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배우에게 더 좋은 시기가 찾아온다고 말한다. 살아오며 겪은 사랑과 분노, 기쁨과 슬픔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리라.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씨는 학업엔 관심이 없었다. 그가 학교 대신 택한 곳은 극장이었다. 영화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어서였다. 한편이 끝나면 나가야 했던 서울 내 극장과 달리 경기 의정부에 있던 중앙극장은 푯값을 더 내지 않아도 종일 머물 수 있었다. 어느 날 잠을 자다 눈떠보니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주연한 ‘스타 탄생’이 상영 중이었다. 큰 감명을 받은 그는 이후 다른 영화도 보기 시작했고 배우가 되기로 작정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극영화과 진학을 결심하곤 극단 ‘뿌리’에 단원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연극 ‘우리 읍내’의 주인공을 맡아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고 이듬해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한다.
동국대에서 만난 안민수 교수는 지금까지도 인생의 푯대가 될 평생의 어른으로 남아 있다. 엄했던 스승은 배우라는 직업의 의미와 자부심을 가르쳤다. 공연을 준비하며 밤새 무대를 꾸밀 때였다. 최씨는 동기·선후배와 무대에 신문지를 깔고 소주와 떡볶이를 먹었다. 그때 안 교수가 공연장으로 들어왔다. 안 교수는 “무대는 성전 같은 곳인데 그 위에서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느냐”며 크게 꾸짖었다. 또 분장한 순간부터는 그 역할로 살아야 하니 공연이 끝난 뒤 함부로 기념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피아니스트가 손을 소중히 하듯 배우는 몸으로 일하니 건강을 철저히 관리하라고도 일렀다.
엄격한 훈련을 받고, 실수할까 봐 늘 긴장했던 본인 신인 시절과 달리 요즘 후배들은 자유롭고 당당하다고 말한다. 그 모습이 놀랍기도 하면서 동시에 부럽다. 후배들과 있을 땐 과거 방식을 강요하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려고 한다.
“내가 ‘물’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습자지에 물이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죠. 먼저 밥을 먹자고 하고 장난도 많이 쳐요.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땐 호흡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화합을 해치는 후배에겐 쓴소리도 합니다.”

16일 개봉한 영화 ‘인턴’ 촬영장엔 나어린 동료가 특히나 많았다. 그가 연기한 ‘기호’는 37년간 출판사에서 일하다 은퇴 후 패션 회사 시니어 인턴에 도전한 인물이다. 30대 여성 대표 ‘선우’(한소희 분)와 일하며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위안을 얻는다. 타성에 젖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는 그는 익숙한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어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유행어를 구사하고 춤을 추며 희극을 완벽히 소화했다.
성공한 원작이 있기에 부담도 적잖을 터. 그래서 중후한 매력이 일품인 배우 로버트 드 니로를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한국 아저씨’ 캐릭터를 창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구사회의 딱딱한 상사와 부하 관계라기보단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 같은 정서를 담아보려고 노력했다.
영화 후반부 선우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오히려 자기 잘못인 양 자책한다. 이를 본 기호가 정신 차리라며 큰소리를 내는 장면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원래는 차분히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촬영 전날 밤 대본을 다시 보던 최씨는 선우를 정말 딸처럼 여긴다면 감정이 격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 아이디어를 감독과 공유하고 상대 배우인 한소희에겐 알리지 않은 채 촬영장에 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강한 어조에 한씨 역시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두 배우의 진짜 감정이 맞물리며 강렬한 장면이 완성됐다.
46년을 배우로 살아온 64세의 거장. 그는 이제야 연기를 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열정도 넘친다.
“저는 절대 은퇴 안할 거예요. 신구 선생님처럼 아흔이 돼도 쭉 현역으로 있으려고요. 친구들을 만나면 저보고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참 좋겠다’고 말해요. 앞으로도 지금껏 안해본 역할을 하고 싶어요. 최민식 아직 쓸 만합니다.”
그렇다고 흥행에 일희일비하진 않으려 한다. 외부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해도 관객수에 연연하다보면 영화계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카메라 앞에선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관람객에게 진심을 전하는 것. ‘인턴’에선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연기에서 잠시 벗어나 쉬고 싶을 땐 강원도를 자주 찾는단다. 특히 오대산을 선호한다. 전나무 숲길을 걷고 막국수를 먹은 뒤 월정사에 앉아 망중한을 즐긴다. 지금은 곧 찾아올 단풍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의 삶에도 어느덧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봄날의 화사함과 한여름의 울창함이 아름답듯 가을의 단풍도 그것만의 미학이 있다. 최민식에게 지금은 다채로워지고, 영글어지고, 풍성해지는 그런 가을 같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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