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기 섬 살린 ‘바람의 기적’…녹색 전환 가속

서형우 기자 2026. 9.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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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 햇빛·바람연금으로 新에너지 시대 열자]<5>덴마크 삼쇠섬
1997년 국가 공모 선정…지역경제 돌파구
10년 만에 연간 소비량 웃도는 청정전력
육상 11·해상 10기…교통연료까지 상쇄
주택·공공기관 곳곳 태양광 설비 일상화

농민·조합 직접 투자…이익 마을에 환류
직업·권역별 맞춤 설득으로 공감대 형성
20년 넘은 설비·지분 매각은 남은 숙제
“지역 특성 파악·세부계획 실행이 관건”
삼쇠섬에서는 주택과 공공건물 지붕·외벽 등 곳곳에서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은 삼쇠섬 발렌항 해수욕장의 공공건물 지붕과 담장 등에 태양광 패널이 부착돼 있는 모습.
약 1천200가구, 4천여명의 주민이 사는 덴마크의 작은 섬 삼쇠는 풍력과 바이오매스, 태양광·태양열을 기반으로 전력 자립을 이룬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전환 모델로 꼽힌다.

◇고령화·실직…‘위기의 섬’ 구해준 프로젝트

삼쇠섬의 에너지 전환 출발점에는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지역소멸이라는 절박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삼쇠섬은 1997년 덴마크 정부가 추진한 재생에너지 섬 공모에 참여해 10년 안에 섬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당시 삼쇠에서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섬을 떠나면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지역의 대형 도축장 등이 문을 닫으며 실업자도 늘었다. 섬 공동체의 미래가 흔들릴 수 있는 위기였다.

삼쇠섬은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공모 선정을 계기로 에너지 전환에 뛰어든 지 약 10년 만에 섬의 전력 소비량을 넘어서는 재생에너지 생산 체계를 갖췄다.

이 과정에서 각종 설비의 건축·전기 분야 등에 일자리가 생겼고 발전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환경정책으로 출발한 사업이 지역을 살리는 생존전략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후 삼쇠에는 각국의 연구자와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 등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 자체가 새로운 교육·관광 산업으로 성장했다.

◇전력은 풍력으로, 난방은 바이오매스로

삼쇠섬은 전력과 난방 부문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에너지 전환에 나섰다.
삼쇠섬 들판 넘어로 보이는 육상풍력발전기. 삼쇠섬에는 육상풍력발전기 11기, 해상풍력발전기 10기가 각각 설치돼 연간 10만㎿h가 넘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서형우 기자

2000년에는 1㎿급 육상풍력발전기 11기가 설치됐다. 브룬뷔·뇌레스키프테 인근 5기, 페르멜릴레와 탄데루프에 각각 3기가 들어섰다. 풍력발전기 1기는 약 63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하며, 11기의 연간 생산량은 약 2만8천㎿h에 달했다. 이를 통해 삼쇠섬이 1년간 소비하는 전력을 풍력발전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지역난방에는 섬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이 활용됐다. 각 가정에서 사용하던 석유 보일러를 대신해 짚과 목재 칩, 태양열을 사용하는 지역난방 시설 4곳이 들어섰다.

이에 따라 외부에서 석유를 사들이는 데 쓰이던 돈을 농민과 목재 칩 생산자, 시설을 관리하는 지역 업체에 돌아가도록 전환했다. 지역난방 수익은 시설 유지와 공동체를 위해 다시 사용하는 등 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섬 남쪽 해상에는 2002-2003년 2.3㎿급 풍력발전기 10기가 추가로 설치됐다. 총 설비용량은 23㎿이며 연간 7만7천500㎿h의 전력을 생산한다.

최근에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 없는 섬을 만드는 ‘삼쇠 2.0’ 비전에 따라 100% 전기로 돌아가는 선박인 ‘티르핑(Tyrfing)’호를 발주·건조하는 등 생활 전 분야에 재생에너지를 정착시키고 있다.

◇지붕·담벼락에 태양광…관광 명소화

삼쇠섬의 에너지 전환은 실제 생활권에서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었다.

최근 방문한 삼쇠섬 곳곳에는 각종 신재생에너지 설비가 자연스레 섞여 있었다. 주택과 공공건물 지붕·외벽 등에서는 태양광 패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며 풍차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는 들판의 모습은 일상 속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현지 제공 문서에는 약 40대의 공무차량 가운데 90% 이상을 전기차로 바뀌는 등 공공부문이 먼저 전환을 시도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덴마크 삼쇠섬에 위치한 삼쇠에너지아카데미 전경. 해당 장소는 주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발전소 설명회를 개최하거나 해외 지자체, 기업, 연구자들을 위한 단기 세미나와 회의를 진행하는 등 섬을 알리는 관광자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6년 설립된 ‘삼쇠에너지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 건물도 재생에너지 실증시설이었다. 약 625㎡ 규모의 아카데미에는 태양광·태양열과 지역난방, 빗물 활용 등 각종 친환경 건축기술이 적용됐다.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외장재와 조화를 이뤘다. 재생에너지 설비도 생활공간과 기존 경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 쇠렌 헤르만센 초대 아카데미 소장의 설명이다.
삼쇠섬은 석유보일러 대신 섬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짚과 목재칩 등을 활용하는 지역난방시설 4곳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쇠렌 헤르만센 삼쇠에너지아카데미 초대 소장이 바이오매스 기기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아카데미는 섬을 알리는 관광자원 역할도 하고 있다. 주민과 관광객에게 발전소 설명회 등이 수시로 열리며 해외 지자체와 기업, 연구자들을 위한 단기 세미나와 회의도 진행된다. 국제적인 교육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방문객들이 최대 5일간 머물며 재생에너지와 지역공동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별도 캠퍼스 조성도 구상하고 있다.

◇주민 설득으로 시작된 역사

삼쇠섬의 에너지 전환 성공에는 주민 설득 과정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헤르만센 초대 소장에 따르면 사업 초기 재생에너지 섬에 선정됐다는 소식만으로 주민들의 마음까지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 주민들은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이런 일은 작은 섬이 아니라 큰 도시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시큰둥한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에 사업 관계자들은 주민들의 직업과 생활방식에 맞춰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기후위기와 같은 거대한 명분보다 사업이 주민 개개인에게 가져올 구체적인 이익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건축업자에게는 주택 단열과 에너지효율 개선으로 늘어난 새로운 일감을, 농민에게는 버리거나 태워 없애던 짚과 농업 부산물을 지역난방 연료로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반 주민에게는 석유 보일러보다 저렴한 지역난방과 풍력발전 투자수익을 제시했다.

지역별 설득 방식도 달랐다. 삼쇠는 남북 길이가 약 30㎞에 불과하지만, 농·어업과 관광 등 마을마다 주력산업과 이해관계가 달랐다. 관계자들은 행정이 정한 하나의 방식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주민들의 요구를 먼저 들은 뒤 지역에 맞는 사업을 설계했다.

헤르만센 초대 소장은 “복잡한 에너지 지식이나 공익성보다 당장 삶을 바꿀 수 있는 부분들을 위주로 주민들이 처한 상황에 맞춰 설득했다”며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점을 짚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실무회의와 공개회의를 잇따라 열며 주민 참여를 확보했다. 주민들이 단순한 민원인이나 보상 대상에 머물지 않도록 육상풍력발전기 11기 가운데 9기는 농민과 개인이, 2기는 지역 풍력협동조합이 소유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협동조합 발전기의 약 5천400개 지분에는 주민 등 약 450명이 참여했다.

◇성공 후 찾아온 유지관리의 벽

다만 초기 시설들이 20년 이상 가동되면서 발생한 시설의 수명과 유지관리, 소유구조 문제 등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지역난방·풍력발전 시설은 모두 2000년 전후 들어섰다. 에너지 전환을 이끈 핵심 설비 대부분이 이제 정비와 수명연장, 교체 여부를 검토할 시점인 것이다.

노후 발전기를 교체하는 작업은 단순한 수리에 그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사업비가 필요하고 새로운 인허가와 경관 검토, 주민동의 절차도 거쳐야 한다. 사업 초기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에게 교체 필요성과 비용, 향후 수익구조를 다시 설명해야 한다.

소유구조의 변화도 과제다. 초기에는 농민과 주민협동조합이 풍력발전기에 직접 투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지분과 시설이 재매각됐다.

이에 따라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역량, 외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다음 세대가 시설과 주민협의 구조를 이어받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제2의 삼쇠섬’ 전남광주에서 가능할까

초기 삼쇠섬이 처했던 위기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현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전남광주 농어촌 상당수도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문제를 겪고 있으며 풍부한 햇빛과 바람을 지역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전남광주특별시는 올해 100개 마을, 5년간 총 500개 마을 선정을 목표로 햇빛소득마을 공모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발전시설을 많이 설치하는 것만으로 삼쇠의 성공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삼쇠에서는 1980년대부터 축적된 덴마크 풍력산업의 기술과 비용자료를 바탕으로 에너지원별 생산단가와 송전비용, 탄소 감축량을 계산한 장기계획을 세웠다. 이를 근거로 은행과 투자자, 주민을 설득해 자금을 끌어들였다.

반면 전남광주는 계통 포화와 출력제어, 송전망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 아무리 많은 태양광과 풍력발전시설을 세워도 생산한 전력을 계통에 연결하지 못하면 주민들에게 약속한 수익 역시 보장하기 어렵다. 전력가격과 REC 가격 변동, 외부 사업자 중심의 소유구조 등도 과제다.

헤르만센 초대 소장은 “지역의 대규모 프로젝트는 정부 차원에서 큰 틀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규모 단위에서 각각의 계획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세우고 실행하느냐가 핵심 관건”이라며 “지역의 특징과 상황을 잘 파악해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성공 요건”이라고 제언했다.

/서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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