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핵심인물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 사망

이영주 기자 2026. 9. 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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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를 지휘하며 시위를 유혈 진압했던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이 13일 숨졌다.

정씨는 50사단장 재임 중이던 1979년 전두환 신군부의 12·12 반란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공로로 이튿날인 12월13일 육군특전사령관에 취임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관련 자료와 진술을 분석한 결과 정씨가 5·18 당시 공수부대 지휘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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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광주 오가며 공수부대 지휘…재진입작전까지 관여
"지휘계통 벗어났다" 주장했지만 조사위서 핵심 증거 재확인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국회광주특별위원회 및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고 있는 정호용 5·18 당시 특전사령관. (사진 = 5·18기념재단 제공) 2023.08.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전남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를 지휘하며 시위를 유혈 진압했던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이 13일 숨졌다.

13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씨는 이날 오전 서울 소재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94세의 나이로 숨졌다.

정씨는 50사단장 재임 중이던 1979년 전두환 신군부의 12·12 반란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공로로 이튿날인 12월13일 육군특전사령관에 취임했다.

취임 이후 1980년 5월20일부터 같은 달 27일까지 총 3차례 광주를 찾아 예하 3·7·11공수부대를 지휘했다. 당시 3·7·11공수부대는 5·18 광주 유혈진압의 핵심 부대였다.

훗날 정씨는 5월27일 계엄군이 벌인 광주재진입작전(상무충정작전)을 지휘하고 시민들을 무력 진압·사살하도록 지시한 혐의(내란)로 기소돼 1997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5·18 관련 추가 의혹이 제기되면서 다시 수사 대상에 올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지난 2024년 6월 활동 종료를 한 달여 앞두고 정씨를 내란목적살인 혐의 등으로 다시 고발했다.

광주재진입작전 당시 병력을 동원·지휘한 사실이 확인된 데다 조사위 활동 과정에서 작전 당시 추가 희생자가 확인되면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공수부대 계엄군이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시민군 진압 작전을 마치고 도청 앞에 집결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hipth@newsis.com

정씨는 줄곧 자신과 5·18은 무관하다고 주장해왔다.

정씨는 지난 2021년 조사위에 5·18 관련 사실관계를 다시 조사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정씨는 진정서를 통해 자신이 5·18 당시 지휘계통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자신이 책임자로 내몰린 것은 정치적 수세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특전사령관으로서 군수·행정 분야에만 관여했고 지휘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으며, 지휘통솔권이 없어 발포와도 전혀 관련이 없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조사위는 관련 자료와 진술을 분석한 결과 정씨가 5·18 당시 공수부대 지휘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정씨가 광주에 처음 내려온 5월20일 작전 현안을 보고받는 성격의 회의를 주재했고, 당시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사회를 봤다는 복수의 진술도 확보됐다.

정씨가 주재한 회의에는 3·7·11공수여단장이 참여해 시위 진압 작전 상황을 논의했다. 이 같은 회의는 정 전 특전사령관이 광주를 오갈 때마다 열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18일 오전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1980년 5월21일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김완봉 군(당시 15세)의 묘를 찾아 참배했다. 사진은 당시 김 군의 어머니가 아들의 관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모습. 2019.05.18. (사진=5·18기념재단 제공)photo@newsis.com

또 정 전 특전사령관의 과거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7가지 핵심 증거도 조사위 조사 결과 모두 사실인 것으로 재확인됐다.

전교사 상황실 2층에 특전사령부 전용 상황실을 꾸려 운영한 사실과 5월26일 밤 광주로 내려와 27일 새벽 예정된 광주재진입작전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 배분한 사실 등이 포함됐다.

5·18 유공자들은 정씨가 끝내 5·18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용만 5·18서울기념사업회 전 상임이사는 "5·18 유혈 진압의 책임이 가장 무거운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전두환·노태우·이희성·황영시·정호용)이 모두 숨졌다. 큰 잘못을 저지른 이들 모두 역사 앞에서의 고백과 책임 없이 후안무치한 채 세상을 떠났다"며 "결국 신군부의 본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야욕에 불탔던 정치군인이었음이 증명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이 모두 숨졌더라도 발포 명령자 색출과 암매장 부분에 대해 유공자들이 살아있는 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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