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육사 동기’ 정호용 사망···군사 반란 ‘신군부 핵심 5인’ 모두 죽었다

5·18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핵심 관계자인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오전 사망했다. 향년 94세. 정 전 장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과 함께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책임 있는 신군부 핵심 5인으로 평가된다. 정 전 장관의 죽음으로 이들은 모두 사망했다.
그는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아오다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옮겨진 뒤 이날 오전 사망했다. 1932년 9월10일 대구에서 태어난 정 전 장관은 전두환·노태우와 육군사관학교 동기였다. 동기생이라는 특성상 두 사람에게 사석에서 말을 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로 알려졌다.
그는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 당시 대구에 주둔한 육군 제50사단장이었다. 12·12에 저항하다 체포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후임으로 발탁됐다. 그는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육군 특전사령관이었고, 특전사 예하 3·7·11공수여단은 광주에서 비무장 시민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과 발포를 주도했다. 1988년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 진상조사위원회’는 광주시민 학살 총책임자는 전두환, 주범은 노태우, 현장 지휘자는 정호용, 최세창, 신우식, 최웅, 소준열 등으로 발표했다.
그럼에도 그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전두환 정권에선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맡는 등 승승장구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군부 인맥의 서열 3순위였으나, 노태우와의 후계자 경쟁 끝에 패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 서구갑에 출마해 당선됐으나, 노태우 정부 당시 5공 청산 여론이 거세지자 1990년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1992년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다시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는 1997년 12월 전두환·노태우 등과 함께 특별사면됐다. 1980년 6월 광주 진압 공로로 받은 충무무공훈장은 1998년 12월 취소됐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이후 자신의 책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2019년 12월12일에는 전두환 등 신군부 인사들과 서울의 한 고급 음식점에서 오찬하는 모습이 포착돼 비판받았다. 2021년 5·18 진상조사위에 자신의 책임을 다시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는 5·18 당시 특전사령관이었지만 군수·행정 분야에만 관여했고 지휘 통솔권이 없어 발포와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관련 자료와 진술을 분석한 결과 그가 공수부대 지휘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정 전 장관이 광주에 처음 내려온 5월20일 작전 현안을 보고받는 성격의 회의를 주재했고 당시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사회를 봤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했다.
그는 윤석열 내란 후 열린 2025년 대통령선거 때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명단에 이름이 올랐으나 비판이 일자 위촉이 취소됐다.

이용욱 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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