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시론] 호르무즈의 딜레마, 우리 정부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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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본질이 갈등의 중재라면 외교의 본질은 국익의 계산이다. 그러나 때로는 어떤 선택을 해도 정치적·외교적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국정 최고 책임자 앞에 던져진다.
호르무즈는 단순한 해협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 실용 외교의 진가를 검증하는 정밀 시험대다.
내치의 악재와 외교·안보의 난제가 몰아치는 지금 호르무즈의 파고 앞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내릴 결단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 동력을 재정립하고 대한민국 외교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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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국적 상선 '나무호' 피격 사건은 해상 수송로 확보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당장 한국 경제와 직결된 생존 문제임을 각인시켰다. 국가가 국민과 자산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원론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수단으로 거론되는 군사 투입이 초래할 불확실성이다.
현재 이 대통령 앞에는 두 개의 커다란 외교적 압박이 놓여 있다. 한쪽에는 통상·안보 이슈를 전방위로 연계하며 파병 참여를 촉구하는 미국의 요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한국어로 직격 경고를 날리며 군사적 동참 시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이란의 위협이 있다. 미국의 요구를 외면하자니 한미동맹의 경색과 경제·안보 현안으로 압박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고 파병을 강행하자니 우리 선박과 국민이 군사 공격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역설에 빠진다.
외교적 외통수만큼이나 뼈아픈 것은 내부의 정치적 분열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이 남긴 진보 진영의 역사적 후유증은 선명하다. 이미 여권 내부와 범진보 정당들은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불안과 증시 흔들림, 인선 논란 등으로 국정 지지율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핵심 지지층의 이탈은 국정 동력을 흔들 수 있다. 반면 야당은 타이밍을 놓친 늑장 대응이자 전략적 주저함이라며 주도권 부재를 꼬집는다.
그러나 외교·안보의 판단이 진영의 충성도나 대통령의 결단력 경쟁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파병 반대론에는 분쟁 확대와 국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고 파병 필요론에는 동맹 관리와 해상교통의 안정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어느 한쪽의 우려를 무조건적인 반미나 무책임한 파병론으로 규정하는 순간 합리적 선택의 공간은 좁아진다.
이 난제의 핵심은 타이밍과 레버리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있다. 압박에 밀려 수동적으로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 협상의 여지는 좁아지고 국익을 확보할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 자체가 국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노 리스크(No Risk)의 외교적 외줄 타기는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정부가 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파병의 찬반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힐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를 정하고 이를 토대로 외교·안보적 이익과 위험 분담을 설계해야 한다.
외교적 레버리지는 기여의 가치와 책임을 명확히 할 때 생긴다.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면 우리도 작전 범위와 선박 보호, 위험 분담을 요구해야 한다. 동맹의 신뢰는 일방적 부담이 아닌 상호적 책임 위에서 공고해진다. 동시에 이란을 포함한 국제사회에는 한국의 참여가 특정 국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해상 안전 확보에 목적을 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호르무즈는 단순한 해협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 실용 외교의 진가를 검증하는 정밀 시험대다. 실용 외교의 진가는 감수할 위험과 감수하지 않을 위험을 구분하는 판단력에서 드러난다. 내치의 악재가 외교적 판단의 혼선으로 이어져 국정 전반의 부담을 키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전략 없는 침묵과 결정 유예는 위험을 피하는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압박을 키우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결정의 유예가 필요하다면 그 이유와 판단 기준을 설명하고 결단이 필요하다면 그에 따른 위험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파병 여부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돼야 한다. 안보 위기일수록 지도자의 결단은 투명하고 당당해야 한다. 파병이든 비파병이든 혹은 제3의 대안이든 그것이 헌법적 가치와 국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로 국회를 설득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내치의 악재와 외교·안보의 난제가 몰아치는 지금 호르무즈의 파고 앞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내릴 결단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 동력을 재정립하고 대한민국 외교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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