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피폭·차별’ 넘은 타격왕 장훈 별세…3085안타 기록 안 깨져

남지은 기자 2026. 9. 10. 16:2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 손의 장애와 피폭의 상흔, 재일동포를 향한 차별을 딛고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던 장훈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역이 9일 별세했다.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에 따르면, 장 전 보좌역은 이날 오후 5시께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085개 최다안타 기록 보유
1959~81년까지 타격왕 7회
장훈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보좌역이 2018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현역 시절 유니폼을 입고 있던 모습. 연합뉴스

한 손의 장애와 피폭의 상흔, 재일동포를 향한 차별을 딛고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던 장훈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역이 9일 별세했다. 향년 86.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에 따르면, 장 전 보좌역은 이날 오후 5시께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사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명구회는 “장훈의 위대한 공적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고인은 네살 때 화상을 입어 오른손 손가락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다섯살 때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겪었다. 산에 가려진 집에 있어서 목숨을 건졌으나 누나를 잃었다. 손의 장애와 가난, 재일동포 차별 속에서도 야구공을 놓지 않았고 기어이 일본야구의 ‘별’로 우뚝 섰다. 그는 생전에 “핸디캡을 변명거리로 삼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힘들 때일수록 앞을 보라. 도망치면 거기서 끝이다”라는 말을 했다.

고인은 오사카 나니와상고를 나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도에이 플라이어스, 니혼햄, 요미우리 자이언츠, 롯데 오리온스 등에서 23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도에이 플라이어스 입단 첫해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프로 선수 시절 타격왕을 7차례 했다.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에도 올랐다. 2752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319(역대 3위), 3085안타, 504홈런(역대 공동 7위), 1676타점(역대 4위)을 기록했다.

특히 ‘안타 제조기’로 이름을 날렸다. 3085안타는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다 기록으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한국프로야구에서도 통산 30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이는 단 한명도 없다. 고인은 1990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은퇴 뒤에는 일본 민영방송 티비에스(TBS)에서 1982년부터 2006년까지 해설위원을 맡으며 “정신 차려!” 같은 독설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입담가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한국프로야구에도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현역에서 은퇴한 직후인 1981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특별보좌역을 맡아 프로야구 출범과 한·일 야구 교류에 힘을 보탰다. 출범 초기 국내 구단의 지도자 구성과 일본 전지훈련 등을 돕고, 일본 야구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한국에 전했다. 한국 정부는 체육 발전과 한·일 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야구계의 ‘큰 별’이 지면서 한국 야구계에서는 추모가 이어졌다. 일본프로야구에서 8시즌을 보낸 이승엽 전 두산 베어스 감독(현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은 고인이 일본 무대에서 활동하던 한국 선수들을 따뜻하게 챙기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였다고 회고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한국프로야구 원로 모임인 일구회도 고인이 한국프로야구 출범과 한·일 야구 교류에 이바지한 공로를 기리면서 “한국과 일본 야구계에 남긴 큰 발자취는 오래도록 야구인들의 가슴 속에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